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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지만 정직하게 말하자, 돈에 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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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20년 6월 5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농민수당, 농민기본소득, 직불제 등이 얽힌 주제를 두고 쟁점과 생산적 논의의 전제 조건을 정리해보려 한다. 이런 글을 꼭 써야 할까, 몇 번 망설이다가 쓰기로 결심했다. 짧은 지면에 설득력 있는 결론을 제시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망설였지만, 써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이유가 있다. ‘농민수당-농민기본소득-직불제’라는 주제로 공개적인 글을 쓰려니 유독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커지는 것, 즉 셀프-검열을 하게 만드는 상황 때문에, 오히려 까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논의와 관련한 나의 입장은 두 가지다. 첫째, 나는 ‘농민수당’ 도입을 지지하지만 그것을 ‘농민기본소득’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농민수당을 직불제의 일종으로 이해한다. ‘농민기본소득’은, 후술하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적극적으로 동의하기에 문제가 있는 개념이라고 본다. 둘째, 이 글에서 정말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인데, ‘농민수당(=농업직불제) 찬성, 농민기본소득 반대’라는 나의 입장이 “진리”라고 고집하지 않겠다는 점이다. 다만, 내 나름의 “잠정적 일리”를 현 시점에서 정리한 것이며, 논의가 어찌 전개되느냐에 따라 그 입장을 폐기 혹은 변경할 수 있음을 밝혀둔다.


이 논의는 몇 년째 계속되었고, 최근에는 정부가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서 ‘농민수당-농민기본소득-직불제’는 농정 담론의 뜨거운 감자가 될 판이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뜨거운 감자’여서 손에 쥐고 진득하게 살펴볼 생각들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혹은, ‘일단 먹고 보자’거나 ‘일단 버리고 보자’는 식으로 논쟁을 허용치 않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거나 억압적인 태도가 문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피해 가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사안이다.


사실은 세상 자체가 복잡한데, 우리는 얼마나 단순하게 결정하는가? “묘사와 기술(記述)은 안타깝지만 정직하고, 설명과 처방은 일견 시원하지만 위험하다. 구체적 경험의 결과 골에 근거하지 않은 정치적인 정답들로 쌈박하게, 그리고 전부 다 설명해내기보다는 각자 삶과 경험의 제한된 지평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이를 솔직하게 고백하며 기술하는 절제심이 요청된다는 뜻이다.”(김영민, 《인간의 글쓰기 혹은 글쓰기 너머의 인간》, 159쪽). 요점은, ‘시원하지만 위험한’ 결정을 지금 당장 내리기보다는, 답이 안 나와서 ‘안타깝더라도 정직한’ 논의를 계속하자는 것이다. 앞에서 첫번째로 밝힌 내 입장의 근거를 자세히 펼치기에는 이 지면이 짧다. 그보다는 여러 사람이 제기한 주장들의 충돌 지점을 정리하고 열거하는 것이 후일의 논의에 도움이 될 듯하다.


첫째, 농민에게 ‘현금으로 소득을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냐’는 고전적이고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있다. 지원 방식의 효과성 측면에서 기존의 직불제 같은 현금 지원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는 논거는 여러 각도에서 제출되어 있다. 그런데, 현금 지원이 아니라 농민의 자긍심이 근본 문제라는 주장도 있다. 더러는 농민들 중에도, ‘국가가 주는 알량한 돈 몇 푼 때문에 농사짓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하는 이가 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직불제든, 농민수당이든, 농민기본소득이든 국가가 소득을 지원하는 것이 농민을 존중하는 구체적인 표현이고 농업의 공익 기능에 대한 보상이다’라는 주장도 있다. 나의 경우, 농업 직불금이나 농민수당은,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다는, 농촌다운 농촌을 유지하기 위한 ‘투자’로서 유력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공익 직불제’라는 이름으로 농업 직불금 제도가 재편된 마당에, ‘농민수당’을 지방자치단체들이 도입하는 건 중복이고 낭비라는 주장이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현행 직불금은 총액 측면에서 불충분하며, 지원 금액이 ‘면적’에 비례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농민-개인’을 단위로 지원하는 농민수당은 현재의 직불제를 보완하는 바람직한 수단이라는 주장도 있다. 나의 경우, 후자에 동의한다.


셋째, 직불금이든 농민수당이든 ‘조건부 지원’ 성격의 제도보다는 무조건을 전제하는 ‘농민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에 대해서, ‘농민’이라는 말을 ‘기본소득’이라는 말 앞에 붙임으로써 ‘농사짓는다’는 조건을 달았는데, 그게 어떻게 ‘기본소득’이냐는 비판도 있다. 나도 그런 비판에 동의한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기본소득제도를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어려우니, 전형적인 사회적 약자 계층인 ‘농민’을 대상으로 우선 도입해보자는 취지라는 주장이 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도, ‘농민’ 못지않게 또는 더욱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회집단이 있는데, ‘청년’기본소득도 아니고 ‘도시빈민’기본소득도 아니고 ‘농민’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또 다른 쟁점도 있을 터이다. 쟁점이 많은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토론을 통해 해결책이나 절충점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해도, 논의 주체들 각각의 입장과 배경을 알게 되는 효과는 거둘 수 있다. 사실은, 논의 자체를 회피하거나 억압하려는 태도와 상대의 주장을 경청하지 않고 앵무새처럼 자기 주장만 반복함으로써 다른 효과를 거두려는 전략적인 태도가 문제다. 그런 분위기에서 사리에 맞는 정책이나 제도는 형성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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