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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정책 여건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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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박시현
 KREI 논단 | 2010년 10월  25일
박 시 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일본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참고가 될 만한 나라이다. 사람들의 모습과 행동양식이 비슷하고, 좁은 나라(면적으로 보면 일본은 남한의 4배 가까이 되지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사는 것도 비슷하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경로가 비슷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 양상이 비슷하다. 일본 식민 통치로 인해 법률과 행정 제도가 비슷하다. 이런 유사성 때문에 우리는 일본을 끊임없이 벤치마킹한다. “일본의 경우에는...”, “일본에서 하니까...” 란 말을 통해 어떤 정책의 추진 필요성을 강조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과 일본의 농촌 정책은 점차 동조화되고 있다. 일본에서 이슈가 된 정책이 얼마 후면 바로 우리나라에서도 이슈화된다. 2000년대 중반에는 지역가꾸기, 지역산업진흥, 내발적 발전, 농촌관광을 포함한 도시와 농촌의 교류 등이 이슈화되더니, 1∼2년 전에는 귀농 귀촌이, 최근에는 농상공연대, 커뮤니티 비즈니스 등이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우리하고 일본은 작은 부분에서 다른 점이 너무나 많다. 대동(大同)이지만 소이(小異)다. 우선 가장 큰 차이점은 경제 수준이다. 일본은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연금을 보장하는 국민연금제도가 일찍부터 시행되고 있다. 농촌에 살고 있는 65세 이상의 노인들은 1인당 1달에 6만5천 엔(90만 원) 정도의 노령연금을 죽을 때까지 받는다. 물가가 안정된 일본사회에서 충분하게 살 수 있는 돈이다. 두 나라의 노후보장의 정도 차이는 두 나라 사람들의 행동양식,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정책의 성패하고도 관련된다. 대표적으로 노령층의 주머니 사정에 영향을 받는 농촌관광을 들 수 있다. 일본에서 농촌관광이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주 고객인 고령층의 소득이 어느 정도 보장되기 때문이다. 농촌의 내발적 발전을 이루기 위한 조건으로 주민 참여, 파트너십, 거버넌스 등을 꼽지만 이것 역시 주민 한사람 한사람의 경제력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정주 패턴도 한국과 일본은 차이가 있다. 한국은 수도권에 45%의 인구가 몰려 살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농촌 가까이 시장다운 시장이 없는 셈이다. 일본도 전 국민의 29% 정도가 동경 대도시권에 몰려 살고 있지만 나고야, 오사카 대도시권과 후쿠오카, 센다이, 삿포로 등에도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 이러한 도시들로부터 1시간 이내에 일본 농촌의 상당 부분이 위치하고 있다. 도시와 농촌의 교류, 농산물의 직거래 여건에서 한국과 일본은 비교가 되지 않는 셈이다.

 

  전 국토에 인구가 흩어져 살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농촌에는 농업 이외에도 많은 일자리가 있다. 제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서비스업도 어느 정도 발달해 있다. 이에 반해 우리는 주산업의 쇠퇴와 함께 서비스 산업도 동반 쇠퇴하는 현상이 전국 대부분의 농촌에서 발생하고 있다. 내발적 발전의 원동력인 지역산업 기반에서 한국과 일본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겉에서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이처럼 한국과 일본의 농촌은 정책이 작동하는 여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일본에서 성공하는 정책이 우리나라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을 어렵게 한다. 그래서 일본의 정책을 벤치마킹할 때는 정책내용만이 아니라 그 정책이 작동하는 여건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농상공연대만도 그렇다. 일본에서 농상공연대는 과거 농업자 일변도 정책 지원에 대한 반작용과 함께 영역구분이 확실하고 진입장벽이 강한 일본 업계의 특색,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상과 공의 활동 주체 존재가 정책의 탄생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시정촌합병과 행정 권한의 축소 등으로 촉발된 비영리민간단체(NPO)의 활동과 우리의 베이비 부머에 해당하는 이른바 단괴세대라 불리는 은퇴자들의 농촌지향 등의 요인도 농상공연대 정책이 성공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타 업종에의 진출이 비교적 쉽고, 지역 내에 연대 가능한 농상공 활동 주체가 취약하다. NPO 조직도 많지 않지만 행정 라인 중심의 정책집행으로 NPO가 활동할 공간도 많지 않다. 그래서 농상공 연대 정책이 우리나라에서는 자칫 대기업중심의 연대가 되거나 아니면 형식만 농상공연대지 실제로는 농, 상 혹은 공 어느 하나가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가 될 가능성도 있다. 포장만 다를 뿐 과거의 지역 활성화 정책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무릇 외국의 정책을 벤치마킹할 때는 정책의 내용만이 아니라 정책이 작동하는 여건과 토양을 아울러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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