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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위기 대응을 위한 '국가곡물조달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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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최지현
한국4-H신문 기고 | 2020년 8월 12일
최 지 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시니어 이코노미스트)


지난 3월 이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국제곡물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졌다. 쌀 주요수출국가인 베트남, 인도, 태국 등과 밀 주요수출국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도 일시적으로 곡물수출을 중지한 바 있다. 곡물수입국 뿐 만 아니라 수출국인 미국, 호주, 캐나다에서도 쌀을 비롯한 식료품의 사재기현상이 발생하였고, 만성적 식량부족국가인 필리핀, UAE, 사우디는 정부가 나서서 식량비축 계획을 수립하였다.


2007~2008년 국제곡물 파동시기에도 러시아, 중국, 아르헨티나, 인도, 브라질 등 곡물 주요 수출국가들은 곡물에 대해 수출금지, 수출할당 및 수출세 인상 등의 방식으로 자국의 식량비축을 위해 수출을 규제한 바 있지만 이번 사태는 2020년 이후까지 장기화될 전망이다.


앞으로 코로나19 뿐 만 아니라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생산 감소로 인한 곡물파동과 같은 돌발적 식량위기상황은 발생할 수 있다. 식량위기가 장기화되면 만성적 식량수입국인 우리나라의 경우 식량수급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더욱 심각하다. 우리나라의 사료용 곡물을 포함한 식량자급률은 22% 수준으로 OECD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이처럼 식량부족국가임에도 주식인 쌀을 자급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식량부족문제에 대해 체감도가 매우 낮다. 2019년에 쌀을 포함한 옥수수, 밀, 대두의 수요량은 2,046만 톤이며, 국내 생산량은 393만톤(쌀 374만 톤)에 불과해 1,653만 톤을 외국에서 수입하였다.


코로나19와 같은 식량위기 발생에 사전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선 평상시에 국내 곡물의 생산기반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밀은 식용수요량이 240만톤에 달하지만 국내 생산량은 2만톤에 불과해 자급률이 1%에도 못 미치고 있다. 식용콩도 매년 30만톤 정도가 필요하나 국내 생산은 10만톤 내외로 자급률이 30% 중반에 그치고 있다.


밀의 경우 벼 재배 이후 2모작으로 생산여력은 충분하지만 장기적으로 자급률 제고를 위해서는 품종개발에서부터 수매에 이르는 밀산업 전반에 대한 지원정책이 체계적으로 시행될 필요가 있다. 콩은 단지화 및 기계화를 통해 생산비를 절감하여 가격경쟁력을 높이고, 밀과 마찬가지로 생산부터 수매까지 일관된 정책지원이 필요하다.


이처럼 비상시 식량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 국내 곡물증산기반 확대도 중요하지만, 자급률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국가곡물조달시스템’ 을 작동시켜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뿐 만 아니라 이상기후에 따른 국제적 곡물파동이 발생한다면 필요할 때 식량을 외국으로부터 확보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각국이 국경을 폐쇄하고, 국내 물류 이동 제한이 계속된다면 식량교역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국가곡물조달시스템은 외국곡물메이저 등에 의존하는 곡물수입방식에서 탈피하여 국내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이 합동으로 곡물유통사업에 진출하여 곡물 수입의 일정부분을 독자적으로 도입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곡물은 해외에 생산기반이 있다고 지금과 같은 비상시에 쉽게 수입이 가능하지 않다. 생산 이후 저장, 수송 등 관련인프라와 수출터미널 확보가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 소유 곡물터미널이 없다면 원하는 시기에 필요한 물량을 조달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곡물터미널의 중요성 때문에 2010/11년에 정부와 민간기업 컨소시엄으로 사업을 추진했으나 경험부족과 진입장벽 등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19년 전문가대상 조사결과에 의하면 응답자의 75%가 식량위기발생시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대응이 어렵다고 응답했고, 국가곡물조달시스템 구축을 재추진한다면 ‘정부정책지원 기반으로 민간자본 중심 구축’(59%), 정부와 민간 공동 구축(31%)방안을 주요대안으로 제시하였다.


국내 민간기업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은 2019년 9월 밀과 옥수수 등 주요곡물수출국인 우크라이나에 연간 250만톤까지 출하가 가능한 곡물수출터미널을 완공한 바 있다. 해외 곡물수출터미널 확보는 국내 최초이며, 민간기업이 정부의 도움 없이 국가가 책임져야 할 식량안보시스템 구축의 첫 삽을 들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는 민간이 구축한 이 곡물터미널을 비상시 ‘국가곡물조달시스템’의 큰 틀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코로나19사태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비상시 식량조달시스템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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