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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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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산업과 포괄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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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박시현
농민신문 기고| 2010년  4월  14일
박 시 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농업을 정치 산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농업에 대한 정부 정책이 경제 논리보다는 정치 논리에 좌우된다고 꼬집는다. 농업에 들어가는 정부 예산에 대해 국민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많다고 비난하며, 농업인들의 의식이 지나치게 정부 의존적이라 한다.

 

일면 옳은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론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 한 나라의 예산이 편성되는 과정은 정치적인 과정을 포함한다. 시장 효율성만을 따지면서 예산을 배분하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치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부가 나서서 농업을 지지하지 않는 나라도 많지 않다.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농업을 시장 원리로만 다뤄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농업이 정치 산업이라고 비난 받는 것은 농업과 농촌에 들어가는 돈 가운데 헛되게 쓰이는 사례가 일부 발견되기 때문일 것이다.

 

농어업과 농어촌에 풀리는 국가 예산은 연평균 20조원에 이른다. 이 돈은 직불금과 양곡 관리 같이 국가 정책적인 판단에 의해 많은 돈이 한꺼번에 지출되기도 하지만 적은 돈이 소규모 사업에 지출되기도 한다. 소규모의 사업들은 예산이 쓰이는 과정에서 경제적인 판단보다는 정치적인 판단이 앞서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정부 예산이 포괄 지원됨에 따라 지자체에서의 정치 논리도 만만치 않다.

 

지자체에 포괄 지원되는 광역경제특별회계의 농림수산분야 예산은 연 2조원에 가깝다. 다른 부처 소관의 예산을 포함하면 연 3조원의 예산이 매년 농어촌지역에 포괄 지원된다. 포괄 지원은 지자체에 반가운 일이다. 이 제도의 장점을 살려 중앙정부의 간섭을 크게 받지 않고 지자체에서 하고 싶은 사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포괄 지원을 잘 활용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성공한 지방자치단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지역 단위에서 예산 사용처를 둘러싼 의사 결정이 치밀하지 못하고 나눠먹기식으로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 팔리지도 않을 농산물 가공품들이 여기저기에서 만들어지고, 찾아올 손님도 많지 않을 곳에 정부 지원금으로 숙박시설만 지어 놓고 보는 마을도 있다. 공동 사업에 지원되는 자금을 타낼 목적으로 급조된 사업조직체들이 생기기도 한다. 정부 지원금이 시장 질서를 왜곡해 어렵사리 수지타산을 맞추고 있는 사람들을 곤란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정부 돈은 눈먼 돈이고 보조금이 농촌을 망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농업과 농촌에 들어가는 예산을 줄이자는 주장도 하지만, 이는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는 격이다. 그보다는 써야 할 사업에 제대로 돈을 쓰게 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 예산을 집행하는 모든 담당자가 자기 돈을 투자하는 심정으로 사업을 심사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업의 계획과 심사를 지금보다 훨씬 치밀하게 해야 한다. 정말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도 되는지, 수익성이 있는지, 경영 능력이 있는지, 정부 지원금이 끊겨도 지속 가능한지 등을 엄밀하게 따져 봐야 한다.

 

돈이 많이 들고 시간이 걸리며 귀찮은 일이지만, 포괄 지원제도가 성공하고 농업이 정치 산업이란 비난을 줄이기 위해서는 돈이 쓰이는 현장에서의 엄정한 판단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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