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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무역주의 시대의 우리 임산물 경쟁력 강화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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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안현진
   월간산림 기고 | 2020년 6월호
안 현 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우리나라는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한 이후 55개국, 16건의 FTA(발효 기준)를 체결하였다. 2018년 남미 4개국(MERCOSUR)과 협상을 타결함으로써 미주지역과도 자유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하였으며 현재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들과의 FTA를 통한 신남방정책 완수를 위해 노력을 쏟는 중이다.


무역을 통하여 경제성장을 이룩해 온 우리나라의 경우 FTA는 이미 개척한 시장을 유지하고 새로운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일부 국가에 의지하던 무역 집중 현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국가와 FTA를 체결함으로써 수출입선의 다변화를 이룰 수 있었으며, 국내 제품의 상품 경쟁력이 향상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농업과 임업 등 우리가 비교우위를 가지지 못하는 산업의 경우 해외시장 개방에 따른 국내 산업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발효되었던 FTA로 인해 적어도 국내 임산물 시장이 교란되거나 붕괴한 예는 거의 없어 보인다. 산림청이 주요 단기소득임산물의 국내시장 개방을 늦추는 등 임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산물의 경우 수출 확대, 상품 경쟁력 향상 등 FTA의 긍정적 효과는 비교적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산림청에서 관여하는 수출입 품목은 떫은감, 대추, 밤, 표고버섯, 제재목, 합판, 섬유판 등이다. 대부분 품목이 국제시장에서 가격의 비교열위에 처해 있어 수출시장 개척이 녹록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국내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중국과 같은 거대한 수출국이 저가의 임산물로 국내시장을 공략한다면 대처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칠레와 첫 FTA를 체결한 지도 벌써 16년이 지났다. 수출국들의 시장 개방 압력, 미국의 개도국 지위 포기 압력 등 외부 환경에 의해 주요 품목에 대해서도 시장을 개방해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협상 대상국에 따라 다르겠지만 주요 제품을 제외한 많은 임산물은 이미 자유화가 이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일본의 수출규제 등 전 세계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보호무역주의가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국내시장 개방 압력은 커지고, 수출은 더욱 어려워지는 추세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보호주의에서는 무역 규제가 다양한 형태로 제시된다. 눈에 보이는 관세보다는 식별하기 어려운 관세 이외의 장벽이 국제 무역을 가로막는 것이다. 현재의 보호무역주의는 관세를 이용하는 직접적인 장벽보다는 환경, 위생, 기술 등의 비관세 장벽을 이용하여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추세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서 행해지는 불법 벌채목 교역 금지 제도 또한 넓은 의미의 비관세 조치로 생각할 수 있다. 유럽의 불법 벌채목 교역 금지 제도에서 나타난 것처럼 비관세 장벽은 환경, 위생 등의 기준에 더해 노동, 인권 등 점점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 추세이다. 산림청에서 2019년부터 본격 시행하고 있는 ‘합법목재 교역 촉진제도’도 지구 환경을 보호하는 책임을 수행하는 동시에 선진국들의 비관세 장벽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농식품은 국가별로 상이한 검역제도 등에 의해 비관세 무역 장벽의 영향을 크게 받는 편이다. 농식품에 대한 비관세 장벽은 국가별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가공식품보다는 주로 신선식품이 규제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비관세 장벽은 선진국에 국한되어 행해지는 것이 아니며, 중국·베트남 등의 개도국도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농식품에 대한 비관세 장벽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식품안전 관련 규제, 일본은 잔류 농약 기준, 베트남은 병해충 관련 위험 분석 등이 비관세 장벽의 주요 형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유럽은 주로 라벨링 표기를 비관세 장벽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까지 임산물이 비관세 장벽에 의해 통관 거부된 사례는 농산물에 비해 적은 편이다. 그러나 임산물의 해외 수출량이 농산물과 비교하여 매우 적은 것을 고려하였을 때, 임산물이 농산물에 비해 비관세 장벽에 영향을 덜 받는다거나 환경·위생 기준을 더 준수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2012년부터 2019년까지의 임산물 통관 거부 사례를 살펴보면 표고버섯 등 우리나라의 단기소득임산물이 주로 미국에서 통관 거부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사유는 라벨링·포장의 부적절, 잔류 농약 검출 등이다.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우리나라가 단기소득임산물을 주로 수출하는 국가에서 통관 거부된 사례는 아직 거의 나타나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향후 임산물 수출 확대를 도모하고 우리 임산물의 원활한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비관세 장벽 및 협상전략 관련 연구, 국가별 사례 조사 등 사전 대비가 필요하다. 


앞으로는 국내 주요 임산물을 관세를 통해 보호하는 것을 넘는 협상 전략이 필요하며, 우리 정부는 관세 협상보다는 환경·위생·기술 기준 강화 등 관세 이외의 협상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정부는 또한 임산물 수출 확대 전략과 더불어 비관세 장벽 대응 전략을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비관세 장벽이 국가별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남에 따라 대응 전략을 수출 대상국별로 차별해서 수립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유럽 등 선진국으로 수출할 경우 식품 표시 라벨링 등이 해당 국가 기준을 충족하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또 현재 라벨링에 대한 기준이 높지 않은 국가라도 향후 미국·EU 수준의 라벨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에 대비하여야 한다. 따라서 중국, 베트남 등 주요 수출 대상국가의 해당국 언어 라벨링 개발 방안이 사전에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됨에 따라 향후 비관세 장벽의 적용 범위는 더욱 확대될 것이며, 각 국가의 경제뿐 아니라 정치, 사회구조 등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수출 대상국의 정치 및 사회구조 등에 대한 다각도의 모니터링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대응 전략 수립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국내 임산물의 국제적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농약 사용 등의 기준을 국제 표준에 맞게 설정하고 농약 성분 검출을 점진적으로 철저히 실시해야 한다. 또 국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임산물의 라벨링도 선진국 수준에 맞추도록 점진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는 비관세 조치에 대한 사전 대응뿐 아니라 국내 소비자의 권리를 위해서도 필요한 사항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생산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해외의 까다로운 검역 수준, 노동 및 인권 기준을 충족하는 국내 임산물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안겨줄 가능성이 있다. 저가로 임산물을 수출하는 개도국이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시장으로의 진입이 아예 불가능하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내 임산물이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라는 인식이 강화된다면 보호주의 시대의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정부가 시장 개방을 막기 위해 노력한 것은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시간을 가짐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취지였다. 물론 임업과 같이 자연을 이용하는 1차 산업의 경우 생산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고, 노동의 이동이 쉽지 않기 때문에 경쟁력을 높이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더 이상 정부의 보호 정책에만 기댈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생산자들은 단계별 비효율을 초래하는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 위생, 환경 등의 기준을 비용이 아닌 경쟁력으로 인식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FTA의 또 다른 효과인 경제 체질 및 시스템 개선을 이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FTA를 통한 시장 개방의 위기를 극복하고 무역자유화의 기회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생산자나 정부의 일방적인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동안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였듯이 앞으로 다가올 위험과 기회도 민간과 정부가 협력한다면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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