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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토지이용이 농촌 어메니티의 기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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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박시현


농민신문 기고| 2010년  1월  11일
박 시 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앞으로 농촌이 잘살고 못사는 것은 농촌에 경제활동 기회가 얼마나 많으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는 농가가 다양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농촌의 다양한 경제활동은 농산물을 포함한 농촌의 모든 자원을 상품화하는 것이다. 때 묻지 않는 자연, 풍부한 먹을거리, 역사와 문화자원, 그리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등이 상품화 대상이다. 한마디로 농촌의 어메니티(쾌적성, 기분 좋음) 자원을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고, 풍요한 농촌의 미래를 위해서는 농촌의 어메니티 가치를 높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 농촌의 어메니티 가치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경관보전직불제, 농촌관광자원 개발 등 농촌의 어메니티 가치를 높이고 활용하는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경부고속도로 주변은 이미 농촌도 아니고 도시도 아닌 어정쩡한 공간이 돼 버렸다. 강원의 심산유곡이건 남해안 어촌마을이건 주변 풍광에 어울리지 않는 시설물이 늘어 도시의 번잡함을 잊고 시골의 아늑함을 맛볼 수 있는 국토 공간이 갈수록 줄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농촌 토지이용에 질서가 없기 때문이다. 땅을 사용함에 있어 공공의 선보다는 개인의 욕구 충족을 지나치게 우선시한 결과다. 농촌의 어메니티 가치를 높이기 위해 지금보다 좀더 강한 토지이용 규제가 필요하다. 토지이용 규제는 시대 역행적이며 농촌 발전에 도움이 안된다는 사람도 있지만 좀더 먼 안목으로 본다면 농촌의 어메니티 가치 제고를 위해 강한 토지이용 규제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유럽 여러나라의 농촌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것은 모든 농촌 토지의 개발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인정한다는 토지이용 원칙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농촌도 그들 나름의 토지이용 질서가 작동되고 있기에 아름답게 보전되고 있다.

 

농촌의 토지이용 특성은 지역별로 많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농촌 토지이용제도는 전국적 통일보다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2003년 개정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서 제2종 지구단위 계획이나 개발행위 허가제와 같이 장치를 도입하였지만 농촌의 쾌적성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이는 법률에 규정된 몇개의 장치가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토지이용 수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결국 농촌의 토지이용은 지역에서 계획을 수립하고 수립된 계획이 구속력을 갖게 해야 한다. 다만, 계획에 의한 행위 제한은 가급적 최소한에 그쳐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현행 토지이용제도의 기본틀을 존중하되 지방자치단체가 세부 용도를 추가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현행 법률에 농촌 주거용지, 농업 전용용지 등과 같이 세부 용도를 규정하고, 계획된 세부 용도에 기초해 각 지자체가 농지 등의 전용, 주거지와 산업용지의 입지 등을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항상 그렇듯이 제도라는 것이 반드시 당초의 취지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농촌에 추가로 토지 용도를 지정할 경우 그에 따른 반발과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농촌의 모습이 도시도 아니고 농촌도 아닌 어정쩡한 공간이 아니라면 공공의 선을 위해 개인의 욕망을 조금씩 줄여 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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