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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소비자를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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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박기환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15년 11월 13일
박 기 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바야흐로 본격적인 과일의 향연이 펼쳐지는 계절이다. 1년 내내 자식들 보듬듯이 금이야 옥이야 길러낸 과일들이 풍성하게 결실을 맺었고, 적든 많든 맛있게 먹어 줄 소비자를 기다리고 있다. 늦가을에는 농업인의 마음을 멍들게 했던 오렌지나 포도, 망고 등 과일 수입도 뜸한 시기라 오롯이 국내산 과일들이 서로 자웅을 겨루게 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에 의하면, 올해 사과는 대풍이라 후지의 경우 전년보다 14%가 많고, 크기는 좀 작아도 당도와 색택은 어느 때보다 좋을 거라고 한다. 막바지 출하가 이어지고 있는 포도도 출하량이 전년보다 많겠으며, 토마토와 딸기, 시설수박 출하량 또한 작황이 좋아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다만, 노지온주와 단감은 생산량이 전년보다 다소 줄어도 품질은 상당히 좋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야말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질 좋은 과일을 다양하게 맛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시기로 활발한 소비를 기대하고 있다.

소비 패턴 변화 따라잡기 시급

그런데 소비가 심상치 않은 기조로 흘러가고 있다. 주요 과일·과채류의 출하량이 증가해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좀처럼 소비자의 지갑은 쉽게 열리지 않고 있다. 경기침체 등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겠지만, 그동안 농업부문이 소비자 생활 패턴과 기호 변화에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1인 가구 수는 2000년 226만 가구에서 올해 506만 가구로 15년간 2배 이상 급증하였고, 이에 따라 전체 가구에서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16%에서 27%로 11%P 상승하였다. 20년 뒤인 2035년에는 763만 가구로 세 집에 한 집 꼴은 1인 가구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현대경제연구원). 시장 개방화 여파로 과일 수입은 2000년대 이후 연평균 7%씩 증가하여 70만톤 이상이 수입되고 있다. 과거 수입되는 품목은 바나나와 오렌지 중심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소비자의 기호 변화로 인해 바나나와 오렌지는 물론, 포도, 체리, 망고, 자몽 등 상당히 많은 품목이 들어와 빠르게 국내 시장을 잠식해 가고 있다.

비농업부문에서는 변화하는 소비 구조에 대응하고자 다양한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이른바 싱글족들을 위한 미니세탁기, 슬림형 냉장고 등 실속형 미니 가전 아이템이 이미 출시된 지 오래이며, 1인 전용 음식점도 곳곳에 적지 않게 포진하고 있다. 수입과일에 길들여진 소비자 취향에 맞춰 등장한 망고빙수는 이젠 대표적인 여름철 빙수로 자리 잡았으며, 젊은 층을 겨냥한 자몽주스도 인기몰이 중이다.

중소과·소포장·편의성에 초점

이처럼 비농업부문이 소비환경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해 가는 동안, 안타깝게도 농업부문은 여전히 관행에 머물러 있다. 사과는 후지 품종이 전체 재배면적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배도 신고의 비중이 83%에 달하고 있다. 단감도 부유가 재배면적의 82%, 포도 또한 캠벨얼리가 67% 내외로 특정 품종의 집중도가 상당히 높다. 이들 품종의 2000년대 초반 비중도 최근과 별반 다르지 않아 신품종 도입 없이 관행적으로 재배했던 품종을 지금까지도 재배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입맛과 기호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물론, 사과나 배와 같은 과일은 명절 특수 때문에 제수용과 선물용을 위해서는 대과 품종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는 없다. 더욱이 과수의 수명을 고려한다면 하루아침에 품종을 교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가정용 소비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이미 대과가 아니라 중소과이며, 포장 형태도 낱개나 소포장을 선호한다. 수입되는 포도도 소비자가 껍질째 먹기 편한 청포도가 계속 확대되는 추세이다. 1인 가구 수가 증가할수록 중소과, 소포장, 편의성에 대한 선호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농업부문은 공산품처럼 변화에 즉각 반응하기 쉽지 않는 구조이며, 소비자 기호에 적합한 품종을 개발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어렵게 개발된 품종조차 크기가 작아 수량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그저 지금의 관행을 바꾸기 귀찮아서 사장된 경험 또한 많지 않은가. 때로는 과감한 변화가 성공으로 이어진다. 참외는 품종을 교체하면서 시장에서 평가가 상당히 좋았으며, 면적 확대로 가격이 떨어지긴 했어도 대추형 방울토마토가 대세로 등장하기도 했다. 국내 육종품종인 ‘설향’이 딸기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으며, 아직은 재배 비중이 미미한 수준이지만 ‘태추’와 같은 단감품종의 시장 선호도는 높다.

관행의 틀 깨고 과감한 도전을


소비자들은 변화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으며, 이제는 국산 애용이라는 애국심에 호소하는 데 한계에 도달했다. 일례로 포도 가격이 오르면, 국내산 포도 구입을 줄였다가 수입이 많은 시기에 수입포도 구매를 늘리겠다는 소비자가 상당수(34%)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과일관측 11월호). 수요자 중심·소비자 지향적 농업, 이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대세이다. 관행의 틀을 깨고 적극적인 도전을 통해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발돋움해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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