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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관과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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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박시현
농민신문 기고| 2007-07-25
박 시 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다른 벼슬은 다 구해도 되지만 목민관(牧民官)의 벼슬은 구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벼슬 중에서도 목민관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목민관은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백성을 위해서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노인을 공경하고 불쌍한 백성을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 홀아비와 과부, 고아, 늙어서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을 구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심지어 홀아비와 과부를 재혼시키는 일에도 힘써야 한다고 하였다.

 

목민관은 자연재해가 나지 않도록 항상 대비해야 하며, 재해가 생겼을 때는 백성들을 위로하고 구호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하였다.

 

이 시대의 지자체장은 목민관보다는 최고경영자(CEO)로 불리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CEO형 지자체장이란 말은 능력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작년 민선 3기를 마무리하는 지자체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지자체장이 지역 발전을 위해 가장 주력했던 분야가 기업과 자본 유치 60%, 특산품 개발과 판매 15%, 축제 개최 9%였다. 반면에 대민·대기업 서비스는 16%에 불과했다.

 

지자체장이 기업가적 마인드로 무장하고 지역경영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한때 ‘지역경영’이란 말이 회자된 적도 있고 실제 지자체장이 지역경영을 잘해 지역이 활성화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경영마인드는 분명 이 시대의 지자체장에게 필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지자체장의 지나친 경영마인드로 부작용이 발생하고 본래의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행정이 하는 수익사업은 민간이 하는 그것에 비해 수지를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자기 자본이 아니고, 성공에 대한 보수와 실패에 대한 책임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정이 수익사업을 추진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행정이 해도 좋을 사업인지, 혹시 민간의 경쟁질서를 해치지는 않는지, 정말 사업성이 있는지, 운영까지 할 수 있을지 등을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민선 지자체 12년 동안 수많은 경영사업이 추진됐지만 그 성과는 만족할 만한 것이 못된다. 현실이 이렇다면 이 같은 조사 결과는 지자체장은 성공이 불확실한 수익사업에 지나치게 힘을 기울이고 확실히 챙겨야 할 지역주민에 대한 서비스는 상대적으로 등한시했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 지자체장의 가장 큰 임무는 지역 자원을 관리하고 지역 주민이 안심하고 편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다. 기업을 유치하고 외부에 지역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는 그 다음의 일일 것이다.

 

지금 농촌에서는 젊은 사람이 떠난 자리를 나이든 노인들이 지키고 있다. 재해가 날 때면 어김없이 농민들의 한숨어린 모습들이 텔레비전에 비친다. 농촌의 풍경은 많이 어지럽혀졌지만 다산이 살았던 그때나 지금이나 어려운 사람을 살기 편하게 하고, 재해를 방지하며, 주변을 깨끗이 하는 것이 여전히 지자체장의 중요한 임무다.

 

목민관과 CEO형 지자체장은 지역 발전을 위해 애쓰는 모습에서 닮았다. 하나를 잘하면 다른 하나는 저절로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굳이 선후를 말한다면 지자체장은 우선 목민관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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