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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활동일자리] 두 집 건너 한 집이 커피숍인 한국에서 우리가 행복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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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 건너 한 집이 커피숍인 한국에서 우리가 행복한 이유


2019-12-08


타이·캄보디아 출신 카페
고국 메뉴로 색다른 빛깔
꾸준한 매출이 난관이지만 “봉사활동 아닌 첫 일자리”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

한국 온 결혼이민자 16만명
육아·생계 ‘이중고’ 겪지만
안정적 일자리 턱없이 부족


14년 전 몽골에서 온 토시와힝 자이나(48)씨(이하 존칭 생략)는 식당에서 일하며 중학교 2학년 아들을 키운다. 한국 봉제공장에서 일하다가 한국인 남편을 만나 서울에 살게 됐다. 자이나는 몽골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다 중퇴했지만, 한국에선 좀처럼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기 어려웠다. 일용직인 남편과 함께 고된 맞벌이를 해도 한국에서 자리잡기란 산 넘어 산이었다.

“다문화센터에 다니면 단기적 언어·요리 교육은 하지만 가장 힘든 문제인 일자리와 주거가 해결되지 않아요. 어디서 일을 구할 수 있을지 센터 선생님한테 물어보면 ‘인터넷 치면 다 나온다’고 했지만 전 인터넷을 봐도 뭐가 뭔지 몰랐죠.”


자이나는 한국에서 14년을 살았지만 정착했다는 느낌은 못 받는다고 했다. “3년 전 한국 국적도 땄고 한달 전 한국식 이름으로 개명도 했지만 여전히 한국인이 되진 못했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만날 땐 친절하지만, 저 같은 이민자를 집단에 잘 끼워주지 않아요. 일자리를 구할 때 더 그렇죠.”


안정된 일자리를 찾고 싶어 자이나는 5년 전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막상 카페에 취업하진 못했다. 카페에선 젊은 한국인 종업원을 원했다. 당시 자이나는 아홉살 아들을 키우는 30대 후반이었고, 저녁 늦게까지 영업하는 업무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도 바리스타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자이나는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다문화카페 네트워킹 데이’를 찾았다. 사회적 기업들이 결혼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다문화 카페’의 성공 사례를 소개하는 행사였다. 자이나는 “우리 같은 사람은 일자리를 구해도 임시직 파출부, 식당 알바”라며 “바리스타 자격증으로 취직하는 건 한국 사회에 정착할 좋은 기회”라고 했다.



커피가 누군가의 따뜻한 밥이 되기까지


전국 각지에 흩어진 24개 회사의 다문화 카페 40곳은 이날 경험을 나누고 성공 사례를 발표했다. 이 자리를 주관한 카페오아시아의 정선희 대표는 “한국에 온 결혼이민자들은 남편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 여성 홀로 육아와 가정경제를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자리 공급이 시급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라고 말했다.


개발도상국에서 온 결혼이주여성들은 한국인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할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경제적 자립을 간절히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이민자들은 한국에서 가장 힘든 것으로 ‘경제적 어려움’(26.2%)을 첫손에 꼽았다. ‘외로움’(24.1%), ‘자녀양육 및 교육’(19%), ‘가족 갈등’(8.1%)보다 높았다. 이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높은 편이지만 단순노무직에 쏠려 있다.(2018년 다문화실태조사) 한국의 결혼이민자는 12만5087명(2009년)에서 15만9206명(2018년)으로 해마다 늘고 있고, 성별은 여성이 13만2391명(83%, 2018년)으로 다수를 차지한다.(국가통계포털)


이런 현실에서 사회적협동조합 카페오아시아는 다문화 여성의 자립을 위해 2012년 첫발을 내디뎠다. 7년간 25개 매장에 직원 70여명의 일자리를 만들었고 이 일자리의 71%가 결혼이민자 등 취약계층이 맡았다. 2013년 결혼이주여성 네 명이 일하는 커피점을 시작으로, 2017년 포스코 등과 함께 ‘이주여성 사장 만들기’(I’m CEO) 프로젝트를 진행해 결혼이주여성이 사장인 다문화 카페 3곳이 문을 열었다.


