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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폐업 확산, 그 이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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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박기환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15년 10월 16일
박 기 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나라에 포도가 전파된 것이 언제쯤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략 삼국시대 전후였을 것으로 추측되며, 상업적 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906년 뚝섬 독도원예모범장이 설치된 이후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도 일본인이나 일본 유학자에 의해 신기술이 도입되면서 대규모로 포도가 재배되었다고 한다. 이후 1960년대에는 지역별 특화사업으로 포도재배를 권장하였으며, 본격적으로 포도 관련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한·칠레 FTA 이후 성장세 꺾여

포도는 과거 국산 제철과일 중의 하나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아마도 한번쯤은 국내산 포도로 새콤달콤한 포도주를 담갔던 우리네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았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이 덕분에 포도 재배면적은 1970년 6000ha에서 2000년 3만ha로 크게 증가하였으며, 소득향상과 더불어 1인당 소비량도 1kg 내외에서 10kg까지 대폭 확대되었다.

거침없는 성장세를 이어오던 포도는 수입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한풀 꺾이기 시작하였다. 2000년대 초반 8000톤이었던 수입량은 2004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2005년에는 1만3000톤으로 크게 증가하였으며, 작년에는 5만9000톤까지 수입되었다. 이는 작년에 국내에서 생산된 포도의 23%에 해당되는 물량이다. 가히 FTA 시장개방 물결을 가장 먼저 맞닥뜨린 ‘개방 1세대’ 품목다운 수입 증가세라 하겠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포도 재배면적은 매년 감소하여 2014년 1만6000ha로 2000년에 비해 절반 가까이나 줄었다. 물론, 포도의 주요 수입시기가 계절관세 등으로 인해 국내 출하기와 크게 겹치지 않아 FTA가 직접적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수입량이 많아지면 상대적으로 국내산 소비는 줄게 된다는 사실 또한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부정하기 어렵다.

생산 늘고 값은 하락 ‘진퇴양난’

거센 개방의 여파 속에서도 힘겹게 버텨오던 포도는 유래 없는 기상호조로 면적 감소에도 불구하고 작년 생산량이 크게 증가하였다. 올해 역시 생산량이 줄지 않아 거래가격은 2년 연속 낮게 형성되었다. 재배농가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일 수밖에 없는 최악의 사태인 것이다. 이 때문에 2015년 5월 ‘FTA 농어업법’ 제9조에 의해 폐업지원금 지급품목으로 노지포도, 시설포도가 선정되자 전국적으로 포도폐업 신청이 상당수 이루어지고 있다. 폐업신청이 은퇴를 앞둔 고령농이나 기술력이 부족한 농가 중심이라면, 자연스러운 구조조정과 연결되어 국내 포도산업 경쟁력 향상 측면에서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충분히 농업 경영이 가능하고, 능력도 우수한 농가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면,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

우선 폐업지원금을 신청한 면적 이상으로 포도 생산량이 줄어 당장 내년에는 가격이 아마도 상승할 것이다. 폐업하지 않은 농가 입장에서는 가격이 오르는 것이 희소식이겠지만, 문제는 다음에 있다. 포도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는 감소하게 될 것이고, 수입포도는 당연히 더욱 증가한다. 즉, 국내산 포도 소비는 감소하는 대신, 자칫 그 자리를 수입 산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경우 폐업 이후 5년 뒤, 다시 포도 재배로 되돌아오는 것은 불투명하다.

다음으로 타 작목의 수급과 가격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통상 과수를 재배하던 농가는 타 작목 전환 시 동일한 과수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충분한 경영 능력이 있는 포도농가가 폐업신청 이후 대체작목으로 사과나 복숭아 등 최근 들어 생산이 증가하는 작목을 선택할 경우 이들 품목은 생산량 증가로 가격하락이 우려된다. 특히, 복숭아는 2014년부터 생산이 확대 중이며, 유목 면적이 2011년부터 증가세이기 때문에 향후 성목면적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여기에 폐업한 포도농가까지 복숭아 생산에 대규모로 합류하게 된다면, 조만간 과잉생산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주어진 여건 내에서 폐업을 할지, 아니면 계속해서 현재대로 생업을 이어갈지는 오롯이 농가 스스로의 몫일 것이다. 그러나 폐업 이후에도 야기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충분히 숙지해야 한다. 또한, 폐업만이 능사가 아니라 보다 소비자 지향적인 길도 모색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국내포도는 켐벨얼리, 거봉, MBA, 델라웨어로 한정되어 있지만, 청포도에 대한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어 청포도 품종의 수입은 증가세이다. 이 때문에 당도가 높은 청포도 품종을 도입하여 재배하는 것도 폐업으로 발생하는 리스트를 회피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수입산이 국산 자리 대체 불보듯

현재, 국내 포도 산업은 제2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포도산업 자체뿐만 아니라 자칫 과일 전반에 걸쳐 문제가 확산되지 않도록 유념해야만 한다. 혹여나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 폐업을 신청한 측면은 없었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하며, 지자체와 정부는 면밀한 자격요건의 점검은 물론, 특정 작목에 집중되어 생산대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모쪼록 국내 포도 산업이 작금의 전환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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