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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의 역설, 근본 처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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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국승용
경기일보 기고 | 2019년 7월 21일
국 승 용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풍년이 들어 수확은 늘었는데 가격이 하락하여 오히려 소득이 줄어드는 현상을 풍년의 역설이라 한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양파는 전년에 비해 재배면적은 17%가 줄었으나 날씨가 생육에 적합해서 단위면적당 생산량(단수)은 22% 증가했다. 작년 가격도 평년에 미치지 못했는데 올해 가격은 작년의 60% 남짓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가격 하락폭을 다소 줄일 수는 있겠지만 가격 하락 자체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는 무, 배추, 고추, 마늘, 양파 등 주요 농산물의 수급과 가격 안정에 노력하고 있는데 때에 따라 품목을 바꿔가며 이들 중 한두 품목은 수급이 불안한 경우가 많다.


헌법 제123조는 “국가는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은 법의 목적을 “농수산물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고 적정한 가격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 정부가 주요 정책 과제로 할 수밖에 없음에도 농산물 수급 불안정과 가격 등락이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책적으로 노력하면 재배면적은 조절할 수 있으나, 기상에 크게 영향을 받는 단수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양파의 경우 작년 가격이 낮아 재배면적이 크게 줄었는데 그보다 단수가 크게 늘어 생산량이 증가했다. 기상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 원예 농산물의 생산량을 정확하게 예측하여 사전에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의 주요 수급 안정 대책 중의 하나는 과잉 농산물을 수매·비축하는 것인데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과잉 농산물은 수확하지 않고 폐기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비용도 덜 들고 정책효과도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소중한 농산물을 폐기한다는 시각에 대한 부담 등으로 정부는 폐기보다는 비축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비축하면 당장 가격이 다소 오를 수 있겠지만, 그 물량이 언젠가는 다시 방출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격 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정부가 수매하여 폐기한다면 가격은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폐기에 참여한 농가는 상대적으로 싼값에 폐기하고, 정책에 참여하지 않고 버틴 농가는 향후 상승한 가격에 판매하여 상대적으로 이익을 보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손해본다는 인식이 확산된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적정 생산량에 비해 증가한 만큼 모든 농가가 스스로 폐기하면 된다. 예를 들어 10% 과잉생산된 경우 모든 농가가 10%씩 밭에서 폐기하면 별도의 정책을 펴지 않아도 수급을 안정시키고 소득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다수 농가가 10%씩 폐기하더라도 몇몇 농가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신뢰가 무너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그래서 협동조합이 필요한 것이고, 농업 부문에서 협동조합이 발전한 것이다. 협동조합이 생산 감축을 결정하고 조합원들이 이에 따르도록 하면 된다. 생산에서 판매에 이르는 가치사슬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협동조합이 있어야 농가들이 믿고 협동조합의 방침에 따르게 된다. 협동조합의 방침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농가는 그 어떤 곳에도 팔 수 없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신뢰를 쌓아야 한다. 정부는 일일이 수급에 관여하지 않고 협동조합이 스스로의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고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한다. 단순화하다 보니 다소 과장과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유럽의 농업에 도입된 생산자조직 정책이 이와 유사하다.


생산자조직 정책이 성공하려면 농가 스스로 협동하려는 인식을 키워야 하고, 유능한 협동조합을 육성해야 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처럼 근본적인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농산물 수급안정이라는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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