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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미식당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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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16년 12월 30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통계를 뽑아본 적이 있다. 전화번호부를 뒤져 전국 읍·면의 30%쯤 되는 표본을 추출해 집계했다. 2008년의 일이다. 전국 1,400여 읍·면에서 음식점이 하나도 없는 곳의 비율이 3.3%였다. 음식점은 그래도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슈퍼마켓이나 편의점도 없는 곳이 26.7%, 금융기관이 없는 곳 10.0%, 우체국이 없는 곳 23.3%, 미용실 없는 곳 30.0%, 약국 없는 곳 46.7%, 유아교육기관이 없는 곳 33.3%, 초등학교 없는 곳 30.0%, 고등학교 없는 곳 80.0%, 문화여가시설 없는 곳이 93.3%였다.
 

얼마 전에 전라북도 J군의 마을만들기 지원센터가 작성한 자료를 접했다. 농촌 지역의 인구 감소가 주민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자료였다. 지난 20년 동안 인구 2000명도 되지 않는 A면의 생활경제권이 인구 감소와 더불어 해체 직전에 도달한 사건들을 보여주는 자료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인구가 줄면서 수요가 줄어든 읍내 시장이 제일 먼저 기능을 상실했다. 뒤이어 지역농협도 이웃한 군청 소재지 J읍의 농협과 통폐합되었다. 그리고 면사무소 소재지의 한의원과 약국이 폐업했고, 군내 버스회사는 A면과 그 배후 마을을 다니는 배차 시간을 조정했다. 계속해서 수요가 줄자 식당들도 폐업했다. 이런 식으로 중심지 기능이 소실되면서 주민들이 의료, 문화, 복지 등의 기본적인 생활 서비스를 제공받으려면 면사무소 소재지가 아니라 군청이 있는 J읍까지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요즘에는 A면에 주소를 둔 초등학생들이 5학년이 되면 J읍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간다. 지역의 젊은 층 인구는 계속 유출된다. J군 마을만들기 지원센터는 2030년쯤에는 A면의 생활경제권이 완전히 붕괴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제대로 된 밥 먹자” 주민들이 시작

당연히 국가가 보장해야 마땅하지만 농촌에는 없는 게 있다. 더러는 정부 정책 때문에 유지되기도 하지만, 사라진 것이 아주 많다. 어느 학자는 이를 두고 “인구와 시설(자본)을 ‘집적 공간’과 ‘해체 공간’으로 분화된 공간 구조에 편중 배치하는 시장 기구의 선별적 통합과정이 진행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남은 사람에겐 꼭 필요한데 사라진 것들, 그것들을 어떻게 회복할까? 손쉽고 포괄적인 해결책은 없다. 협동조합, 마을만들기,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회적 경제 등 지역사회의 자율적이고 집합적인 실천이 대안일 수 있다. 물론, 그런 실천만이 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주민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 시작할 출발점이 되기엔 충분하다.
 

읍내에 식당 하나 없는 곳,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도 전라북도 J군 A면과 다를 바 없는 농촌이다. 몇 해 전 장곡면에 식당이 생겨났다. 협동조합 식당이다. 이름은 생미식당. 3년 전 그곳에 들른 우리는 외지인이어서 밥상 앞에 앉아 차려주는 밥을 먹었다. 가격은 7,000원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5,000원을 내고 줄을 선다. 스테인리스 식판에 밥과 찬을 담아 와 여러 명이 둘러앉아 먹는다. 셀프 서비스다. 또는 시골밥상 뷔페다. 춘삼월 농번기에 식당은 성황이다.
 

생미식당에 갔던 날, 식당 차린 연유를 캐물었다. 장곡면에 ‘젊은 협업농장’이라는 곳이 생겼단다. 귀농한 청년들이 농사를 배우면서 순조롭게 지역에 정착하도록 돕자고 설립한 협동조합 농장이다. 채소를 생산한다. 농장의 젊은이들, 몇 달 동안 라면과 한 가지 반찬으로 끼니를 때웠단다. ‘반찬이 여러 가지 나오고 그 종류도 바뀌는 밥 좀 먹자’는 심사로, 이웃의 규모가 큰 영농조합법인 구내식당에 신세 지기 시작했다. 두 법인의 식구들이 더불어 밥 먹다가 어느 날엔가 ‘지금 열 몇 명이 밥을 먹고 있네. 식당을 차려도 되겠는데.’라고 생각했다. 그 자리가 생미식당 협동조합 창립 준비 모임이었던 셈이다.
 

젊은이나 노인이나 일하다 찾아와

농사일 바쁜 철에 새참을 이고 와서 농막에 둘러앉아 밥 먹던 풍경, 사라진 지 오래다. 농번기 들판에선 읍내에 전화 걸어 짜장면을 시켜 먹는 광경이 흔하다는 신문 기사가 있었다. 그 글을 읽은 때가 1990년대 중반이다. 음식을 배달시킬 중국집도 없는 농촌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작금의 엄연한 실정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르신 두 분이서, 또는 혼자서 일하다가 점심을 챙기는 것도 곤란하다.
 

장곡면에서 협동조합으로 식당을 차린 그 발상은 농촌 지역사회의 ‘필요’에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젊은이나 늙은이나 일하다가 찾아온다. 소박하지만 풍성한 식사를 즐긴다. 밥심으로 일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함께 온 어떤 이가 아는 척 질문했다. “오늘 보니 장사가 아주 잘 되는군요. 이 식당은 협동조합이라는데 수익이 나면 어떻게 합니까? 조합원들에게 배당을 줍니까, 아니면 선진지 견학이나 여행 같은 형태로 혜택을 줍니까?” 돌아온 대답이 의미심장했다. “협동조합 생미식당은 밥 먹자고 만든 겁니다. ‘필요’를 해결하려고 협동조합 하는 겁니다. 돈이 남아도 배당 안 할 겁니다. 돈이 남으면 밥값을 내려야지요. 밥 먹자고 하는 겁니다.” 협동조합 실천의 어떤 정수(精髓)를 벼락 같이 깨우치는 말이었다.
 

“돈 아닌 필요해서 한일” 정수 찔러

언젠가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농사가 그럭저럭 할 만한 일이 되는 날, 그래서 농사짓는 사람이 농촌에 늘어나는 그 날이 오면 좋겠다. 지금은 사람이 없어 들밥을 마련키도 어렵다. 하지만, 언젠가 수고한 농민들이 들판에 둘러앉아 집에서 내온 새참과 막걸리를 왁자지껄 나누는 모습이 흔한 풍경이 되면, 그날까지 생미식당이 건재하다면, 글씨 잘 쓰는 한 분을 모셔올 테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한 대목 힘찬 붓으로 써 달라 청하고 편액하여 생미식당에 드리고 싶다. “점심밥 풍비하여, 때맞추어 배 불리소. 일꾼의 처자 권속(妻子眷屬), 따라와 같이 먹세, 농촌(農村)의 후한 풍속, 두곡(斗穀)을 아낄 소냐. 물꼬를 깊이 치고, 도랑 밟아 물을 막고, 한편에 모판하고, 그나마 삶이 하니, 날마다 두세 번 씩, 부지런히 살펴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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