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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정도 ‘위험 대비전략’이 필요하다-농업수입보장보험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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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오내원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20년 3월 20일
오 내 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



코로나19의 확산은 우리의 삶에서 부딪힐 수 있는 위험요소를 미리 파악해 대비하는 것이 개개인의 행복과 사회 안정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해 주고 있다. 사태가 하루 빨리 수그러들어 봄철 농사와 지역사회 방역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민들의 어깨가 가벼워지길 기대한다.


농업경영에서도 불확실과 위험의 관리는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이상기후에 따른 자연재해와 가축질병이 빈발하는 한편, 투자 확대로 생산성은 높아지지만 수요정체와 농산물 수입 증가로 가격하락 위험 또한 높아지고 있다. 작년만 해도 봄철 생육조건이 좋아 양파와 마늘의 생산이 늘자 가격이 폭락하였고, 무와 배추도 과잉생산으로 인한 파장이 여름까지 계속됐다. 쌀농가 소득안정에 큰 역할을 해 온 변동직불제가 폐지됨에 따라 과잉생산에 대비한 정부의 시장개입 제도화 요구가 제기됐다. 올해의 코로나19로 인한 화훼와 학교급식 계약재배 농산물 수요 단절은 새로운 위험의 사례가 되고 있다.


위험 대비에 비용이 들지만, 다수의 협력으로 적절하게 위험을 분산하면 개인의 후생은 물론 사회 전체의 편익을 높일 수 있다. 위험에 대비한 제도가 있으면 보다 적극적인 경영으로 성과를 올릴 수 있으며, 이는 신기술 수용과 사회혁신을 촉진하게 된다. 위험분산을 위해 보험, 선물거래 등 금융제도가 만들어졌으며, 민간시장이 성립하기 어려운 농업분야에서는 정부가 개입해 왔다.


농업생산과 관련된 위험에 대해서는 농작물과 가축에 대한 재해보험이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지만 가격위험에 대한 대책은 부족한 실정이다. 원예작물 가격 및 수급 안정사업은 계약재배와 출하조절, 비축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시행됐지만, 소비지 물가안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농가의 경영안정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근년에는 농업수입보장보험과 자조금제가 농업인의 주체적인 참여와 시장기능의 활용을 통한 경영안정제도로 주목을 받았지만, 아직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농업수입보장보험은 2015년 양파, 포도, 콩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이 도입됐다. 이 보험은 품목별 조수입 안정을 위한 것으로 생산량 변동과 가격하락에 동시 대처한다는 점에서 재해보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정책이다. 작년 양파에서 보았듯이 과잉생산으로 인한 가격하락의 충격이 자연재해 피해보다 크다는 점에서 조수입 안정을 목표로 하는 정책은 타당성이 있다.


이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농업수입보장보험은 한정된 품목과 지역을 대상으로 한 시범사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9년에는 대상 품목이 양배추와 마늘, 고구마, 가을감자를 포함해 7개로 늘어났지만 품목 당 5곳 내외의 시·군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총 가입 면적도 1200ha에 그쳐 실질적인 농업소득안정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현재 보험을 확대하는데 가장 큰 장애는 손해평가 대상인 조수입의 변동, 특히 생산량 변동 파악이 어렵다는 점이다. 보험 적용 가격은 개별 농가의 판매가격을 조사하는 대신 도매시장 경락가격과 같은 대표가격을 사용하는 방법이 나름대로 합리성을 갖는다. 문제는 개별 농가의 실제 생산량 변동을 파악하는 데에는 비용과 인력이 지나치게 많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재해발생 농가에서 사고 신고를 받아 현장실사를 통해 피해규모를 산출하는 재해보험과 달리 수입보장보험에서는 계약농지 대부분에 대해 수확량 변화를 조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도 양파의 예를 들어보자. 2019년 중만생종 양파의 수확기 가격은 보험기준가격(평년가격)에 비해 46% 하락하였다. 80% 보장형 보험을 선택한 경우, 가입 농가의 생산량이 평년과 같으면 가입금액(기준조수입)의 26%를 보험금으로 받게 된다. 생산량이 20% 증가한 농가는 15.2%, 30% 증가한 농가는 9.8%의 보험금을 받게 되는 등 수확량 변화에 따라 보험금이 다르게 계산된다. 보험금 지급을 위해서는 모든 가입 농가의 수확량 파악이 필요한데 현재의 손해평가 인력과 체계로는 더 이상의 보험 확대는 감당하기 어렵다.


수입보장보험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손해평가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신뢰성 있는 기장거래제를 확립해 농가의 판매액을 직접 파악하는 것이다. 전면적 기장거래방식 도입에 대해서는 농업계의 우려가 없지 않다. 농업이 사회적 기여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칫 농업소득세 확대 논란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렇지만 이제는 농업부문도 사회구성원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요구할 것은 당당히 주장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때다. 투명한 거래와 경영기록의 유지는 그 출발점이 됨은 물론 경영 진단과 개선, 근로소득장려제(EITC)와 같은 새로운 정책도입의 인프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농업수입보장보험은 2018년과 2019년 보험금 지급이 크게 늘어나 높은 손해율(각각 765%, 185%)을 기록하면서, 정책 당국이 사업 확대를 꺼리는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다. 앞서 제안한 조수입 산정 방법의 개편과 보험가입 실적 자료의 축적으로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장기가입자에 대한 보험료를 할인하고, 보장률에 반비례하도록 보험료 국고보조율을 조정하는 등 역선택을 방지하고 보험재정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수입보장보험이 경영안정을 위해 가장 효율적이거나 모든 농산물에 적용할 수 있는 대책은 아닐지 모른다. 그렇지만 농가가 가입여부를 선택하며, 목표가격(수입)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농가별로 과거의 경영실적에 근거해 수입을 안정화한다는 점에서 뚜렷한 시장지향적 장점을 가진 정책이다. 또한 강력한 생산자조직을 전제하지 않아도 시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조금단체 주도의 수급조절 정책보다 현실성이 있다. 농업수입보장보험 운영방식 전면 개편을 통한 활성화로 농가의 경영불안이 완화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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