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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미래, 농촌 어린이와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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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17년 6월 6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어린이의 뜻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라고 외쳤던 방정환 선생의 활약 이후로 한반도에서 ‘어린이’는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사회적 인격이 되었다. 한참 전에 어린이날이 기념일로 지정되었고, 아동복지법이 제정되었다. 어린이는 곧 미래니까, 국가가 나서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어린이-청소년을 잘 돌보지 않는 사회의 미래는 밝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면, 한국 농촌의 미래는 아주 어둡다. 어린이나 청소년의 수가 적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나마 농촌에 사는 몇 안 되는 ‘미래들’을 어떻게 보살피는지를 보아도 전망이 어둡기는 매한가지다.
 

농촌 아이들, 방과 후엔 무얼 할까

주민 3500명인 어느 농촌 지역 A면(面), 인구 규모로 보아도 면적으로 보아도 평균 수준의 평범한 농촌이다. 이곳에는 초등학교가 딱 하나 있다. 분교가 둘 있었지만 얼마 전에 문을 닫았다.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의 학생 수는 불과 47명, 행정리(마을) 32개를 통틀어 어린이 수가 50명도 되지 않는다 하니 한 마을에 한두 명의 어린이가 있을 뿐이다. 마을에서는 친구들과 놀 수가 없다. 친구가 없으니까. 서울 아이들은 학원에서 친구를 사귄다지만, 이곳에는 학원도 없다. 마을에서 또래집단에 속해 갖은 놀이 활동을 하는 가운데 어린이가 사회화된다는 말은, 요즘 농촌 현실에는 도무지 들어맞지 않는 옛말이다. 비슷한 또래 마을 친구들과 개구리 잡으러 다니고, 연날리기며 자치기며 어울려 노는 일 따위는 현실에서 말소된 지 오래다. 이젠 농촌 출신 중년의 추억 속에 희미한 잔상으로만 남았을 뿐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게 아니라면, 농촌 아이들은 학교 끝나고 무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걸까?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심지어 농촌 주민들도, 아니 부모도 잘 모를 수 있다. 아이들이 무얼 하는지…, 누군가를 방치한다는 건, 그에 대한 관심을 끊는다는 뜻이다. 방치된 어린이가 중학생이 되어도 매한가지다. 학원이 하나도 없고 부모 대부분이 함께 농사일을 하는 어느 면 지역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놀이터이자 학원이자 쉼터로 이용하는 공부방에서 2년 넘게 아이들을 관찰한 어떤 연구자의 논문은, 농촌 아이들이 경험하는 삶의 주제를 세 문장으로 요약한다. “우린 공부는 아니에요(공부 아닌 삶).”, “농사일엔 관심 없어요(농촌적이지 않은 삶).”, “어떻게든 되겠죠(내버려 두는 삶).” 그리고 덧붙인다. 도시 지역 아이들의 일상 구조가 ‘집-학교-학원’이라는 3원 구조라면, 농촌 지역 아이들의 일상 구조는 ‘집-학교’라는 2원 구조라고. 이 같은 일상 구조에서 농촌의 아이들은 컴퓨터 중독, 공부와의 괴리, 오락성 추구에만 노출되는 문화 등의 위험성이 도시 아이들에 비해 더 크다고 한다. 학업 성취나 또래와 어울리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한 성장의 기회 같은 게 농촌의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불평등하게 주어지는 문제가 심각한 지경이지만, 당장은 더 큰 걱정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아이들이 밥을 굶는 건 아니냐는 걱정이 앞선다.
 

문턱 높은 지역아동센터 비교육적

전국에 4000개가 넘는 지역아동센터가 있다. 그 가운데 1000~2000개 정도는 농촌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일 테다. (통계자료에서는 도시와 농촌에 각각 몇 개소가 있는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런데 지역아동센터라고 해서 ‘지역의 아동이라면 누구나 와서 밥도 먹고 방과 후 학습도 하고 놀기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할 수 있는 아동의 90% 이상은 ‘우선보호아동’이어야 한다. 10% 이내에서만, 일반 아동도 이용할 수 있다. 우선보호아동이란 중위소득 100% 이하인 가구의 아동을 말한다. 즉,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 순서대로 전국의 가구를 줄 세운 다음에 중간에서 절반을 끊어 소득이 낮은 쪽 가구의 아동이 우선보호아동이다. 한마디로, 가난한 집 아이들이나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소득 수준이 중간에 못 미친다고 해서 지역아동센터에 출입할 자격이 자동으로 주어지지는 않는다. 교육급여대상 가정 아동임을 증명하는 서류, 한부모가족증명서, 다문화가정 여부를 알 수 있는 가족관계증명서, 장애인등록증 사본, 조손가정 아동임을 증명할 수 있는 가족관계증명서 따위가 필요하다. 참으로 비교육적인 지침이다.
 

A면에 딱 하나 있는 지역아동센터 책임자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지역아동센터 이용 자격을 저렇게 저소득층 가정 아동으로 한정했기 때문에, 도시에서는 일종의 낙인효과가 발생하는데 농촌인 A면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도시에서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아이들은 ‘못 사는 집’ 아이들이라고 찍히지만, A면의 지역아동센터에 오는 아이들은 27명으로 A면 전체 초등학생 47명의 56%를 차지한다는 게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다섯 중 셋은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할 자격(?)이 있는 셈이다. ‘빈곤한 다수자’에 속한 이 아이들은 눈치 볼 일이 없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지역아동센터에 오는 건 A면에서는 오히려 일반적인 일이라는 설명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린이·청소년 돌보기는 누구의 몫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속담이라고 한다. 어린이가 건강하게 자라려면 부모뿐 아니라 이웃들도 관심과 애정을 베풀어야 한다는 뜻이리라. 세간에 널리 알려진 이 유명한 속담이 공허한 울림으로 끝나지 않게 하려면 따져봐야 할 문제가 많다. 농촌 지역사회와 정부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가족 공동체와 지역 공동체가 동시에 해체 위기에 직면한 농촌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돌보는 일은 누구의 몫일까? 아이들이 미래의 주역이라고 우리가 진정 믿고 있기나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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