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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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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미래지향적 청과물 수급 및 유통경쟁력 강화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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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최병옥
KREI 논단 | 2017년 5월 31일
최 병 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10여 년간 들어선 각각의 정부는 청과물 유통구조 개선과 가격안정 등을 위하여 유통회사 육성, 생산자 조직화 체계 구축으로 지역 내 연합사업과 조합공동 사업법인 육성, 수입개방, 물가관리 등의 키워드를 내세워 각종 정책 사업을 추진하였고, 이에 따라  중앙 및 지방정부도 농업 관련 행정력을 동원하여 많은 정책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청과물유통구조 개선과 가격안정은 정부의 노력과는 별개로 기상여건이 크게 작용하는 분야이며, 청과물 생산·유통에 대한 꾸준한 투자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책사업 없이는 달성하기 어렵고 소비자가 체감하기도 쉽지 않다. 왜냐하면 청과물이 산지와 도매·소매시장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는 많은 유통단계와 경제 주체가 존재하고 이들의 시장행동이 개선되기 위한 대화와 타협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청과물 유통 전문가로 산지, 도매시장, 소비지 유통을 연구하고 정부의 청과물 유통구조 개선과 채소류 물가안정 관련 각종 TF에 참여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점은 아무리 좋은 정책이 도입되고 실행된다고 하더라도 청과물 생산 및 유통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적 사항이 정비되지 않고서는 청과물 유통구조 개선과 수급 및 가격안정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 정부에서 청과물 수급안정과 유통구조 개선을 위하여 포기하지 말고 꾸준하게 추진하여야 하는 중점 사항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청과물 생산과 유통 관련 통계기반 구축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정비가 필요하고, 이렇게 조성된 청과물 통계기반은 농업관측사업과 연계되어 수급 및 가격안정 사업이 정밀하고 과학적으로 실시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청과물 생산통계는 통계청에서 담당하고, 농업관측본부는 매달 조사표본 및 모니터요원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하여 재배면적과 생산량을 산출하고 이를 기반으로 단기 및 중장기 수급전망을 분석한다. 그러나 통계청과 농업관측본부 두 기관 모두 조사방법, 조사 대상, 조사시기, 전문성 등이 다르기 때문에 주요 품목 수확시기에 상이한 통계자료를 발표하여 청과물 생산자와 유통 및 수급관련 경제주체에게 혼란을 초래하기도 한다.

청과물 유통경로별 통계 및 유통마진 통계도 정보화 시대에 적합한 방식으로 청과물 생산과 출하특성이 반영되거나 빅데이터 분석 등의 전문적인 분석기법이 활용되지 않고, 과거부터 조사해온 관행적인 방식에 의존하다 보니 품목별 특성과 생산과 유통단계별 특성이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청과물 생산과 유통 관련 통계기반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청과물 산지부터 소비지에 이르는 유통경로와 유통단계에 내재된 문제점 및 유통주체별 마진취득 구조 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실제로 배추 값 폭등 등의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였을 경우, 관련 전문가들이 청과물 유통구조 개선대책 수립을 위한 TF팀을 구성하여 청과물 생산 및 유통구조 문제점을 밝히고 개선방안을 수립하는 작업을 여러 번 실시하여도 통계자료와 신뢰성 부족으로 청과물 생산과 유통 관련 정책사업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대책마련이 어렵다. 그러므로 청과물 유통구조 개선과 수급 및 가격 안정대책이 효과적으로 실시되기 위해서는 선진국과 같이 청과물 생산과 유통 관련 통계기반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또한 청과물 생산·유통 관련 통계 조사와 분석 업무는 전문성이 확보된 기관이 담당하여야 해당 자료를 활용한 청과물 생산 및 유통관련 R&D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둘째, 청과물은 과일류와 채소류를 중심으로 부류별로 구분하고 청과물 부류별 특성에 적합한 정책사업 목표와 추진체계를 확립하여야 한다. 청과물은 크게 과일류와 채소류로 구분 가능하지만 이 두 가지 농산물은 생산·유통·소비 분야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과일류는 생산자 조직화와 산지유통시설을 중심으로 고품질화가 진행되므로 부가가치 창출이 용이하여 산지유통시설 중심의 통합마케팅 체계 구축, 수급조절, 자조금 조성, 수출확대 등이 가능하다. 또한 공익적인 목적의 소비확대를 위한 다양한 활동(학교 및 단체급식에 활용, 건강기능성 홍보, 한 개 더 먹기 운동 등)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채소류는 인력이 부족하여 개별 생산자가 파종부터 수확 및 출하까지의 모든 작업과정을 담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임차농 형태의 산지유통인이 농작업을 대행하고 있다. 정부가 채소류 5대 민감 품목으로 지정한 배추, 무, 고추, 마늘, 양파는 생산자가 직접 경작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생산자 조직화, 수급조절을 위한 계약재배 면적 확보조차 어렵다. 따라서 과일류와 채소류는 상이한 정책목표와 추진체계가 필요하며, 그 방안은 다음과 같다. 과일류는 생산자 조직화기반을 바탕으로 고품질화, 통합마케팅, 소비촉진, 자조금 조성 등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여 생산자 조직화 체계 기반이 강력한 선키스트, 제스프리와 같은 선진국형 브랜드 경영체가 설립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채소류는 생산과 수확 및 출하가 가능한 생산자와 생산자 단체부터 육성하여야 한다. 생산자가 영세하여 영농활동이 어렵다면 임차농 형태의 산지유통인을 생산자 영역에 포함하여 채소류 수급안정사업의 주체로 육성할 수 있어야 한다. 채소류 생산의 노동력 부족, 고령화 등의 현실적 특성을 반영하여 채소류 생산이 가능한 생산자 단체가 수급안정 사업을 시행할 수 있어야 사업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셋째, 채소류 분야에서 정부의 시장개입을 최소화하고 중장기적으로 생산 분야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예산이 소요되더라도 계약재배를 확대하여 수급 및 가격안정을 지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현재의 채소류 수급 및 가격정책은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가격이 상승하면 수입을 확대하고 가격이 하락하면 소비촉진, 시장격리 등을 실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채소류 소비지 시장은 가격 위주로 경쟁하기 때문에 저가의 중국산 채소류가 지속적으로 공급되면 실수요업체는 국내산보다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을 선호하므로 국내산 채소류 소비가 감소하게 된다. 채소류 소비감소는 다시 재배면적 감소와 시장규모 축소로 이어진다. 채소류 시장규모 축소는 기상재해 등으로 발생하는 생산량 감소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조그마한 외부충격이 발생해도 채소류 가격이 과거보다 더 상승하게 된다. 채소류 산업에 이러한 악순환은 국내산 채소류 경쟁력 기반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최근과 같이 수입산 채소류의 가격이 국내산 채소보다 더 상승하는 기현상을 발생하게 한다. 그러므로 정부는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더라도 단기적인 성과를 나타내는 수입 조치와 시장격리보다는, 채소류 국내 생산기반 강화를 통하여 수급과 가격안정을 추구하는 정책을 지향하여야 한다.
 

