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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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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박기환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16년 6월 3일
박 기 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얼마 전 아파트 앞 조그마한 공터에 노랗고 알록달록한 원복을 입은 유치원생들이 인솔 교사의 도움을 받으며 꽃모종을 심고 있었다. 아이들의 사뭇 진지한 표정이 어찌나 해맑고 귀엽던지…. 가던 길을 멈추고 쳐다보고 있자니 그야말로 날개 없는 천사들이었다. 그런데 몇 주 뒤에 생각지도 못한 변화가 일어났다. 쓰레기로 방치됐던 그곳은 형형색색의 꽃들로 어여쁜 화단이 돼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동네의 멋진 정원으로 탈바꿈했다.
 

꽃은 시기별로 가격 등락폭 커

지하철 역 초입에는 한 초등학교의 병설 유치원이 있다. 지하철을 탈 때면 언제나 마주하게 되는데, 유치원 앞의 낮은 담벼락에는 어김없이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었다. 급기야 아이들을 위해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달라는 푯말까지 내걸렸지만, 조금 잦아들었던 쓰레기 투기는 다시 일상이 된 듯 했다. 그러던 것이 최근 그곳에 꽃을 심은 아이들의 실명이 달린 아담한 화단을 조성하면서 더 이상 쓰레기는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이렇듯 꽃은 우리의 일상에 작지만 의미 있는 기적을 선사한다. 5월은 유독 꽃과 연관된 날이 많은 시기다. 5월 5일 어린이 날, 5월 8일 어버이 날, 5월 15일 스승의 날, 5월 셋째 월요일 성년의 날, 5월 21일 부부의 날. 많은 이들이 꽃다발을 건네며 사랑과 고마움, 축하를 전하곤 한다. 사치스러운 금은보화가 아니어도 꽃 한 다발에 주는 즐거움과 받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꽃이란 그저 그 이름만으로도 웃음 짓게 하는 행복 바이러스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은 특수기(일본에서는 모노히(もの日)라고 칭한다)가 존재해 어떤 기념일에는 수요가 많고 가격도 오르는 반면, 이른바 비수기에는 가격이 급락하는 특성이 있다. 예컨대 졸업시즌과 발렌타인데이가 있는 2월의 장미(비탈) 도매가격(양재동 화훼공판장 기준)은 2015년 1속당 7610원이었지만, 수요가 없는 7월에는 2010원으로 대폭 하락했다. 이 때문에 많은 꽃 재배농가는 성수기에 판매를 집중하면서 이른바 비수기인 6~9월을 버티어 낸다.
 

그런데 최근 들어 경기침체 영향으로 꽃 소비가 부진하게 되자 가격의 하락세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장미 가격이 가장 높게 형성되는 2월의 경우 2016년 도매가격은 전년보다 10% 하락했으며, 봄철 소비가 많은 심비디움의 2016년 3월 도매가격도 전년대비 10% 낮았다. 이를 2013~2014년과 비교해도 장미는 5~9%, 심비디움은 오히려 32~54%나 더 떨어진 수준이다. 인건비나 자재비가 상승하는 상황 속에서 꽃 재배농가의 경영압박이 상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6~9월 비수기에 화훼농가 시름

내수가 어려우면 수출이 중요한 판로 수단 중의 하나로 작용한다. 그러나 꽃 수출은 대일본 의존도가 상당히 심한데, 지속적인 엔저 여파로 인해 한 때 1억 달러를 넘어섰던 수출액이 2015년에는 2850만 달러로 1/3 수준 이하로 급감했다. 반면, 꽃 수입은 작년 6000만 달러 내외로 2014년 이후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되는 추세다. 특히, 어버이날 수요가 많은 카네이션 수입은 2010년 138만 달러에서 2015년 228만 달러로 2배 가까이 증가하였으며, 올해도 상당량이 수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수출이 여의치 않은 가운데 꽃 수입이 확대돼 화훼산업 전반에 걸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이른바 김영란 법 시행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대로 시행된다면 경조사 화환은 물론이거니와 선물용 난 수요는 줄어 들 수밖에 없다. 꽃 재배농가는 내수 침체, 수출 부진, 수입 증가의 3중고에 더해 추가적인 수요 감소를 겪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오늘도 길가에는 이름 모를 들꽃이 피어 있으며, 조성된 화단 속에서 자태를 뽐내는 꽃들도 있지만, 늘 거기에 있었기에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망각한 채 무심코 지나치고 있다. 그렇지만 만약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에 풀도 나무도 꽃도 없이 그저 잿빛 콘크리트와 일상에 찌든 사람들만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그 때에도 어느 가수의 외침대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까? 우리는 꽃이 주는 혜택을 누리면서도 단지 생필품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부패근절이라는 미명 하에 꽃 재배농가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때다. 적어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우려면, 따가운 뙤약볕에서 3중고, 4중고에 시달리는 꽃 농가의 서글픔을 품어줘야만 한다.
 

허약한 구조의 화훼산업 지원을

이제 곧 꽃은 비수기라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가야 한다. 화훼산업의 허약한 구조 속에서 꽃 농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이 고난의 길을 헤쳐 나가기 어렵다. 내수 증진을 위한 홍보 강화와 수출 지원 확대, 수입 꽃의 부정 유통 근절, 김영란 법에서 화훼를 비롯한 농축산물에 대한 예외대상 가액범위 상향 조정 등의 방안이 절실하다. 모쪼록 꽃 농가를 비롯한 정부, 각계각층의 노력으로 작금의 난관이 극복될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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