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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농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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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19년 4월 5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급기야 ‘누가 농민(혹은 농업인)인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사람이 농민이고, 농업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농업인이다. 그런데 문제가 간단치 않다. 언젠가부터 ‘농민’과 ‘농업인’은 동의어가 아니었는데, 그 같은 의미론적 차이가 농업 보조금이나 정책 사업 수혜 자격을 결정하는 법제와 충돌하고 있다. 어떤 이는 분명히 농민인데 법률상 농업인이 아니어서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농업 정책의 수혜 대상이 되지 못한다. 또 다른 이는 법률상 분명히 농업인인데, 그 사람에게 농업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저런 보조금을 지원하는 게 정당 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군에 거주하는 A씨는 50대 초반 여성 농민이다. 원래 대도시에 살다가 15년 전에 이곳 시골로 이사 왔다. 꽃을 좋아해서 화훼나 조경과 관련된 일을 하다가, 5년 전부터 비닐하우스 4동짜리 작은 농장에서 근무하며 유기농법으로 허브를 재배한다. 이 농장은 지역의 정신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에게 농사를 가르쳐 직업 재활을 도모하는 협동조합 형태의 ‘돌봄농장’이다. 착한 일을 한다고, 지역사회에서 좋은 평판을 얻고 있다. A씨는 농장 일 외에도 지역사회의 여러 활동에 참여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산다. 일 년에 몇 차례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풀을 깎거나 저수지 주변을 청소하는 공동 활동에 빠지는 일도 없다. A씨가 ‘농민’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기가 없지만, 이 사람은 법률상 농업인이 아니다. 소속된 농장이 “협동조합기본법”에 의거한 협동조합이어서 농업법인이 아니며, 개인 명의로 300평 이상의 농지를 소유하거나 계약서를 갖추어 임차한 것도 없고, 농산물 판매액이나 농업 노동시간을 근거로 농업인 자격을 확인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A씨와 같은 지역인 ○○군에 거주하는 B씨는 30대 후반 남성으로, 논 수천 평과 모돈 수백 두의 적지 않은 규모의 양돈장을 부친으로부터 최근에 이어받아 양돈을 시작한, 법률적으로 자격이 확실히 증명되는 ‘농업인’이다. 그러나 축사에서 직접 농작업을 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돼지 똥을 치우거나 사료를 주는 등의 작업 대부분은 고용한 태국 출신 외국인 근로자의 몫이다. B씨는 경영자금 문제 때문에 농축협 등 금융기관에 출입하는 일에 시간을 많이 쓴다. 거주지도 축사가 있는 □□리가 아니다. B씨의 부모는 예전에 □□리에 거주했지만, B씨는 얼마 전에 결혼한 직후부터 약 20km 떨어진 군청 소재지 읍내 아파트에 거주한다. 최근에 축사를 확장했는데, □□리 주민들은 악취와 수질오염이 심해진다며 “화병나서 못살겠다”라고 쓴 펼침막을 마을 입구에 거는 등 크게 반발한 적이 있다. 이미 한 동네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반대의 목소리가 쉽게 나온다.


A씨는 농업직불금을 받을 수 없지만, B씨는 받을 수 있다. 심지어 B씨는 한 달에 100만 원씩 현금을 준다는 청년 농업인 영농정착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 요건도 된다. 여기에다가 OO군의 군수가 이른바 ‘농민수당’을 지급하겠다고 지난 선거 때에 공약했고, 그 공약을 이행하려 한다고 가정해보자. ‘농민’을 규정한 법률은 없으니 법률상 ‘농업인’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정책을 펼친다고 하면, 마찬가지로 A씨는 농민수당을 받을 수 없고 B씨는 받을 수 있다.


공익형 직불제 위주로 농업직불제를 개편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공익형 직불제의 필요성을 두고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보상’이라는 명분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현행의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이 규정에 의거 자격을 갖춘 ‘농업인’에게 직불금을 지급한다고 하면, B씨 같은 사람에게도 농업인이어서 직불금을 주어야 하느냐는 비판이 가능하다. 또는 시골에 가면 악취가 진동하고, 폐비닐이 볼썽사납게 나풀거리고, 빈 농약병이 굴러다니는데 오염원인 제공자에게 돈 주느냐는 비판도 있다. 최근 들어 ‘농민수당’을 지급하겠다고 나선 농촌 지방자치단체가 여럿이다. 그리고 각종 농업 보조금이나 지원 사업 수혜 자격을 가지려고 딱 300평을 조금 넘는 농지만을 확보해 농업경영체를 등록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법률상 농업인 자격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어떻게 손질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뾰족한 답이 없다. 악취를 심하게 풍기면서 축산을 하거나 폐비닐이나 농약병을 함부로 내다버리는 사람의 ‘농업인 자격’을 박탈하자는 식으로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가능한들, 앞에서 예로 든 A씨는 여전히 보조금 수혜대상이 되지 못한다. 농업인이 아니라 ‘농민다운 농민’을 규정하는 법을 따로 만들어야 할까? 쉽지 않다. 문제는 A씨나 B씨 같은 사례가 적지 않으며, 요즈음 더욱 늘고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아무리 법제를 촘촘하게 만들어 ‘농업인’ 규정을 세밀히 규정한들, 법망은 언제나 성기고 헐거워 빠져나갈 사람은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정답이 없어도, 누군가는 최선을 다해 법률이 현실에 정합하게 고치려고 노력해야 할 터이다. 그런 제도 정비를 아예 포기하자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농업인 자격’에 관한 법제를 정비하자는 논의 이전에, 한국 사회에서 학자나 행정가나 농민 운동가를 막론하고 모두들 그동안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던 “누가 농민다운 농민인가”라는 물음을 앞에 두고 심각하게 성찰해야 할 때가 왔음을 알리고 싶다. 그리고 정부가 직접 낱낱이 자격을 가려 보조금을 주고 말고를 판별하는 정책자금 집행 방식에 대해서도 꼭 그래야만 하는지 되묻고 싶다. 그리고 공익형 직불제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후불-보상’이기만 한 게 아니라 ‘다기능 농업을 촉진하려는 사회적 선불-투자’의 성격도 있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한국 사회는 어떤 농민에게 투자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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