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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사회경제적 약자 배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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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송미령
농민신문 기고 | 2016년 5월 16일
송 미 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


몇몇 선진국 출장 중에 면담한 공무원과 식사를 하거나 작은 선물을 주고받을 때 적잖이 놀란 적이 있다. 함께 식사하는 자리인데도 본인이 싸온 도시락을 먹거나 자신의 밥값을 따로 계산하는 것이었다. 작은 선물임에도 금액까지 확인하는 일도 있었다.

야박하고 정이 없다 할 수도 있지만 그게 바로 선진국의 면모이다. 또한 그 선진국들은 집집마다 꽃을 장식하는 여유가 있고, 농민들의 소득도 안정돼 있는 농업선진국이기도 하다.

우리도 부정부패 없는 선진국 진입을 위해 지난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을 제정했다. 그 시행령이 13일 입법예고됐다.

법률의 취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했기에 시행령을 통해 법 시행의 합리적 기준이 마련되길 기대해왔다. 그러나 일부는 모법 취지에도 불구하고 현실과는 괴리가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재생산되고 있다.

포괄적 법 적용 대상 문제나 행위규정의 모호성 등은 차치하고 당장 내수시장 침체 심화와 내수시장을 지탱하는 기간산업 위축이 더 걱정이다.

특히 우리 농축산업의 위축이 불가피해 보이는 터라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약 23조원 규모로 집계되는 과일산업과 축산업의 경우 획일적 선물가액 규제로 산업규모 축소는 물론이고 그간 노력해온 품질 고급화와 고부가가치화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높다.

유사한 경험이 화훼산업에 불어닥친 적이 있다. 2003년에 꽃 선물 3만원, 애경사 화환 5만원 초과 때 부정금품으로 처분한다는 ‘공무원 행동강령’으로 1조원 정도였던 화훼산업 규모가 25% 이상 축소됐다.

각종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밀려드는 값싼 외국산 농축산물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농업정책 자원과 농민들의 절절한 노력을 투입함으로써 국내산 농축산물의 품질 향상과 농축산업 부가가치 제고를 지향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비록 가격은 다소 비싸더라도 품질은 국내산 농축산물이 뛰어나다는 소비자 인식이 어느 정도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5만원 이상 선물을 금지하는 당해 법률이 시행되면 그간의 노력이 빛을 잃을 수도 있다. 우리 농축산물 시장의 특성상 명절 등의 선물 소비가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바,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될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외국산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식사금액 한도 상한은 외식산업 부문의 매출 하락 요인이 될 것인 바, 외식산업의 식재료를 공급하는 국내 농축산물 소비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쉽게 예견할 수 있다.

그 누구도 부패 없는 정의로운 사회를 바라지 않는 이는 없다. 이 법률의 합리적 작동을 통해 선진국 수준의 부패예방시스템이 정착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그러나 특정 산업이나 특정인들이 피해를 당하는 것 또한 사회 정의에 어긋남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농축산업은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기간산업으로서 국민의 식량안보를 책임지는 한편 국가의 경제위기 때마다 다각적 범퍼(완충장치) 역할을 수행한다. 국가 성장의 대지 역할을 하느라 축소된 농축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6차산업화·수출산업화를 시도하는 등 다각도의 노력을 경주하는 즈음에 우리 농민들이 좌절하거나 위축되지 않도록 배려가 필요하다.

바라건대 농축산물에 한해서는 가액의 범위를 현실에 맞게 상향 조정하는 융통성이 더해져야 한다. 우리의 경제사회적 수준과 현실을 고려한 보완 입법을 통해 합리적이고 탄력적이며, 보편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법률 시행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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