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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되는 도매시장 갈등의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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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병률
매일경제 기고 | 2021년 2월 24일
김 병 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근 농산물 도매시장 안에서 벌어지는 유통 주체들 간 갈등이 심히 우려되는 수준으로 번지고 있다. 도매시장 내 유통인 간 갈등이 심화되면 결국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는 문제가 생긴다.


도매시장에서 가장 간단한 거래는 도매상이 출하자로부터 농산물을 매수하거나 위탁받아 소매상에 판매하는 `도매상 중심의 일방향 거래구조`다. 과거 용산시장이나 영등포시장 같은 유사도매시장이나 현재 미국, 유럽 등 서구 도매시장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시장에서는 도매상이 중간에서 위탁수수료나 판·구매 차액을 남기고 판매만 하면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갈등이 벌어질 소지가 거의 없다.


이런 도매시장에서는 도매상이 거래 협상력·구매력에서 절대적인 우위에 있다. 출하자(농민)는 시장에서 협상력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인 셈이다. 이 때문에 유럽과 일본에서는 농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판매창구를 일원화해 공동 출하하거나 산지에 직접 경매장을 만들어 상인들이 와서 사 가도록 하면서 거래 교섭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와 달리 유사한 기능을 하는 집단이 한 시장에서 활동할 때는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한국과 일본의 대부분 도매시장은 출하자가 내놓은 농산물을 수탁받아 판매하는 도매법인(도매시장법인)이 있고, 이로부터 농산물을 경매받아 소매점에 판매하는 중도매인이 있는 `이원적인 시장구조`를 띠고 있다. 도매법인은 거래 교섭력에서 절대 뒤지는 출하 농민을 대리해 수탁판매 창구를 대형화·집중화해 판매력을 발휘해서 가격을 높이려는 기능을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 구조를 평형화하는 역할이다.


반면 중도매인은 도매시장 구조가 `일방향 구조`에서 `이원적 구조`로 바뀌면서 기존의 우월한 거래협상력을 견제받게 된 데다, 과거 도매상들이 받았던 위탁수수료를 도매법인에 빼앗겼다는 상실감까지 있어 도매법인과 갈등이 깊어지고 심지어 적대적 감정까지 생기게 된다.


갈등 완화를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도매상이 중심이 되는 일방향적 도매시장을 별도로 만들어주고, 거래 방식을 상대거래로 완전 자유화하는 방안이 있다. 현재 서울 강서도매시장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운영되는 이른바 `시장도매인제`를 일부 도입해 경매시장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아예 강서도매시장 전체를 경매제가 아닌 도매상제 전문 특화시장으로 확대해 새로운 서구형 도매시장 모델을 만드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공영도매시장에서는 도매법인과 중도매인들이 서로의 기능을 침해하지 않고 협력하는 것이 갈등 완화에 도움이 된다. 도매법인의 산지 개발에 중도매인이 협력할 수 있고, 중도매인의 판로 확보에 도매법인이 협력하는 것이다.


또한 경매의 최대 문제로 지적되는 가격 급등락 방지를 위해 경매제 자체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하고 정가수의거래도 확대해야 한다. 출하자와 중도매인들의 판·구매 편리성을 위해 한편으로는 온라인 도매거래소를 적극 개설해 운영할 필요도 있다.


아쉽게도 현재 도매시장 내 갈등이 학자, 정치인, 농민단체까지 확산되고 언론을 통해 농업계를 양분해 상호 비판하는 논쟁이 벌어지면서 갈등의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가 심화되고 있다. 이제는 갈등 완화를 위한 방안을 함께 고민하는 차원에서 열린 마음으로 공론화하고 이견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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