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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활동] 농촌 마을에 청년 예술가들이 ‘북적’…부여 규암면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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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마을에 청년 예술가들이 ‘북적’…부여 규암면에 무슨 일이?

2021-02-05
농촌 마을에 청년 예술가들이 ‘북적’…부여 규암면에 무슨 일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렇지 않아도 심각했던 수도권 인구 집중 현상에 코로나19가 촉매제로 작용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 지역 인구가 되레 늘고 있는 지역이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이다. 2018년 이후 부여군 전체와 부여읍 인구가 각각 4.0%, 6.3% 줄어드는 동안 규암면 인구는 4.2% 증가했다. 부여군 16개 읍면 지역 가운데 인구 증가가 관찰된 곳은 규암면이 유일하다. 인구 1만2000여명이 사는 작은 시골 마을, 규암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2018년 충청남도와 부여군은 청년 공예인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123사비 청년 공예인 창작 클러스터 조성사업’을 기획했다. 청년 공예인들이 사업 지역인 규암면 규암리와 외리 일원에 창작공간을 마련하면 최대 3000만원의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한다. 2020년 5개 업체를 시작으로 올해 11월까지 모두 15개 업체를 선정할 계획이다.



규암면은 지리적으로 부여군의 ‘변방’이다. 중심지인 부여읍에서는 백마강을 건너야 비로소 닿을 수 있다. ‘123사비 청년 공예인 창작 클러스터 조성사업’의 총괄책임자인 사비공예문화산업지원센터 오희영 센터장은 “기존 부여읍은 ‘백제’라는 역사와 문화로 촘촘히 짜인 지역이라 새로운 문화와 예술이 흡수되기 어려운 곳”이라며, “해방 전후까지 부여, 공주, 청양, 보령 등지로 보내질 물자가 집결하는 이른바 상업의 요충지로써 상대적으로 외부 문화에 개방적인 지역적 특성이 사업지 선정에 영향을 끼쳤다”라고 말했다.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문화예술인을 포함한 외부 자원의 효과적인 활용이 중요한 사업 특성을 두루 고려한 결정이었던 셈이다.

‘123사비 청년 공예인 창작 클러스터 조성사업’은 공예와 관련한 다양한 전문가들이 규암면 일원의 지역 활성화를 위해 협업하고 소통하는 ‘집합적 영향력’(Collective Impact)을 지향한다. 집합적 영향력은 2011년 John Kania와 Mark Kramer가 Stanford Social Innovation Review를 통해 제안한 개념으로 복잡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다양한 이해관계자’(Multi stakeholder)가 ‘공통의 의제’(common agender)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을 담고 있다. 낙후된 규암면 일원의 지역사회 활성화를 위해 청년 공예인(입주업체)과 지역사회, 그리고 전문가 그룹 간 활발한 협업이 이루어지도록 사비공예문화산업지원센터가 윤활유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다양한 전문가 그룹의 협업과 이를 통한 과실이 지역사회에 온전히 환류되는 지역순환경제가 지역혁신을 견인한다는 상상력은 사비공예문화산업지원센터 오희영 센터장의 경험과 노하우에서 출발했다. 그는 2000년대 중반부터 10여 년 이상 성남아트센터 등에서 근무한 문화기획자다. 지역사회와 문화예술인이 함께 성장하기 위해선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한 협업과 협력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강조한다. “개인이나 특정 업체가 좋은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유명해지는 것으로 지역혁신을 견인하는 데 한계가 있다”라며, “지역 곳곳에 감춰졌던 스토리가 하나둘 소환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협업과 협력을 통한 시너지가 지역사회 안에 고루 뿌려질 때 모두가 원하는 지역 활성화, 더 나아가 지역혁신도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협업과 협력을 통한 지역사회 가치 창출은 ‘123사비 청년 공예인 창작 클러스터 조성사업’ 입주업체 선정부터 각종 지원에 이르는 사업 전 과정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입주업체 간 협업은 입주업체 선정에 있어 유일한 심사기준이다. 예컨대 천연 염색 교육과 체험을 본업으로 하는 자온공예협동조합은 규암면 일원의 지역 명소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해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자온공예협동조합 송성원 대표는 부여군에서 활동 중인 임지선 관광두레 PD, 박골도방을 운영하는 김옥희 도예가, 어반정글 이상민 대표 등과 협업해 공정여행업체 ‘선샤인’ 설립을 추진 중이다. 송 대표는 “코로나19로 운영이 중단되기 전까지 천연 염색 체험과 지역 명소를 돌며 숨겨진 이야기를 찾고, 즐기는 공정여행 프로그램에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라고 말했다.입주업체의 공방을 두고, ‘모자이크 공방’으로 명시한 것도 협업과 협력의 중요성을 우회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용어다. 혼자가 아닌 협업을 통해 지역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공방의 정체성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123사비 청년 공예인 창작 클러스터 조성사업’을 통해 입주한 공방 5곳의 면면을 살펴보면 전통적인 공예업체라기보다는 다양한 협력과 협업에 능한 업체들이 다수다. 특히, 로얄페이퍼하우스는 전통 한지를 활용해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는 공방이지만 지역에 부족한 숙박시설을 고려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로얄페이퍼하우스 박모아 대표는 “이미 잘 알려진 1500년 전 사비백제 외에도 근현대 융성했던 부여군의 문화예술 스토리를 관광객들에게 알릴 플랫폼 역할에 관심이 많다”라며, 이를 위해 “부여 전통문화대학교 학생들과 뜻을 같이하는 한지 공예가 등 다양한 전문가와 협업을 계획하고 있다”라고 말했다.입주업체가 내부 협업을 위해 노력하는 동안 사비공예문화산업지원센터는 지역사회 내 다양한 업체들과 입주업체 간 소통과 협업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한 평 갤러리 프로젝트’다. 한 평 갤러리 프로젝트는 부여읍과 규암면 내 식음료점과 협업하여 매장 한 쪽에 입주업체 작품을 전시하는 활동이다. 지역주민과 부여를 찾는 관광객이 ‘123사비 청년 공예인 창작 클러스터 조성사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카페베네 부여점 2층 책장에 입주업체 ‘북토이’의 ‘움직이는 북 스탠드’가 전시 중이고, ‘자온공예협동조합’의 ‘천연 염색 스카프’는 ‘규암골목안커피202’의 창가 선반에 자리하고 있다.

이 외에도 사비공예문화산업지원센터는 다양한 문화예술인이 협업을 통해 공연과 작품 전시를 함께 할 수 있는 아트 갤러리 ‘아트 큐브’를 올 상반기 안에 조성할 계획이다. 또한, 100평 규모의 농협창고 두 동을 개조해 공예품 창작에 필요한 메이커스스페이스, 촬영 스튜디오, 세미나실, 개별 스튜디오 등으로 이루어진 문화예술 플랫폼, ‘규암 공작소’도 개관을 눈앞에 두고 있다.

부여군 문화도시 전담 컨설턴트이자 안녕소사이어티 안영노 대표는 “123사비 청년 공예인 창작 클러스터 조성사업은 기존 인건비 지원 중심의 문화예술인 지원사업에서 탈피해 청년 공예인과 지역사회 간 협력과 협업을 통해 지역사회가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 의의가 있다”라며, “도시가 가진 다양한 스토리를 발굴하고, 이를 관광, 농업 등 기존 부여의 산업 자원과 연결해 부여형 지역혁신 모델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서재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객원연구원 tiwory05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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