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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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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아름다움 재발견은 지역 경쟁력 강화의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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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송미령
KREI 논단| 2008년 5월 9일
송 미 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계서리를 지나다 독특한 이름의 박물관을 만났다. 바로 ‘공동체 박물관’이다. 평범한 농촌 마을의 한 가운데 논밭 사이에 우리가 알고 있는 근사한 박물관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외양을 한 채 자리잡고 있는 이 박물관은 정미소를 개조한 것이다. 정미소 사진을 찍던 한 여류 사진작가가 정미소를 박물관으로 정비하였다고는 하나 아직은 학예사도 없어 사실은 박물관 아닌 공장으로 등록되어 있는 소박한 곳이다.

 

박물관 안의 정미기계는 마치 장식품처럼 버티고 서 있지만 주민들이 원하면 지금도 여전히 정미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 옆의 작은 전시관에는 정갈한 흑백 사진들이 사면 벽을 채우고 있다. 1930년대 대가족의 가족사진부터 수줍은 촌부의 전통혼례사진까지.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을 거쳐서 우리가 오늘을 살고 있겠지 하는 감회와 함께 왠지 가슴이 찡해온다.

 

▶ 공동체박물관으로 활용되는 계남정미소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racka/60025377628>

 

왜 이런 시골의 정미소를 개조해 박물관을 만들 생각을 하였는지 궁금해졌다. 박물관의 여주인은 ‘정미소’가 우리 사회에서 차지했던 의미가 퇴색해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녀는 국가 전체에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었고, 쌀이 농업의 전부이던 시절에 사람들의 가치관, 모든 생활문화의 뿌리인 농경문화의 상징이 정미소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랬던 정미소가 산업화, 도시화에 밀려 우리의 생활공간이나 생산공간이라는 무대에서 퇴장하고 아예 골칫거리 창고쯤으로 전락해 가는 현실에 대해 조금은 멈추어달라는 신호를 보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6년 5월 공동체 박물관이 개관할 무렵, 관장의 작품 제출 광고에 부응하여 몇몇 주민들은 자기 집의 사진첩에 꽂혀있던 오래된 사진을 쑥스럽게 들고 나왔다. 그들은 그렇게 빛바랜 가족사진이 다른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무척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자신들의 마을에 있는 공동체 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고는 뿌듯해 하였다고 한다. 이제 가끔씩은 써레 등과 같은 예전에나 사용하던 농기구를 박물관 앞에 전시용 작품으로 두고 가는 주민들까지 생겼다고 하는데, 볼품없다고 여겼던 무엇에도 유용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 공동체 박물관을 통해서 재인식되는 듯싶다. 그래서인지 조심스럽게 지역 안에 산재해 있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정미소들을 자원으로 엮어서 정미소 투어 프로그램을 기획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누군가는 별 것 아닌 작은 일이라고 간과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은  농촌이 가진 크고작은 아름다움의 가치를 배워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최근에 농촌 마을 공가를 개조한 다양한 문화시설, 폐교를 활용한 미술관과 연극무대 등이 비록 수익성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진 못했어도 꽤 각광받는 것을 보면 우리 농촌이야말로 무한한 자원의 보고이고 경쟁력 있는 문화산업의 핵심이 될 수 있음을 새삼 실감한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얻었지만 전통과 정신적 가치를 다소 소홀하게 다루게 되었다. 그러한 잣대를 가지고 바라본 농촌은 항상 도시보다 못 살고 부족한 곳일 뿐이었다. 지역 경쟁력 강화와는 전혀 별개로 항상 ‘낙후한’ 농촌지역 문제만을 주목했다. 그러나 조금 더 성숙한  잣대로 우리 농촌을 바라본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농촌이야말로 우리 문화의 뿌리를 담고 있는 자원의 보고이다. 그 작지만 소중한 아름다움을 발굴해내고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농촌의 자긍심을 회복하는 작은 노력이 여러 현장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이 농촌지역 경쟁력 강화의 기반이 될 수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농촌이 도시에 비해 가질 수 있는 비교우위가 결국 무엇이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농촌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우리 농촌의 작은 자원에 주목하고, 농촌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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