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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와 농촌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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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송미령
농민신문 기고 | 2020년 4월 22일
송 미 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전 지구적인 감염병 유행으로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고 있다. 아울러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한 우리 국민의 저력을 확인하는 동시에 그간 추구했던 ‘성장’과 ‘발전’의 패러다임에 근본적 전환이 필요함을 느끼고 있다.


대한민국은 빠른 속도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낸 국가다. 몇몇 거점을 중심으로 사람·인프라·자본 등을 집중시키는 방식의 성장은 일견 효율적인 듯 보였다. 하지만 농촌과 도시의 격차 확대, 높은 자살률과 실업률, 사회적 연대감 약화 등과 같은 부작용도 낳았다. 단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7년 ‘더 나은 삶의 질 지수(Better Life Index)’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삶의 질은 38개 국가 가운데 29위를 차지할 정도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간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삶의 표준은 어떠했는가. ‘사람은 서울로’라는 말에서도 나타나듯이 서울에 있는 학교에서 교육받고 돈 많이 버는 화이트칼라의 직업을 갖고 고층 아파트에 살며 고급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바쁜 삶을 지향했는지 모른다. 이러한 가치관이 반영된 이촌향도는 오랜 기간 우리 사회의 성장·발전 지향형 인구이동의 고착화된 패턴이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도시에선 출퇴근시간마다 지옥철이나 차량 정체 문제가 발생한다. 반면 적은 인구가 분산돼 있는 농촌에선 버스를 타기 위해 한두시간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 됐다. 도시의 집값은 치솟고 농촌의 빈집은 늘어간다. 도시의 인력시장에선 일을 구하려고 줄을 서지만, 농촌에선 일할 사람이 없어 외국인 근로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은 우리가 추구하던 삶의 방식이 얼마나 위험하고 허망한 것이었는지를 역설한다. 더불어 우리 삶 속에서 잊고 지냈던 안심 먹거리, 저밀도의 아름다운 농촌 풍경, 자연친화적 주거, 공동체의 연대 등이야말로 행복한 삶을 이루는 핵심 요소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진행 중인 귀농·귀촌 인구 증가, 4도(都) 3촌(村)형 라이프스타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과 반농반X(엑스) 생활양식 확대 등의 사회적 변화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더욱 심화될 것이다. 아울러 농촌형의 새로운 삶의 방식은 더욱 각광받을 것이다.


지난해 5월 국민 3300명을 대상으로 ‘내 삶의 버킷리스트’를 물은 적이 있다. 버킷리스트로 ▲여행 ▲자연 속 자급자족 생활 ▲취미·예술 활동 ▲농사 ▲지역사회 참여와 봉사 등을 꼽은 응답이 주를 이뤘다. 장·노년과 청년세대 모두 새로운 대안적 삶을 강력하게 욕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버킷리스트 실현을 위해 지목한 주무대가 바로 농촌이다.


그러나 당장 농촌에서의 버킷리스트 실현을 망설이는 이유로는 ‘열악한 생활환경(29.5%)’ ‘빈곤한 문화 여건(17.9%)’ 때문이란 응답이 많았다. 농촌은 국민의 대안적 삶의 욕구에 대응해 새로운 삶터·일터·쉼터·공동체의 장이 될 수 있는 유토피아로서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부족한 측면을 수혈받지 못해 오히려 인구 공동화(空洞化)로 제 활력을 잃어가는 것이다.


농촌이 낙후되고 비어가는 곳, 도움이 필요한 곳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도 향상을 위해 서비스하는 공간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유토피아로서의 잠재력에 주목하는 발상의 전환과 처방이 필요하다. 이는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민의 다양한 행복에 대한 욕구를 충족해주는 가장 유력한 대안이다. 그야말로 유토피아로서 우리 농촌이 탈바꿈되고 국민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 이바지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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