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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민농정(與民農政), 땅과 스스로와 세상을 갈고 가꾸는 농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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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20년 1월 7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실현된 적이 없는 유토피아를 애써 글로 옮겨도 괜찮은 때다. 새해가 열렸으니까. 일년에 한번쯤은 간절한 소망 담아 발설해도 어떠랴. 다들 그렇게 하지 않는가? 금연하시라, 운동하시라, 부자되시라, 합격하시라 등등. 보장은 없지만 가능성을 말하면서 의욕을 내비쳐도 허세가 아닌 때다. 덕담이되 따끔하고 희망사항이되 진지한 말, 몇 마디 지어본다.


첫째, 농민 그리고 농촌 주민을 ‘위하는’[爲民] 농정이 아니라 ‘더불어’[與民] 펼치는 농정을 바란다. 보조금을 더 많이 지급하고 시설을 더 번듯하게 짓는 일보다 급한 건,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사람 중심의 농정’을 내세우며 3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바쁘게 뛰어다니고 밤잠 설치며 일한 정치인, 관료, 농업‧농촌 정책 연구자, 관련 공공기관의 일선 공무원이나 공기업 종사자가 적지 않으리라. 그럼에도 ‘애쓰신다’는 위로보다는 ‘무엇하고 있느냐’는 질책이 더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직불제 개편이라는 큰 개혁 과제의 일단락을 지었다고 안도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관련자 참여와 토론의 밀도가 빈약했음은 다들 아는 사실이다. 수많은 농정 사업이나 제도 중에 직불제만 불신의 위기에 봉착한 게 아니라는 것도 다들 아는 사실이다. 보조금 앞에 줄 세우거나 줄 서는 일은, 그것이 아무리 농민을 위한 것이라 해도, 후진적인 농정이다. 돈보다 중요한 게 신뢰다. 신뢰 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결과 못지않게 과정이, 성과 못지않게 진정성이 중요하다. 그리고 신뢰는 인정(認定)과 존중에서 싹튼다. “한 그릇의 밥과 한 대접의 국을 먹으면 살고, 먹지 못하면 죽을지라도 ‘야, 너!’라고 낮춰 부르며 던지듯 주면 길 가는 나그네도 받지 않고, 발로 차듯 주면 거지도 달가워하지 않는다.”(배병삼, 《맹자, 마음의 정치학》)는 말이 뼈아프다.


둘째, 논밭 갈아 농사짓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세상을 가꾸고 자신을 가꾸는 농민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불행히도 지금은 열심히 농사짓는 것만으로 농가 경제가 풍요로워지고 농민이 행복질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열심히 농사지어도 보람을 얻지 못하게 만드는 세상을 갈아 가꾸어야 한다. 농산물 소비자가 농민이나 농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무심(無心)하다고 해야 할 수준이다.


요즘 도시 청소년은 농촌을 전혀 모른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면서 서울 밖에서 이틀 넘게 지내본 적이 없는 젊은이들은 대한민국을 ‘서울/지방’의 분법(分法)으로만 헤아리도록 은연중에 배웠기 때문이다. ‘도시/농촌’이라는 구분은 실감나지 않는다. 대구광역시나 경상북도 봉화군이나 서울이 아닌 지방이기는 매한가지다. ‘대구는 도시고 봉화는 농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제주도는 ‘감귤이 나는 지방’이지 ‘감귤 농사짓는 농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농민은 투명인간 취급받고 농촌은 어쩌다 지나가며 보는 구경거리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농민, 농업, 농촌의 가시성을 높이려는 참신하고 끈기있는 노력 없이는 ‘농업‧농촌 패싱’ 현상을 극복하기 어렵다. 농민이, 농업이, 농촌이 존재감을 얻지 못하면 열심히 농사지어도 합당한 대가와 보람을 누리지 못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이제 농민은 땅뿐만 아니라 세상도 경작해야 한다. 세상을 경작하는 농민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를 갈아 가꾸지 않고서는, 자각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셋째, 농촌에 사람을 남기는 것이, 특히 젊은 농가를 남기는 것이 백년대계(百年大計)의 첫 번째 조항이라는 점을 한국 사람 모두가 깨닫는 한해가 되기를 원한다. 리비히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작물이 생장하는 데에는 질소, 인산, 칼륨을 비롯해 수 많은 종류의 유기물과 무기물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종류를 듬뿍 준다고 해서 작물이 잘 자라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필요한데 가장 모자라는 것을 채우는 게 핵심이다.


“줄기 자라는 질소만 듬뿍 주고 뿌리 튼튼히 뻗는 인산과 열매 충실히 맺는 칼리를 주지 않으면 짚 농사만 짜드러 짓지 벼는 쭉정이만 달리게 됩니다.”(전우익,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다른 것들이 아무리 많아도 가장 모자란 것 하나를 채우지 못하면 더 이상 자라지 못한다. 지금 농촌에서 가장 모자란 것은 무엇일까? 젊은 사람이다.


마지막 넷째는 농업‧농촌 정책 연구자로 공부하며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바라면서 다짐하는 내용이다. “우두커니 서거나 이드거니 걸으면서 공부하(려)는 인간은 물속에 몸을 잠근다. 그리고 너무 오래, 너무 깊이 잠근 탓으로 혹간 몸에는 지느러미가 돋고 아가미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과거의 생활로부터 ‘돌이킬 수 없이’ 단절하며, 마침내 ‘변덕’이 범접할 수 없는 지경으로 ‘변화’하고 마는 것이다.”(김영민, 《공부론》).


앞에서 ‘위하는 위민 농정’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하는 여민 농정’을 소망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민 연구’의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아가미가 돋는 지경에 이르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겠지만, 연구자로서 직무와 삶이 ‘책상’이 아니라 관련 있는 사람들의 ‘일상’에 더욱 스며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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