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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지역사회를 돌보는 ‘사회적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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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한국4-H신문 기고 | 2020년 3월 15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사회 통합이 국가의 중요 정책 의제로 부각된 지는 오래되었다. 농업정책 당국도 농업을 부문 산업으로만 간주했던 종래의 관점을 탈피, 농업의 환경적·사회적 기여를 확장하려는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그 결과, 근래에는 ‘돌봄’, ‘교육’, ‘노동통합’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사회적 농업(social farming) 실천을 지지하는 사회의 흐름과 정부 정책이 가시화되었다.


‘사회적 농업’이란 “사회적으로 배제된 이들을 통합하는 데 기여하는 농업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급여를 받는 노동을 수행할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가령, 지적·신체적 장애인, 출소자, 약물중독자, 소수자, 이주민 등)의 노동통합을 지향하거나, 불리한 여건에 있는 사람들의 재활·교육·돌봄을 촉진하거나, 아동이나 노인 등 특정 집단에게 농촌 지역에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목적을 지닌 농업 실천”이라고 사회적 농업을 정의한다.


누구든지 살면서 필요한 것에 충분히 접근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런 상태가 일상화되어 통상적인 수준에서 사회·경제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태를 사회적 배제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는 사회적으로 배제된 인구 집단이 숱하게 많다. 노인, 여성, 아동, 빈곤층, 외국인, 장애인 등 수많은 사회적 배제 집단이 존재한다.


사적(私的)인 인간관계에 포함되지 못하는 배제, 경제활동 기회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참여하더라도 충분한 소득을 얻지 못하는 배제, 돌봄이나 이동 같은 생활상의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배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하는 공적(公的)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배제 등, 그 사례를 낱낱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현실은 농촌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직업이나 사회적 관계에 접근할 기회가 더욱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농촌에 숱하게 흩어져 있는 농장들은 사실 농민들과 지역사회 주민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관계성의 장소다. 게다가 동식물과 인간의 관계까지 형성되는 장소다. 농민이 가꾸고 일하는 농장 환경은 정신질환, 중독, 지적 장애 등을 겪는 사람들이나 노인, 아동, 장기간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사회적 농장은 다양한 부류의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에게 돌봄, 일터, 거주 장소 등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그들의 개인적 잠재력에 초점을 두면서 다른 지역사회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사회 속에 어울려 살 수 있게 돕는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한국에서도 장애인을 돌보고 고용하거나, 사회적 관계 또는 일자리가 필요한 노인을 돌보고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살뜰한 도움이 필요한 청년 귀농인에게 농업 분야의 직업능력을 갖도록 교육하고 보살피는 사회적 농장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농업에서 중요한 것은 경계를 넘나드는 협력이다. 즉, 농민만이 사회적 농업을 독점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직능이 뚜렷하게 나뉘고 갈라진 사회 속에 살고 있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농사는 농업인에게! 그러나 사회적 농업은 분업과 전문화라는 이름의 칸막이를 넘어, 농촌 지역사회에서 농민과 여러 주민들이 소통하고 협력하는 실천이어야 한다.


농사짓는 농민이 지역사회의 아동들(알고 보면 한두 집 건너 아는 집 자식이다)을 농장에서 돌보고 가르칠 수 있다. 농장에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배울 만한 것이 많다. 그런 일을 하는 농민더러 교직이라는 울타리를 침범했다고 비난할 텐가? 고등학교 졸업한 발달장애 청년을(역시, 알고 보면 한두 집 건너 아는 집 자식이다) 일주일에 3~4일 농장에 와서 소 먹이 주고, 풀 뽑고, 농사일 거들고, 밥도 같이 먹고, 소액이라도 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만큼 하라고 권할 수 있다. 그렇게 농사일도 조금 하고 농장 식구들의 돌봄을 받는다고 해서, 장애인 복지 영역을 농민이 넘보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농민이 농사지으며 돌볼 수 있는 사회적 약자가 어디 이들뿐이겠는가?


농사짓는 사람이 농민이지만, 농민은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를 돌볼 수도 있다. 그런 혁신적 실천을 두고 ‘사회적 농업’이라고 한다. 그런 일에 나서는 농민을 ‘새로운 농민’이라 부른다. 농민만 그래야 한다는 게 아니다. 농민만의 힘으로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농민과 더불어 농촌 지역사회의 다양한 주체가 협동하는 구조를 만들어 실천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어울리는 그런 협동이 반복되고 쌓여서 농사가 교육이 되고, 농사가 돌봄이 되고, 농사가 문화가 되는 지역사회를 두고 비로소 ‘공동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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