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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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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예방적 살처분과 백신 접종의 딜레마(dile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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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우병준
KREI 논단| 2010년 12월 20일
우 병 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지난 2000년과 2002년 구제역 발생 이후 우리나라는 오랜 시간동안 구제역 청정국의 지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올해 1월과 4월의 구제역 발생에 이어 11월에 다시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국내 축산업계는 큰 혼란에 빠졌고 일부에서는 축산업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커지고 있다. 구제역 발생으로 2000년에 2,216두, 2002년에 16만 두를 살처분했었다. 올해의 경우는 지난 1월부터 현재까지 20만 두 이상을 이미 살처분했고 그 숫자가 앞으로 더 증가할 수 있기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구제역(FMD; Foot and Mouth Disease)은 소, 돼지, 양, 염소, 사슴 등과 같이 발굽이 둘로 갈라진 우제류(偶蹄類)에 발생하는 급성전염병이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구제역을 A급 가축전염병으로 분류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지정하고 있을 정도로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강하고 치사율도 50%에 달하는 위험한 질병이다.  

 

현재 구제역 전파를 막기 위한 대응방법은 질병 발생지점을 중심으로 500m~3km 이내에 위치하는 모든 우제류에 대해 예방적 살처분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방적 살처분을 통한 방역활동은 과거의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때 적용했던 방법으로 주요 법정가축전염병에 대한 긴급행동지침(SOP)에 기초한 것이다. 이는 질병 감염여부와 관계없이 바이러스 전파의 매개체가 될 수 있는 인접 지역의 가축을 미리 살처분하고 인간과 차량 등에 대한 이동통제를 실시하는 것으로 질병전파를 차단하게 된다.   

 

이와 같은 예방적 살처분 실시 과정에서 축산농가와 방역 당국 간에 갈등이 벌어지고 살처분 대상 농가에 대한 보상비 지급 등 정부 예산지출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급박하게 진행되는 매몰과정에서 동물복지 문제가 발생하고 언론을 통해 살처분과 매몰과정이 보도되면서 소비자들이 축산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여러 언론매체에서 지적한 농가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발생 가능성과 함께 예방적 살처분 중심의 방역과정이 정말로 효과적이고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 때문에 백신 접종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구제역이 상시 발생하는 아시아지역 국가들은 대부분 살처분과 함께 백신 접종을 병행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지역 국가들은 예방백신 접종 중심의 정책을 실시한다. EU의 경우는 살처분을 우선 실시하고 질병전파가 우려될 경우 질병 발생 초기에 한해 예방백신 접종 필요성을 검토한다. 단, 이 경우에도 전국 단위의 예방백신 접종이 아니라 질병전파 우려 지역에 한해서만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질병이 근절된 이후에는 백신을 맞은 가축들을 살처분 조치한다. 백신 접종 후 살처분을 하는 이유는 백신을 이용할 경우 보균 가축에 의한 2차 질병감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백신 접종 지역에 백신을 맞은 가축이 남아있을 경우 구제역 청정지역이 되기까지 질병 종식 후 1~2년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며, 그 기간 동안 계속해서 차단방역과 같은 이동제한이 실시되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불편과 경제적 손실이 가중되고 해당 기간 동안 관련 축산물의 외국 수출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문제점을 고려하여 네덜란드와 일본은 구제역 발생지역 인근에 백신접종을 실시한 후 질병이 근절되자 백신접종을 받은 가축을 모두 살처분하고 OIE로부터 ‘백신 미사용 구제역 청정국가’의 지위를 획득했다.   

 

만약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진정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축산업 기반의 존속을 위해 예방적 살처분을 중단하고 염소와 사슴 등을 포함한 모든 우제류에 대해 전국적으로 예방접종을 실시해야 한다. 이 경우 “백신 미사용 청정국”이라는 지위를 잃어버리고 그동안 구제역 발생을 이유로 쇠고기와 돼지고기 등의 수입을 금지했던 국가들로부터(예를 들어 중국) 관련 축산물 수입을 개방하라는 압력을 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방적 살처분을 중단하고 전국적인 백신접종을 실시하는 것은 질병의 확산 정도와 여러 가지 경제적인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축산 농가들이 특정 지역에 조밀하게 집중되어 단지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질병이 발생하면 그 피해가 해당 농가에서 그치지 않고 인접 농가에게까지 확대된다. 결국 악성 가축전염병의 발생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은 축산농가이며, 가축질병 방역의 1차적인 책임을 지는 사람도 축산농가다. 따라서 축산농가와 관련 이해당사자들의 철저한 가축질병 방역의식과 실천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더 이상 구제역의 추가 발생 없이 현 상황에서 종료되어 농가와 방역 관계자들의 고통이 멈춰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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