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목록

KREI 논단

KREI 논단 상세보기 - 제목, 기고자, 내용, 파일, 게시일 정보 제공
서울시의 대형마트 규제는 유통개선에 역행
4133
기고자 김병률
한국일보 이슈논쟁 | 2013년 3월 26일
김 병 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규제한 데 이어 서울시가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서 각종 채소와 신선ㆍ조리식품, 축산물, 수산물, 기호식품 등 국민들 식탁에 필수적인 51개 품목을 판매할 수 없게 했다. 아마도 시민들의 표로 선출된 시의원들이 시장골목의 무수한 상인들 표를 의식해 관철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종의사결정자인 시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치인들의 힘을 새삼 느끼는 대목이다.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이런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면 골목상권 보호라는 표면적인 목적은 훌륭하고 완벽하게 달성할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둘 것이다. 소비자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대형마트 가는 일이 줄어들고, 결국 대형마트는 문을 닫게 돼 대형마트가 없었던 1993년 이전 상태로 회귀될 것이 눈에 선하다. 이러한 정치인들의 시장 개입이 농산물 유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소비자와 생산자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형마트의 주요 농축산물 판매 규제는 유통의 가장 기초인 소비자의 원스톱 쇼핑, 즉 편리한 장보기를 위한 판매점의 상품구색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소비자는 왕'이라는 소비자 주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행정조치다. 유통의 기본원칙을 근본부터 깨는 것이다. 유통교과서를 뜯어 고쳐야 할 판이다.

 

 소비자는 선호가 다양하여 똑같은 배추라도 백화점 매장에서 유기농 배추를 기꺼이 몇 배 비싸게 사는 고급 선호 소비자도 있고, 할인점이나 재래시장에 가서 싼 배추를 사고 싶은 소비자도, 심지어 장보러 멀리 가기 귀찮아 집 앞 슈퍼마켓이나 식료품점에서 좀 비싸더라도 기꺼이 사는 소비자도 있다. 대형마트의 판매 규제는 소매유통경로를 제한해 소비자들의 구매처 선택권을 빼앗는 결과를 가져오고, 유통경로간 경쟁환경도 제약하여 유통효율을 떨어뜨리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건전한 경쟁환경 조성'이라는 유통개선 방향과 정면 배치된다.

 

 또한 95년 유통시장 개방 이후 문을 연 전국 400여개 소비지 대형마트와 SSM은 이들에 농산물을 납품하는 도매시장 중도매인과 전국의 농산물 산지유통시설, 생산자조직에서 농산물을 신중하게 선별 포장해서 납품하는 중요한 판로로 자리잡고 확대일로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판매를 규제하여 바이어들의 구매가 완전히 끊긴다면 지금까지와 달리 도매시장이나 재래시장 식료품점 등에 판매해야 하는 엄청난 변화를 겪어야 한다. 대량 납품하던 판매규모화도 물거품이 될 것이다. 정부가 지원하여 많은 비용을 들여 만든 300여개의 현대적인 산지유통시설들이 이들에 맞추어 선별 포장하던 것을 포기하고 판로를 도매시장이나 영세소매점들로 전환해야 한다. 생산자들의 판매경로를 다양화하여 판매경로간 경쟁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유통개선에 정면 배치되는 조치다.

 

 그러면 대형마트 때문에 재래시장과 영세한 골목상권을 이대로 몰락시킬 것인가 하는 반론이 나올 것이다. 아니다. 농축산물 유통개선은 중간유통마진이 평균 44%, 채소 71%, 과일 50%, 축산물 46%로 높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런데 유통마진을 잘 뜯어보면 전체 유통마진의 62%, 축산물은 81%가 소매단계에서 발생하고 있어 오히려 소매단계 유통개선이 핵심이다. 소매단계에서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경로를 다양화해서 경쟁여건이 형성돼야 소매점포들이 유통마진을 줄이는 노력을 할 것이다. 대형마트는 산지 직거래를 확대하고 물류비용을 줄이는데 앞장서고 있다. 물론 대형마트도 과다한 유통이윤을 취하지 않도록 모니터링해야 한다.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강한 경쟁상대인 대형마트의 영업을 못하게 하는 것은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는 영세 소매점들의 경쟁력을 키워 차별화하고 틈새시장 역할을 충실히 하여 나름 생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영세 소매점들의 구매경쟁력을 높이도록 구매협동조합을 육성한다든지 공동물류센터를 만들어 저장, 포장 비용을 줄이고, 공동수배송체제를 만들어 운송비용도 줄여야 한다. 저온저장고를 지원해 감모비용을 줄이고 신선도를 유지해 제 값 받고 소비자에게 팔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소매단계의 유통마진을 줄이고, 건전한 경쟁환경을 만들어 효율을 높이고, 소비자 구매선택 폭을 넓혀 만족도를 극대화하는 길이다. 유통개선의 요체이다.

파일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