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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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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 커피 한 잔과 꽃 한 다발의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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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박기환
KREI 논단| 2011년 8월 16일
박 기 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8월초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커피 한 잔에 담긴 사회경제상’ 보고서에 의하면, 커피 원두 생산이 거의 전무한 우리나라의 성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312잔으로 하루에 한 잔 정도의 커피는 마신다고 한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듯 2006년 1,500여 개에 불과했던 커피전문점은 2010년 9,400여개로 불과 4년 사이 6배 이상 증가했다. 동네 곳곳에 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이른바 테이크 아웃(Take-out) 커피를 마시며 걷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끼 밥값보다 비싸 사치로만 여겨졌던 커피가 이제는 쉬거나 일하면서 향긋함을 즐기는 낭만이자 여유의 대명사로 자리 잡아 어느덧 새로운 문화로 정착한 것이다.

 

  커피 시장이 성장하는 동안, 커피만큼 향긋한 꽃 시장은 점차 위축되고 있다. 꽃은 일반 농산물에 비해 상대적 고소득 작목으로 평가받아 1990년대 중반부터 크게 성장하여 2005년 1조원까지 생산액이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후 매년 생산액이 감소하여 2009년에는 2003년 수준인 8,600억 원으로 후퇴하였다.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 부진이 가장 큰 원인이다. 채소나 과일, 축산의 생산액은 2005년 이후에도 정체 내지 소폭 증가했음에도 유독 꽃만 경제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꽃을 사치품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경제상황이 악화되면, 소비자는 가계 지출에서 꽃과 같은 품목의 소비를 가장 먼저 줄이며, 정부는 앞장서서 공직자 화환수수 금지 조치 등과 같은 소비억제 정책을 단행한다. 1999년 6월 공직자 화환?화분 수수금지 조항을 포함한 ‘공직자 10대 준수사항’이 발표된 직후 꽃 가격은 최대 50%까지 폭락했으며, 지난 2월 국민권익위원회가 공직자의 3만 원 이상 선물, 화분 등의 수수금지 조치를 취했을 때도 꽃 가격은 요동쳤다. 성인 1인당 꽃의 연간 소비액은 2만 3,500원(국민 1인당으로 산정 시 16,750원)으로 커피 소비액 10만 9,200원(자판기 커피 가격 350원 적용×321잔)의 20% 정도에 불과하며, 그 흔한 꽃 한 송이조차 장식되지 않은 사무실이 수두룩해도 방문객을 위해 기꺼이 커피 한잔쯤은 내어 놓는다. 그런데도 꽃을 사치품처럼 취급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가끔 매스컴을 통해 축하 화환 대신 쌀을 받아 기부하는 선행이나, 승진으로 들어온 난을 돌려주는 청렴한 공직자의 모습이 보도된다. 기부에 인색하고, 여전히 부조리가 근절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뉴스는 분명 흐뭇하고 감동적인 보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오늘도 뜨거운 온실 속에서 꽃을 키워내는 재배농가의 한숨이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들 꽃 재배농가는 값비싼 귀금속을 파는 사람이 아니며, 그저 도시 근로자 가구 소득의 66%만을 벌고 있는 평범한 농업인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최근 미국의 신용 강등에 국내 주식시장은 연일 휘청거리고 있다. 이 여파로 또다시 국내 꽃 시장이 휘둘릴까 우려된다. 부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지 않았으면 한다. 요즘처럼 우울한 뉴스가 많은 날, 향긋한 커피 한 잔에 조그만 행복을 찾듯, 향긋한 꽃 한 다발에 잠시나마 근심걱정을 덜 수 있는 문화가 조속히 정착되길 기대해 본다. 그 때가 되면, ‘커피 한잔의 여유’라는 어느 광고의 카피 문구가 ‘꽃 한 송이의 여유’로 바뀌어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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