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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기본소득인가, 농민 수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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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국승용
경기일보 기고 | 2019년 4월 14일
국 승 용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1516년 발간된 토마스 모어의 소설인 ‘유토피아’에는 도둑을 없애기 위해 도적질한 이들을 모두 교수형에 처하는 것보다는 모든 사람에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소득을 나누어줘 도둑질할 이유가 없도록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대목이 나온다. 기본소득에 대한 고민은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회보장제도가 잘 정비된 유럽의 국가에서는 자녀가 어린 부모에게 지급하는 양육수당, 일자리가 없는 청년에게 지급하는 청년수당, 직업이 없는 성인에게 지급하는 실업수당, 고령자에게 지급하는 연금 등 생애 주기에 따라 촘촘하게 기초 생활을 지원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의 국가와 복지 여건이 다른 우리나라에서는 기초노령연금 등 일부 현금성 복지 지원에 대해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크고 작은 논란이 진행 중이다. 기본소득은 정부가 지급한 현금이 사회구성원의 판단에 의해 생계에 활용된다는 면에서 기존의 복지제도와 차이가 있다.


기본소득에 대해 국내외에서 활발한 논의와 실험이 이뤄지고 있으며 그 결과 개념이 구체화되고 있다. 기본소득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핵심적인 3가지는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 등이다. 보편성은 국민 또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지급된다는 의미이고, 무조건성은 특정한 요건을 갖추거나 행위를 해야 한다는 조건 없이 지급한다는 것이며, 개별성은 집단이나 가족에게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에게 지급한다는 것이다. 일시에 지급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것도 기본 소득의 주요 특징이다. 이같은 특징을 종합하면 기본소득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어떠한 조건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개인에게 정기적으로 정부나 지자체가 지급하는 소득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농민 기본소득제 도입을 약속한 바 있고, 여주시는 농민 기본소득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전남 해남군은 올해부터 상하반기 각 30만 원씩 1년간 60만 원을 지역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농민수당을 지급할 예정이다. 전남도는 전남형 기본소득의 일환으로 2020년부터 시군과 공동으로 재원을 확보해 농가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종합해 보면, 농민에게 지급하고자 하는 소득은 앞서 언급한 기본소득의 정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전 사회구성원이 아닌 농민에게 지급한다는 점에서 보편성의 원칙에 어긋나며, 농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점에서 무조건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또한 농업에 종사하는 개인이 아니라 농가 단위로 지급된다는 측면에서 개별성의 원칙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즉 우리나라에서 도입할 예정이거나 도입을 검토하는 농민 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의 요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농민 기본소득이라고 하기보다는 ‘농민 수당’이라 칭하는 것이 적절하다.


농업은 농산물을 생산하면서 동시에 수자원 관리, 공기정화, 환경보전, 국토의 보전·관리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농산물은 시장에서 판매돼 가치가 실현되지만, 그 밖의 기능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그 가치를 농가에 지불하지 않는데 이를 농업의 다원적 가치라 한다. 농업의 다원적 가치에 대해 정부나 지자체가 대가를 지급하는 것은 타당하며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실시하고 있다. 다만, 정부의 농업 직불제도 농업의 다원적 가치에 대한 보상이기 때문에 차별성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직불제는 경지면적에 비례하며, 축산은 대상으로 하지 않고, 국가 사업으로 지역의 특성이 충분히 반영되기 어렵다. 직불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지역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 등에 초점을 맞춰 도입한다면, 농민 수당이 적절한 지자체의 농업 정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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