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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직불제가 자리를 잡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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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오내원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20년 2월 21일
오 내 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



농정에서 중요한 몫을 해온 직접지불제가 올해부터 농업농촌공익증진직불제(이하 공익직불제)로 통합된다. 작년 말 국회에서 관련 법률과 예산이 통과된 이후 정부는 세부 시행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공익직불제는 이전의 쌀소득보전직불, 밭농업직불, 조건불리지역직불을 통합한 기본형 직불과 친환경직불, 경관보전직불이 포함된 선택형 직불로 구분하고 있다. 기본형 직불은 경지면적이 0.5ha 이하인 농가에 모두 같은 액수를 지급하는 소농직불금과 그 외의 농업인을 대상으로 한 면적직불금으로 방식을 달리하고 있는데, 이번 직불제 개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2월 11일자 농식품부 업무보고에 따르면 소농직불은 농가당 연 120만원 수준을 지급하되 농촌거주와 영농기간 3년 이상, 농외소득 일정액 미만 등을 자격요건으로 제시하였다. 면적직불은 규모가 작을수록 단가가 높은 역진성을 원칙으로 하되, 대농 층도 전보다 직불금이 적어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와 함께 농약과 비료 사용 감축, 영농폐기물 수거, 영농일지 작성, 공동체 활동과 같은 준수의무를 연차적으로 강화하고, 농지소유 비농민 등 무자격자의 직불제 수급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공익직불제의 틀은 만들어졌지만 구체적 내용을 채우고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는 이제 출발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직불제가 현재의 농업이 가진 공익 기능을 인정한 지원이었다면, 새로 만들어 갈 직불제는 농업이 공익 기능을 더 많이 수행하도록 바꾸어가자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기본형 직불의 준수의무를 강화하면서 선택형 직불을 확대하는 것이 농업의 변화를 이끌어낼 중요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선택형 직불이라는 용어가 낯설지만 친환경농업직불이 대표적 사례다. 유기·무농약농업과 무항생제축산은 토양과 물의 오염을 줄이고 안전한 식품을 공급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해 왔다. 그렇지만 생산성을 추구하는 고투입농업의 흐름 속에서 소수 농가의 친환경농업만으로 환경을 보전하고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나아가 생물 다양성 유지, 기후변화 대응, 농촌 경관과 문화유산의 보전 등 사회가 기대하는 가치는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는데 이에 대응한 노력은 부족하였다.


농업환경프로그램은 환경·생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농사법과 자원관리 방법을 전면적으로 바꾸기 위한 실천수단이고 선택형 직불은 그러한 전환을 이끌어내는 핵심적 지원수단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개편에서는 선택형 직불과 관련된 내용이 미흡하여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농업환경프로그램은 공통의 목표와 수단을 가질 수 있지만, 구체적인 실천은 지역의 다양한 자연적·사회적 환경을 잘 반영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비료와 농약 사용은 모두가 줄여야 하지만 상수원보호구역, 야생동식물보호구역과 같이 민감한 지역에서는 보다 과감한 감축이 필요하다. 경사지가 많은 지역에서는 농지 주위에 배수로를 설치하거나 하단부에 풀밭을 조성하여 강우로 인한 토사유실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논에 물꼬를 설치하고 물을 얕게 대는 것도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효과가 있어 기후변화 대응활동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조사료 생산을 통한 축산과 경종농업의 순환 시스템도 작은 지역 단위에서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환경프로그램은 농가나 필지별이 아니라 마을이나 하천 수계와 같은 지역 단위로 접근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환경개선 활동은 어느 정도 규모로 집적되어야 효과가 체감되는 경우가 많으며, 농업인 각자가 새로운 방식을 습득하고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농경지에 한정하지 않고 주거지와 하천을 포함한 마을공간의 자원 전체를 관리해야 할 필요가 늘어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환경의 문제점과 개선활동에 대해 공감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과 토론을 통해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과정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데, 한 번에 마스터플랜을 만들기보다는 우선 시급하고 실천이 용이한 분야부터 시작하는 단계적 접근이 바람직하다. 주민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마을과 (지방)정부가 환경관리사업의 내용과 지원에 대해 협약을 맺되 실천 방법과 예산의 사용에는 어느 정도 유연성을 부여하는 것도 필요하다. 자율적인 실천을 인정하면서도 객관적 모니터링을 통한 성과평가와의 조화를 이루는 것도 풀어야 할 과제이다.


관련된 논의에서 놓치고 있는 점이 농업환경 전문가의 부족이다. 중간지원조직의 중요성을 많이 이야기하지만 핵심은 전문인력이다. 지역 자원의 특성과 농업환경의 문제점을 파악하여 주민들과 같이 개선방안을 제시하고 논의하는 현장전문가는 자율적이고 차별화된 사업 추진에 필수적이다. 선택형 직불이 농업·농촌의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려면 3만 6천여 개의 마을 중 상당수가 농업환경프로그램을 실천하고 있어야 한다. 인력 양성과 활용 시스템 구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과제이므로 이에 대한 정부의 높은 관심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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