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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생산조정제는 폐지된 정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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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종인

한국농업신문 기고 | 2019년 5월 22일 
김 종 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벼 대신 다른 작물을 논에 심으면 쌀과의 소득 격차 등을 기준으로 지원금을 지급하는 ‘논 타작물 재배지원 사업’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시행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 목표를 5만 5천 ha로 설정하였지만, 최근까지의 신청면적이 목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벌써부터 금년 쌀 수급상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를 중심으로 농협 등 관련 주체들이 사업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다양한 측면에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반면, 일각에서는 논 타작물 재배지원 사업이 일본에서 폐지된 농업정책인 생산조정제를 답습하고 있다며 사업 시행 자체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일본의 생산조정제가 성과 부진으로 이미 폐지된 정책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일본의 생산조정제는 정말로 폐지된 정책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는 일본 내에서 생산조정제 개편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이 와전된 측면이 강하다.


일본 정부는 2013년 12월에 ‘농림수산업·지역의 활력창조 플랜’을 발표하며 농정개혁의 로드맵을 제시하였는데, 쌀정책과 관련해서는 생산수량목표 할당(일본 정부는 2004년부터 생산조정 면적을 할당하던 기존 방식에서 생산량을 할당하는 방식으로 변경)을 폐지하고, 쌀직불제도 2018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아베총리가 2014년 국회 연설에서 생산조정제를 폐지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국회는 정부의 정책 전환 방향이 쌀 생산조정을 위하여 타작물 재배 지원 등이 오히려 강화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생산조정제 폐지’라는 표현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하였고, 이후 정부는 ‘생산조정제 폐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쌀정책 개편’이라는 표현으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생산조정제 폐지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이 발생했던 것은 생산조정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를 놓고 이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정부가 쌀 생산면적이나 생산량을 통제하는 정책만을 생산조정제로 지칭한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쌀 생산 통제와 더불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타작물 재배 지원까지를 아울러서 생산조정 정책으로 이해한 것이다.


일본 정부가 1971년 생산조정제를 도입한 초기에는 쌀 생산 통제에만 초점을 맞추었으나, 1974년부터 현재까지 쌀 생산 통제와 함께 타작물 재배 지원을 함께 실시해 오고 있다는 측면에서 생산조정제는 쌀 생산 통제와 타작물 재배 지원이 함께 결합된 정책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고 판단된다.


결론적으로 일본의 생산조정제는 폐지된 것이 아니라 쌀 생산량을 강제적으로 통제하던 방식은 폐지하되, 쌀 적정생산을 위하여 타작물 재배 지원을 오히려 강화하는 방식으로 개편된 것이다. 이는 타작물 재배지원 관련 예산이 2013년 2,517억 엔이던 것이 매년 증액되어 2018년에는 3,304억 엔으로 정책 개편 이전에 비해 31% 늘어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와 같이 일본이 쌀 적정생산을 위해 타작물 재배를 지원하는 정책은 현재 우리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논 타작물 재배지원 사업과 근본적으로 같은 취지의 정책이다.


물론 일본 생산조정제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쌀 적정생산에 기여했다는 평가뿐만 아니라 성과에 비해 정부 재정이 과다하게 투입되고 있다는 지적까지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생산조정제가 일본에서 이미 폐지된 정책이므로 우리나라에서 쌀 적정생산을 위해 타작물 재배를 지원하는 논 타작물 재배지원 사업이 불필요하다는 주장은 사실 관계를 오해한 측면이 강하다.


우리 쌀산업은 공급과잉으로 2010년 들어서만 다섯 차례 정부가 일정 물량을 시장에서 격리했을 정도로 고질적인 수급불균형 문제에 직면해 있다. 논 타작물 재배지원 사업이 최선의 해결책이 아닐 수는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마땅한 정책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소모적인 논쟁에 힘을 쏟기보다는 쌀 적정생산 달성을 위해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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