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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게 권농(勸農)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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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16년 7월 22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청년 실업률 10% 시대라고 한다. 엄혹한 도시 노동시장을 희망 없이 배회하는 젊은이에게 농촌에서 농사짓는 삶을 권하는 이도 없지 않을 테다. ‘1억 버는 젊은 농부’ 사진을 박은 귀농 홍보물을 물색 없이 들이미는 광경도 가끔 본다. 그러나 농촌이라고 사정이 더 나을 것은 없다. 권농하기 전에, 농업에 관심을 갖는 청년의 형편과 속내를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농장서 직접 가르치며 도제 교육

귀농 가구 수가 2015년에 1만 1959호였다. 가구주 연령 39세 이하인 귀농 가구가 1,150호(9.6%)였다. 전국에 경영주가 39세 이하인 농가 수는 1만 호를 넘지 않는다. 30대 이하 농가 열 집 중 한 집은 귀농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셈이다. 그렇게 보면 청년 귀농은 뜻밖의 선물처럼 놀랍고 반갑다. 게다가 농촌의 젊은이가 고향을 떠나지 않고 농업 아닌 다른 생업에 종사하다가 농사를 시작하는 일도 더러 있다. 이들 새로 들어온 ‘청년 농민’은 장래에 지역농업을 이끌 후속 세대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할 것이다. 그런데 농민이 되려는 청년의 길이 순탄치 않다. 힘겨운 시간을 근기 있게 버텨내야 한다.
 

먼저, 농사일이 버릇처럼 몸에 배어야 한다. 각종 교육이 조금은 도움 되겠지만, 농사는 역시 몸에 쌓여야 하는 장인(匠人)의 기예와 비슷하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지만, 농사에서는 백 번 보는 것보다 한 번 몸소 겪는 게 더 중요하다. 과수원을 20년 경영한 농민도 스스로 달인이 아니라고 고백한다. “태풍 때문에 말아먹은 게 두세 번, 병충해가 돌아 망친 게 서너 번, 냉해나 고온장해를 입은 게 대여섯 번입니다. 정상적으로 농사지어 본 게 절반도 안 되는데 무슨 달인이랍니까?” 하물며 초보자에게 영농 실패의 위험은 얼마나 크겠는가? 실패하면 궁색한 처지에 빠진다는 압박감 없이, 적어도 두 해 정도는 배워 가면서 농사지을 농장이 있으면 좋을 테다.
 

농촌의 사회적 관계망에 편입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도시의 월급쟁이에게도 인간관계는 중요하지만, 농촌 생활에서 그 중요성은 차원을 달리한다. 직장인은 몸만 회사에 가서 일하고 월급을 받는다. 그런데 농민은 몸뚱이만 있다고 제 노릇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토지, 농기계 등 생산수단을 스스로 갖추어야 한다. 모조리 내 돈 주고 살 수 없으니 빌려야 한다. 농산물을 판매할 때도 이웃 농민에게 얹혀서 팔아야 할 때가 잦다. 그럴려면 인간관계와 신뢰가 쌓여야 한다. 그 같은 관계의 밀도는 대면접촉 빈도에, 즉 이웃과 어울린 시간에 비례한다. 청년 농민이 이웃과 얼마나 자주 어떻게 접촉하느냐는 문제는 뜻밖에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자영농 훈련 중 급여로 생계 지원

자영농으로 살아가려면 크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영농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땅값은 비싸고 농지를 빌리기도 쉽지 않다. 돈 있으면 땅을 사겠는데, 청년에게는 쌓아 둔 자본이 없다. 그저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이다. 정부 정책 자금을 융자받을 수 있다지만, 담보 능력이 없는 청년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농사 버릇을 몸에 붙이고, 관계를 형성하고, 영농 기반도 확충하여 그럭저럭 농민 모양새가 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그 시간을 통과하려면 적으나마 현금 소득을 꾸준히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속된 말로, 실탄이 필요하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밑천이라고는 새파란 젊음 밖에 없는 청년은 곤경에 빠진다.
 

이 모든 난경(難境)을 헤쳐 나가도록 돕는 정책은 불가능한가? 자금 융자, 보조금 지원, 강의와 실습으로 짜인 수십 시간의 교육과정 등 여러 정책 사업이 제각기 허공에 떠다닌다. 그것들을 한데 엮고 새로운 관점을 보태서 청년 농민 육성 정책을 제대로 펼칠 수는 없을까?
 

지역농업의 미래를 염려하는 뜻 있는 농업법인, 협동조합, 지역사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농업인 등이 나서야 한다. 농민이 되려는 청년을 농장에서 직접 가르치자. 모든 것을 몸으로 경험케 하는 도제(徒弟) 수업을 하자. 지방자치단체가 뜻을 함께하는 농업법인에게서 임차하거나 직접 조성하면 농장을 마련할 수 있다. 많은 면적에 호화로운 시설은 필요 없다. 지역에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수준에 맞추자. 농민이 되려는 청년이 2년 정도는 그 농장에서 일하며 배우게 하자. 파종에서부터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겪게 하자. 농산물 판매 수입의 일부를 가져가는 즐거움도 느끼게 해 주자. 이 같은 도제 견습의 목적은 자영농이 되는 데 있다.
 

농장을 졸업할 때까지 생계를 유지해야 하므로 인턴 급여 형식으로 생활비를 보조하자. 중앙정부가 도와주어야 한다. 청년이 농장에서 그저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체계적인 교육도 받게 하자. 농업기술원, 농업기술센터, 농과대학, 농고, 현장실습농장(WPL) 등 교육 자원은 충분하다. 청년이 한 달에 두세 번은 이웃 농가에 가서 일용 농업노동이나 품앗이를 하게 하자. 지역사회에 안면을 터야 하므로, 꼭 필요한 활동이다. 그러면서 청년이 준비할 것은 자영농으로 독립할 ‘계획’이다. 농장을 졸업할 때 ‘취농 계획’을 만들어 정부 혹은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하게 하자. 지역사회의 선배 농업인도 참여하는 위원회를 만들어 엄격하게 심사하자. 의지와 잠재력이 있는 청년에게 우호적인 조건에서 자금을 융자해 주거나 보조금을 지원하여 진짜 밑천을 마련해 주자.
 

프로그램 마련 면밀한 검토를

요약하자면, 취농 전 또는 직후에 생계를 유지할 소득, 실전적인 연습으로 농사를 몸에 익힐 환경, 지역사회와의 어울림, 젊음을 담보로 인정해 자금을 지원하는 제도 등이 농촌에서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런 구상은 면밀한 검토를 거쳐야 할 테다. 관련 기관들의 협력도 필요하리라. 갈 길은 멀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청년 농민이 농촌에 뿌리내리게 돕는 것, 이것은 ‘농민은 굶어 죽어도 씨오쟁이를 베고 죽는다’고 할 때의 절박한 심정으로 챙겨야 할 농정 과제라는 점이다. 영농 승계를 통한 가족농 재생산 가능성이 희박해진 지 오래다.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 바로 지금이 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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