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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교육훈련 체계를 혁신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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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강원도민일보 기고 | 2017년 7월 13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청년 농업인 만나기가 쉽지 않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전국에 약 107만 농가가 있다. 그 가운데 경영주 연령이 40세 미만인 ‘청년 농가’수는 1만 1296가구, 그 비율이 1.1%다. 해마다 면허 시험에 합격해 의사 자격증을 손에 쥐는 청년 의사가 3000명을 넘는다. 농사를 시작하는 청년 농업인 수가 더 적을 것이다. 사실은 청년 신규취농자가 해마다 몇이나 되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통계 자료조차 없다. 청년 농업인이 의사만큼 귀하니 좋은 대접을 받을까? 그럴 리 없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농사일은 천하에 이문이 박한 것이다”라고 했는데,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사정은 변한 게 없다.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짓지’라는 말은 당연히 철없는 소리다. 온갖 난경(難境)을 각오하지 않고서야, 혹은 농사지으며 시골에서 사는 걸 만만하게 여기지 않고서야, 농업을 직업으로 선뜻 받아들일 수 없다.

가만히 앉아서 농업인 수 줄어드는 것 구경하고만 있어도 괜찮은 걸까? 수십 년 쯤 뒤에 농업인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해서 농업의 명맥만 유지하기로 작정했다면 괜찮다. 농촌에서는 아이 울음소리 끊긴 지 오래되었는데, 내친 김에 유치원이든 초등학교든 죄다 청산하는 게 세금 아끼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괜찮다. 식량자급률이 바닥을 치든 말든 외국에서 값싼 농산물을 천년만년 사다 먹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괜찮다. 혹여나, 청년 농업인 수가 적으면 그들이 훨씬 넓은 땅에서 경쟁력 있는 농사를 짓게 될 테니 가만히 기다리는 게 구조조정이라고 생각한다면 괜찮다. 4차산업혁명이 도래하여 드론이며 센서며 온갖 첨단 장치로 농사짓게 될 테니 사람 필요 없을 거라고 전망한다면 괜찮다.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농업 교육 체계에 눈을 돌려 비판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농지 등의 영농기반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은 학생 위주로 선발해 장학금, 병역면제 등 파격적으로 우대하는 한국농수산대학을 제외하고 나면, 제 구실을 하는 농업계 학교는 거의 없다. 농업계 학교 졸업생 중 몇 퍼센트가 농업인이 될까? 물론 농고, 농대를 나오면 다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른 곳에 취직하는 걸 누가 무어라 하겠는가? 그러나 의사를 양성하려고 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 같은 교육 기관을 두어 가르치듯이, 농업고등학교, 농과대학 등의 농업계 학교를 둔 기본 목적은 농업인을 양성하는 데 있다. 의대 졸업생 중 의사가 되는 이의 비율이 10%도 되지 않는다면, 그런 의대를 두고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공적인 직업교육훈련 체계로서 농업계 학교가 제 구실을 못한다면 고쳐야 한다. 아니면, 농업계 학교의 실패를 보완할 다른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프랑스 같은 선진국에서는 농업인 자격증 제도가 있어 ‘아무나 농사짓는다는 생각은 어림도 없다’며 부러워하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런데 정작 그 나라의 농업 교육 체계는 잘 소개되지 않는다. 바깔로레아로 대표되는 학교 교육 과정과 민간 직업교육 과정, 청년이 둘 중 하나를 통과해야 자격을 얻고 농업에 진입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농업 교육 체계는 어떤 형편인가? 농업계 학교는 피폐하고, 직업으로서 농업에 종사할 사람을 양성하는 민간 농업교육 과정은 없다시피 하다. 속담에, 가뭄에 도랑 친다고 했다. 가물어서 비도 안 오는데 쓸데없는 일 한다고 핀잔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물이 없을 때 도랑 바닥에 걸리적거리는 돌도 치우고 물길을 정비해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흔한 말을 믿는다면, 바로 지금 청년 농업인을 육성할 큰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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