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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조직이 농업 발전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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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국승용
경기일보 기고 | 2019년 6월 16일
국 승 용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프랑스 브레타뉴 지방은 대서양에 인접한 해안 지역으로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의 채소류 공급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겨울철 기후가 온화하여 브레타뉴 지역에서는 겨울에도 노지에서 채소 재배가 가능하다. 브레타뉴에서 재배되는 농산물을 구매하고자 하면 대형마트, 급식업체, 수출업체 등 그 누구라도 브레타뉴 지역의 세라펠(CERAFEL)이라는 생산자조직에서 주관하는 경매에 참여해야 한다. 세라펠은 1965년 브레타뉴 지역의 농민들이 설립한 협동조합이다. 세라펠은 브레타뉴와 인근 지역에 5개의 경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농민이 수확한 농산물은 세라펠에서 운영하는 농산물 유통시설에 보관하고, 경매에 참여하는 상인은 견본이나 서류만 보고 농산물을 구입한다.


세라펠은 유통 사업장 외에도 품종과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 종자를 생산하거나 모종을 키우는 육묘장, 재배기술을 지도하는 컨설팅 기관 등 채소 생산과 관련된 거의 모든 영역의 사업을 수행한다. 세라펠에서 개발한 우수 품종을 재배하려면 조합원이 되어야 하고, 세라펠은 종자 보급량을 조절해 적정 생산 규모를 유지한다. 예기치 못하게 출하량이 증가하면 유통시설에 저장해 두고 출하량을 조절할 수 있다. 경매 시에는 최저가를 제시하고, 경락가격이 최저가에 미달하면 출하 농민에게는 적립된 기금에서 최저가를 보장해 주며, 농산물은 공익기관에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폐기한다. 이처럼 농민이 설립한 협동조합을 통해서 연구개발, 수급조절, 판매, 가격관리 등을 전담한다. 정부 지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농민들이 참여해 권한과 의무를 행사한다. 정부가 아니라 생산자 조직이 기술개발과 유통을 주도하면서 농업 발전을 견인하는 것은 비단 프랑스뿐만 아닌 선진국의 보편화한 추세다.


생산량이 급증해서 가격 폭락이 예상되는 우리나라 양파의 사례를 보자. 농민들은 상인들에게 종자를 구입해서 저마다의 판단에 따라 가을에 양파를 심는다. 통계청은 연말 경 재배면적을 조사하는데, 통계청의 재배면적 조사는 양파 수확이 한창인 이듬해 여름에야 발표된다. 정부는 수급조절을 위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을 통해 재배면적과 작황, 예상 생산량을 전망하도록 한다. 농협 등 생산자조직은 생산량이 증가해 가격 하락이 예상되면 정부에 수급 안정 대책을 요구한다. 정부는 관측정보와 생산자조직의 요구, 시장 동향 등을 고려해 농협을 통해 산지 폐기하거나 수매하여 시장 격리한다. 수확기가 되면 농민들은 양파를 망에 담고 트럭에 가득 채워 가락시장 경매장으로 보낸다. 출하량이 증가하면 가락시장 경매가격은 하락한다. 출하자가 최저가격을 제시하고 경락가격이 그에 미달하면 유찰시키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포장하고 트럭에 싣고, 가락시장까지 수송하고, 수십만 원, 경우에 따라서는 백만 원이 넘는 비용이 이미 지출된 상태에서 유찰시키면 그 손해는 모두 출하자가 부담해야 한다. 양파의 주산지는 제주도와 남부 지방인데 양파를 다시 싣고 가려 해도 수십만 원의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고 가락시장에서 폐기하려면 폐기물 처리 비용을 별도로 부담해야 하니 선택의 여지는 없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생산자조직을 육성해서 그들이 스스로 수급을 조절하고 가격을 안정할 수 있도록 법령을 정비하고 지원 정책을 펼친다. 선진국에서는 시작한 지 50년도 훨씬 넘었고 이미 보편화한 정책이건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생산자조직이 정부에 수급조절을 해달라고 요구하고, 정부는 시장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지만, 가격 불안정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농산물 가격의 등락이 거듭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내로 채소산업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번 계획에는 생산자조직을 육성해서 생산과 판매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강화하고 정부의 직접적인 시장 개입은 최소화하는 방향의 선진적인 대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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