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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갈등, 맞춤형 농정으로 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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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호

FTA 갈등, “맞춤형 농정”으로 풀자

 김정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자유무역협정(FTA)이 4차 협상을 넘어서면서 점차 윤곽이 드러나는 듯 하다. 주고받는 것이 협상이라지만, 거대 농산물 수출국인 미국과 협상하는 농업 분야는 마치 ‘시어머니를 맞는 새댁이 빗장을 조심스레 열어 보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렇다고 문을 닫을 수는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UR 협상 때도 농업‧농촌이 총체적 위기로 몰렸지만, 개방 속도를 조절하고 종합대책과 투융자 확충을 통해 어느 정도 극복하지 않았던가? 돌이켜 보면 1990년대 초의 우리 농업은 ‘풍전등화’처럼 묘사되었었다. 따라서 이번에도 시장개방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협상력을 발휘하면서, 한편으로는 국내 대책 마련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현재 정부에서 「농업‧농촌종합대책」 보완작업이 추진되고 있는데, 투융자 조정과 아울러 추진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다름 아닌 “맞춤형 농정”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다. 시장개방에 대한 영향이 품목별로, 농가별로, 지역별로 다르기 때문에 그에 알맞은 정책을 수립하여 추진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도 기존의 평균 농정에서 벗어나 맞춤형 농정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2월에 담당 팀을 구성하고 세부실천 방안을 마련하느라 열심이다.

 

혹자는 맞춤형 농정이 가능하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기존의 정부 주도식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원대상별로 세밀하게 정책을 설계할 수는 없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정부가 정책을 개발하면 수혜자가 이를 선택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된다. 농가 맞춤형이란 정부가 농가 유형별로 정책프로그램을 메뉴 방식으로 제시하고, 이에 근거하여 농업인이 자기에 알맞은 정책 수단을 차별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농정추진 방식인 것이다.

 

예를 들어 농업소득 비중이 큰 전업농은 평생직장으로서 경쟁력 있는 농업경영체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경영개선자금, 교육훈련, 경영컨설팅 등의 경쟁력 제고 프로그램과 함께 경영안정을 위한 재해보험이나 직접지불제가 중요한 정책 수단이다. 그리고 전업농으로서 자립경영 목표를 달성하면 정책지원 대상에서 졸업시키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농업경영으로 발전하기 어려운 영세 고령농에 대해서는 경영은퇴를 지원하고 노후생활을 보장하는 복지정책이 필요하다. 그간의 농정이 산업 중심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에 맞춤형 농정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복지프로그램이 대폭 확충되어야 한다. 국민연금 수혜나 국민기초생활 지원도 받지 못하는 실정에서 경영이양은 무리한 요구이다. 따라서 고령 농업인을 위한 특별지원제도를 통하여 농촌사회의 갈등을 해소하면서 구조조정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겸업농이 안정적으로 농촌에 거주하면서 지역농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농산물의 공동판매 시설을 설치해주거나 가구원의 농외취업을 위한 직업훈련 등의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영농은 취미로 하면서 본업을 통해 고소득을 올리는 부업농이나 취미농은 농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맞춤형 농정은 농업구조정책의 발전 단계이기도 하다. 지난 90년대 초의 문민정부 시절에는 전업농 중심의 농업 경쟁력 제고에 목표를 두고 영농규모 확대를 중점 지원하였다. 이어 국민의 정부 때는 중소농 육성을 위한 친환경농업 및 소득원 개발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현재의 참여정부는 소득‧복지정책을 강화하는 기조 하에서 다양한 직접지불제의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따라서 우선은 농가의 특성을 반영하는 “농가 맞춤형” 정책을 추진하면서, 앞으로는 “품목 맞춤형”이나 “지역 맞춤형”으로 확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오늘날 선진국 농정에서도 시혜적 지원이 아니라 정책 수요자가 선택하는 메뉴 방식(cafeteria style program)이 일반화되는 경향이다. 맞춤형 농정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농정 주체로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농업인의 책무가 명확하게 정립되어야 한다. 이제 농업인들도 정부 정책을 제대로 활용하는 경영인으로서 자기의 소득 증대는 물론 농업 발전에도 기여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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