농촌에 다문화 카페를 안착시킨 사회적 기업도 있다. 디엠지(DMZ)레클리스협동조합은 2015년 경기 연천군 백학면에 ‘디엠지(DMZ)커피’라는 독특한 브랜드를 개발해 중국·베트남·필리핀·키르기스스탄 출신 등 결혼이주여성 8명(전체 직원 12명)을 고용했다. 다문화 카페는 커피만 파는 곳만이 아니라 홈베이킹 교실, 문화공연 등을 열어 지역사회의 이민자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경남 김해시에서 다문화 카페를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김해 통 주식회사’가 대표적 사례다.



옆집도 카페, 뒷집도 카페지만


2003년 타이에서 한국으로 결혼이민을 온 순안(50) 사장은 ‘이주여성 사장 만들기 프로젝트’(기업과 공공기관이 결혼이주여성의 카페 창업을 지원한 사업)의 도움으로 2년 전 카페를 창업했다. 처음 문을 열 땐 적자가 날까 고민했지만 2년간 월 150여만원의 흑자를 유지하며 최근 가게의 임대차계약도 연장했다. 한국의 자영업자 대다수가 고민하듯 순안도 치열한 경쟁에 놓여 있다. 지하철역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위치한 카페의 바로 맞은편에는 또다른 카페가 영업 중이었다. 3분 정도 걸어 나가면 큰길가에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두 곳이 또 있다.


“얼마 전에 저기 뒷골목에 마을버스 정류장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그쪽으로만 다녀요. 옆집도 카페, 뒷집도 카페, 하나둘셋넷다섯… 경쟁 또 경쟁이에요.”


지난 3일 오전 서울 양천구 카페오아시아 신월점에서 만난 순안은 타이밀크티 한 잔을 만들며 이렇게 말했다. 메뉴판엔 ‘타이밀크티’ ‘타이코코아’ ‘타이레몬아이스티’ 등 타이 메뉴가 다양하다. 매장 한쪽에선 지갑, 열쇠고리, 가방 등 타이에서 만든 액세서리를 팔고 있다.


순안은 한국에서 출입국관리사무소 통역 등 봉사활동을 했지만 소득 있는 일자리는 처음이다. 중학생 딸 둘을 키우면서도 연중무휴로 카페를 운영한다. 직원도 두지 않은 채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말에도 저녁 6시에 문을 닫는다. “버텨보려고 진짜 열심히 해요. 가게 문을 열었으니 백프로 책임감을 다하고 싶어요.”


커피는 결혼이주여성에게 따뜻한 밥이 되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14년 전 한국에 온 결혼이민자 반말리(34)는 홀로 아들을 키우며 경제적 자립이 절실했다. 7년 전 사회적협동조합 카페오아시아에 취업해 인턴, 부지점장 등을 거치고 현재 이 기업 동부여성발전센터점의 사장이다. 인건비와 재료비를 빼고 나오는 월 200여만원의 소득으로 그는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을 키운다.


힘들 때도 있다. 손님들이 함부로 대할 때다. 주로 나이 많은 남자들이 “예쁘다”며 말을 걸고 성희롱하려 들 때면 반말리 사장은 속이 상한다고 했다. “처음엔 친절했다가 제가 외국 사람이란 걸 알면 갑자기 불친절해지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반말리는 아이한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됐다는 게 가장 행복한 점이라고 했다.



육아와 가정경제 ‘이중고’ 결혼이민자


결혼이민자에 대한 폭력 등 인권침해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 경기도에서 50대 남편이 베트남에서 결혼이민을 온 지 3개월 된 아내를 살해해 암매장한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7월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는 결혼이주여성의 모습이 동영상으로 공개돼 공분을 샀던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결혼이민자들이 자주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에 놓이자 최근 법무부는 가정폭력, 성폭력, 살인 등 특정 강력범죄 경력이 있는 경우 외국인 배우자 초청을 제한하도록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진행 중이다.


인권침해 방지는 물론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에 정착하는 데 어려움을 최소화하려면 본질은 일자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고민경 건국대 모빌리티인문학연구원 에이치케이(HK)연구교수는 “결혼이주여성은 한국에 와 육아와 경제적 부양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요구받는다. 이를 동시에 수행하기 위해 유연한 일자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결국 결혼이주여성이 한국 사회에서 더 불안정하고 소외된 지위에 놓이게 한다”고 설명했다.


한겨례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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