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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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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공정거래 확립을 위한 제도 보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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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최병옥
KREI 논단| 2009년  2월  5일
최 병 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문연구원)

 

최근 유통환경 변화로 다양한 형태의 소비지 농산물 유통주체가 등장하고 있다. 소비지 유통주체는 과거 도매시장 중심의 유통형태와는 달리 수직적 거래관계에서 거대자본을 바탕으로 강한 교섭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소비자 니즈에 적합한 농산물을 생산·가공·판매하기 위해 다양한 경영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소비지 유통주체와 산지유통조직 간 농산물 거래는 소수의 대규모 자본과 규모가 영세한 다수의 공급자 간의 계약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소비지 유통주체의 요구가 계약내용에 일방적으로 반영될 수 있다. 소비지 유통업체의 다양한 요구가 산지유통조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계약서를 면밀히 검토하기 전에는 그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최근 필자는 정부 공공기관의 용역발주로 소비지 유통주체의 직거래 계약서를 검토하는 기회가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소비지 유통주체(대형유통업체, 식품제조업체, 외식업체)와 산지유통조직 간의 계약조항이 농산물 유통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대형유통업체는 행사 및 판촉활동과 관련하여 공정거래를 저해하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으로는 대형유통업체가 행사 및 판촉활동을 진행하는 경우, 산지유통조직에게 평소발주량보다 보통 5배 이상 많은 물량을 요구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을 때 다양한 방법으로 벌칙금을 부과하여 결제대금에서 삭감하고 있다. 또한 대형유통업체는 행사 및 판촉활동에 필요한 물량을 대량으로 발주할 때 납품가격을 조정할 수 있도록 계약서에 명시함으로써 산지유통조직에게 저가납품을 요구할 수 있는 빌미를 두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대형유통업체는 행사 및 판촉활동 기간이 끝난 후 판매하고 남은 상품을 반품하거나 공급자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판매 장려금을 수령하고 있다. 대형유통업체가 발주한 물량은 대부분 물류센터를 경유하여 소비지 매장에 배송되는데 산지유통조직이 물류센터를 이용할 경우 터무니없이 높은 이용 수수료를 요구하는 대형유통업체도 있다.   

식품제조업체는 산지유통조직에게 별다른 통보 없이 대금지급을 지연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외에도 식품제조업체는 자체적인 품질기준을 정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다양한 방법으로 공급자에게 패널티를 부과하여 결제대금을 삭감한다.

외식업체는 산지유통조직이 물류센터에 상품을 납품하면 물류센터에서 검수 및 검품 확인서를 발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외식업체가 물류센터에서 검수 및 검품 확인서를 발급하지 않으면 외식업체 소속의 사업장에 서 식품안전관련 사고, 상품의 분실, 기타 소비자 클레임 등이 발생할 경우 산지유통조직의 비용으로 사고 및 소비자 클레임을 해결하여야 한다.

산지유통조직이 소비지 유통주체의 다양한 요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규모화, 꾸준한 물량공급 체계, 고품질 농산물 생산체계 확립, 일일배송 시스템 구축 등이 요구된다. 그러나 산지유통조직이 이러한 사항을 모두 갖추어 소비지 유통주체와 거래한 경우 행사 및 판촉활동, 물류센터 이용 수수료, 판매 장려금, 결제대금지연, 다양한 형태의 벌칙금 등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어려움이 발생한다. 산지유통조직이 소비지 유통주체와 거래 시 적자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거래를 지속하는 이유는 현재 도매시장, 대형유통업체, 식품제조업체, 외식업체 이외 마땅한 출하처를 찾기 어렵고 적자가 발생하더라도 지속적인 매출을 발생시켜야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동안 정부에서는 산지유통조직의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다양한 형태의 정책 사업을 실시하여 왔으며, 이에 힘입어 최근 규모화된 산지유통조직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농산물 유통환경은 거대자본으로 무장한 소비지 유통주체 위주로 재편되었고, 이들은 수직적 거래관계에서 자본의 힘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관철시키고 있어 산지유통조직의 피해가 늘고 있다. 산지유통조직이 소비지 유통주체에게 당하는 피해사례를 당국에 신고하려 하여도 이는 곧 거래중단과 동종 분야에서의 사업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고발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소비지 유통주체의 공정거래를 단속하는 기구는 공정거래위원회이고, 단속의 기준이 되는 법적 근거는 「대규모 소매업에 있어서의 특정 불공정 거래행위의 유형 및 기준 지정고시」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일반 제조업체와 대형유통업체의 상거래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농산물 분야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향후 농산물 산지유통조직과 다양한 형태의 소비지 유통주체의 불공정 거래를 단속할 수 있도록 조항을 개정하거나 신규 법안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소비지 유통주체의 불공정 거래를 단속할 수 있는 기능을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

정부는 산지유통조직과 소비지 유통주체 간 공정거래가 정착될 수 있도록 법률적인 정비 이외에도 상호 소통의 창구를 만들어 계약조항을 작성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협의체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하여 소비지 유통주체와 산지유통조직이 신뢰를 바탕으로 상거래 문화를 조성해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또한 농산물 유통현장에서 근무하는 소비지 유통주체의 구매담당자가 공정거래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여 산지유통조직과 상생 협력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활동도 병행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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