넷째, 청과물 유통시설 관련 수직적 계열화 체계를 정비하여 유통분야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여야 한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원예농산물 산지, 도매, 소비지에는 막대한 정책자금이 투입되어 생산자 조직화 체계를 바탕으로 산지유통시설, 도매시장, 거점 물류센터, 소비지 판매장 등을 중심에 둔 시설위주의 수직적 유통체계가 빠른 속도로 정착되어 왔다. 지금부터는 청과물 유통 정책 사업이 하드웨어 기반을 구축하는 시설 관련 사업을 지양하고 각각의 유통단계에서 하드웨어 시설 간 수직적·수평적 연계성을 강화하여 유통효율성이 향상될 수 있는 방향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규모가 큰 산지유통시설과 도매단계에 위치한 물류센터의 경유율과 활용도가 낮은 이유를 세밀하게 파악하고 해당 시설의 활용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생산자 조직화 체계 정비와 이를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또한 지역 내 산지유통조직 간 협력체계 구축 등의 소프트웨어 사업이 지속적으로 시행되어야 청과물 유통관련 정책사업의 일관성을 추구하여 경쟁력 강화를 도모할 수 있다.     


다섯째, 과거 실패한 청과물 유통정책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고 청과물 유통환경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국내의 청과물 생산 및 유통환경에 적합한 정책이 개발 및 시행되어야 한다.  과거 청과물 유통정책 중 국내 정세에 적용하기 어려운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 사례가 도입되어 청과물 산지 및 도매유통 분야에 혼란을 초래한 적이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도 생산자 조직화 기반 구축이 중요함에도 산지 및 도매단계에 미국이나 유럽에서 볼 수 있는 대형유통시설이 설치되어 시설운영 및 가동률 문제 등이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청과물 생산 규모가 방대한 미국과 유럽에서는 거점 중심의 시설이 필요하고 자조금 조성 등을 통하여 산업 경쟁력 향상을 꾀할 수 있는 정책이 요구된다. 그러나 국내 청과물 생산 및 유통단위는 미국과 유럽에 비해 너무나 작은 규모이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기 어렵다.

또한 세계 여러 국가와 FTA 등의 추진으로 청과물 유통환경 변화가 빠르게 이루어지는 특징도 고려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 1980, 1990년대에 상인의 횡포 근절과 생산자 수취가격 향상 및 공정거래 촉진을 위하여 전국에 32개의 공영도매시장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의 가락시장을 비롯한 5개 중앙도매시장을 제외하고 많은 수의 지방 공영도매시장은 청과물 수집이 어려워 도매시장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어 기능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불과 20∼30년 만에 도매유통 체계가 도매시장에서 대형유통업체, 식자재 업체 등으로 전환된 것이다. 최근에는 온라인 유통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청과물 유통체계 개편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그러므로 국내의 청과물유통 사업은 거대한 규모의 시설사업보다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청과물 유통환경에 산지 및 도매시장, 소비지 유통 주체가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보다 다양한 유통경로에서 지금보다 폭넓은 경제 주체를 대상으로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청과물 유통구조 개선과 수급 및 가격안정이 단기간에 이룰 수 없는 목표라는 것을 인식하고 청과물 관련 통계기반 확충부터 시작하여 생산 및 유통분야에 대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정책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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