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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농업과 여성농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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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농촌여성신문 기고 | 2018년 3월 23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사회적 농업’이란, 사회적으로 배제된 이들을 끌어안는 농업 실천이다.


누구든지 살아가려면 일상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 빈곤, 장애, 성별, 연령, 거주지, 인종 등의 여러 이유로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누리는 만큼의 재화나 서비스를 얻지 못할 때 ‘사회적으로 배제되었다’고 한다. 그 같은 사회적 배제를 완화하거나 해소하려는 농업, 즉 사회통합을 지향하는 농업이 사회적 농업이다. 최근 들어 정부는 농정 분야의 새로운 정책으로 ‘사회적 농업 확산’을 제시했다. 그런데 사회적 농업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회적 농업이라고 해서 영농활동 자체가 특별할 것은 없다. 농사는 똑같은 농사이되, 오로지 수익만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과 함께하자는 사회적 가치를 중요한 목표로 삼은 농업이 사회적 농업이다. 현재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사회적 농업의 형태로는 돌봄 농업, 교육 농업, 노동통합형 농업이 있다. 농장에서 정신적·신체적 장애가 있는 노인, 아동 등과 함께 농작업을 수행하면서 치료 또는 돌봄 활동을 병행하는 것을 돌봄 농업이라고 한다.


궁극적으로 장애인, 노약자 등이 돌봄의 대상으로 머무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지지하는 것이 돌봄 농업의 목적이다. 교육 농업은 농업을 인생 진로로 선택하려 하지만 지식, 기술, 자본, 그리고 무엇보다 농촌 지역사회에서의 사회적 관계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이들과 함께 농사지으면서 준비를 돕는 농장의 농업 활동을 뜻한다. 노동통합형 농업은 일자리가 없어서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에게 농장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사회적 농업 실천이 한국에서 아직은 적지만, 빠르게 확산될 조짐이다. 농업의  여건이 나아져 농민들이 여유를 갖게 돼 그런 건 아니다. 사회적 농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많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숨 가쁜 근대화·산업화 과정에서 ‘돈 버는 농업’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이제 그동안 잊고 지냈던 농업의 사회적 가치를 돌아보자는 성찰의 분위기가 무르익어서, 많은 이들이 사회적 농업에 주목하는 듯하다.


돈 많은 농업인이 어려운 위치에 있는 이들을 일방적으로 돕기만 하는 건 선행이지만 아직 사회적 농업이 아니다. 함께 농사지으면서 함께 섞여 살자는 지향이 있어야 사회적 농업이다. 그런 실천의 가능성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부촌(富村)에서 협동조합다운 협동조합이 나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골방에 앉아 냄비에 끓인 꼬불꼬불한 라면과 얼큰한 국물을 여럿이 나눠먹는 풍경은, 비록 옹색할지언정,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흰 셔츠를 받쳐 입은 웨이터가 내오는 각자의 음식을 즐기는 것보다 훨씬 더 사회적이다.


‘사회적’이라는 말은, 달리 말하자면 ‘관계’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이때의 관계는 공감하고 연대하고 협력하는 관계다. 그래서 사회적 농업, 특히 돌봄 농업 분야에서 여성 농민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올 법하다. 그렇다고 해서 ‘돌봄 노동’을 여성 특유의 몫으로 환원할 수는 없다. 사회적 농업에 여성 농민이 적합한 주체라고 말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럼에도, 만약 사회적 농업 실천에서 여성 농민이 두드러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돌봄 노동이 여성의 생물학적·사회적 특성에 어울리기 때문이 아니다. 여성 농민이야말로 시장에서 배제된 이, 대가를 받는 일자리에 끼지 못한 이, 충분히 이해받지 못한 이와 공감하고 연대하고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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