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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환경정책을 정립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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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KREI논단 기고 | 2021년 2월 25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친환경농업 정책이 1990년대 후반 김대중 정부에서 공식화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유럽연합(EU)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쓰는 용어, 농업-환경정책(agri-envrionmental scheme)이라는 말과 비슷하게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이라는 정책 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 문헌에서 ‘농촌환경정책’이라는 표현은 등장한 적이 없다. ‘농촌 어메니티(rural amenities)’, ‘농촌다움’, ‘금수강촌가꾸기’, ‘맑은물 푸른 농촌 가꾸기’ 등등의 언표(言表)가 한때 유행하기도 했지만, 여러 문제를 포괄하면서 다양한 정책 수단을 체계적으로 배치한 ‘농촌환경정책’이라는 범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농촌의 환경이 아직까지는 괜찮은 편이니까 문제없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정말 괜찮을까? 농경지에 곁붙은 소하천이나 마을을 통과하는 도랑-배수로를 한번 들여다보시라. 산골이 아닌 바에야, 대개는 서울시 청계천보다 더 흐릿하고 악취가 난다. 시골 개울물이 맑지 않다는 감상을 근거로 ‘농촌환경정책’이라는 큰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니다. 국토 환경의 보전과 관리라는 관점에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사안이 ‘물순환’이다. 물은 바다 표면에서 증발해 구름이 되어 이동했다가 비가 되어 땅에 쏟아진다. 이것은 다시 댐, 저수지, 논, 가정, 공장, 상점 등등 온갖 경로를 거쳐 하천에 흘러 들어가 지표수가 되거나, 땅에 스며들어 지하수가 된 다음 다시 바다로 흘러간다. 이런 물순환 과정에서 농촌 지역의 논, 저수지, 하천, 관개배수로에서 얼마나 많은 물이 저장되고, 흐르고, 증발하고, 땅 속으로 스며들지를 상상해 보시라. 그렇게 농촌환경 전체가 물순환체계와 직결되어 있다. 


석유나 석탄으로 대표되는 화석연료와 연관시켜도 할 이야기가 많다. 지금 우리는 ‘비닐하우스 원예 기술’이 널리 퍼진 덕택에 한겨울에도 딸기를 먹을 수 있다. 노동력을 뒷받침할 형편이 되는 농업인은 농한기 없이 그리고 비 오는 날에도 관계없이 일하면서 토지 이용률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에서 비닐하우스 농사라도 없었다면 현금 만지기가 곤란했을 농가가 적지 않으리라. 비닐하우스 시설원예의 공적(功績)이 적지 않지만, 그 후과(後果)도 만만치 않다. 우선, 영농폐비닐이 눈에 들어온다. 대략 해마다 약 32만 톤의 영농폐비닐이 나온다. 그 37퍼센트에 달하는 12만 톤이 수거·재활용되지 않고 방치되거나 불법으로 소각된다. 방치된 폐비닐은 농지에 묻혀 토양오염을 부채질한다. 폐비닐을 소각하면 미세먼지를 유발하는 등 2차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영농폐비닐의 문제 상황은 지난 15년 동안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농촌 인구는 고령화되어 영농폐비닐을 수거하고 운반하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데, 그 발생량이 줄어들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같은 기간 동안 수거량도 약 18만~20만 톤 범위에서 오락가락할 뿐, 늘지 않았다. 농업용 비닐에는 몇 가지가 있지만, 종류를 막론하고 에틸렌이 주원료다. 에틸렌은 원유 또는 천연가스 원료에서 주로 생성되는 석유화학 제품이다. 즉, 농업용 비닐을 사용하는 그만큼 화석연료를 쓰는 것이고 지구온난화에 기여하는 셈이다. 에너지 측면에서도 농업용 비닐은 점수를 깎아먹는다. 


풍력, 태양광, 소수력 등 화석연료가 아닌 신재생 에너지 생산 기반을 확충하는 과제가 아주 중요한 건 분명하다. 그런데 신재생 에너지 생산 기반 확충과 병행해야 할 실천은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투입을 줄이는 일이다. 농촌에 한정해서 본다면,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를 덜 쓰는 방향으로 농업생산 방식을 바꾸는 것만큼 큰 일이 없을 테다. 과문(寡聞)한 탓이겠지만, 한국에서 농업생산에 기본이 되는 태양에너지 외에 직간접적으로 투입되는 인위적인 에너지의 총량을 추정한 수치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동안 농업생산에서 인위적인 에너지의 비중이 높아져 왔다는 사실은 금세 알 수 있다. 인위적 에너지는, 그 형태가 전력(電力)이든 경유든 농약이나 화학비료 같은 합성물질 투입재이든 대부분 화석연료로부터 나온다. 농업은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생산활동이라고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면 점점 덜 ‘자연적’인 활동으로 변한 것 아닐까? 농업은 과거에 자연(태양) 에너지를 벌어들이는 활동이었는데, 이제는 에너지를 소비하는 활동이 된 셈이다. 생산량 총량을 극대화하려 투입을 계속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영농이 바뀐 데에 원인이 있다. 이 영농방식을 바꾸는 일이야말로 농업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근본적인 처방일 테다. 물론,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고투입이라는 한마디로 표상되는 이 영농방식을 바꾸려면 노동력이 더 있어야 한다. 석유화학 기반 투입재를 노동으로 대신할 일이 많겠기 때문이다. 아니면 농산물 가격이 오르거나 직불금 같은 직접적인 소득지원이 대폭 확충된다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웬만한 이들은 다 알듯이,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어쨌든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영농방식을 바꾸도록 촉진하는 것은 농업정책의 영역이지만, 그 정책이 농촌의 환경에 깊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양돈이 활발한 어느 농촌의 주민들에게 ‘환경’이라는 말을 던지면 축산분뇨에서 나오는 악취 문제가 가장 먼저 떠오를 테다. 도시 아이들이 ‘고향의 냄새’ 때문에 시골의 할머니 뵈러 가기 싫다고 말하는 바로 그 냄새다. 악취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농약 못지않게 수질오염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축산분뇨다. 양축 농가에서 가축분뇨를 몰래 방류하는 것만이 악취와 수질오염의 원인이라면, 엄격히 단속하는 것만으로도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테다. 오염의 원인이 가축분뇨 불법 투기에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가축분뇨로 만든 유기질 퇴비를 농경지에 투입하는 이들은 양축 농가가 아니라 경종 농가다. 유기질 퇴비는 원래 토양의 물리적·생물학적 성질을 개선하는 효과 측면에서 화학비료보다 우수하다고 평가된다. 그래서 화학비료 대신 사용하라고 정부가 권장해왔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지 않던가. 유기질 퇴비도 지나치게 많이 쓰면, 작물이 흡수하지 못하고 남은 질소 및 인 성분이 물을 부영양화(富營養化)시킨다. 영양물질이 많으니 플랑크톤이 비정상적으로 번식한다. 그런 물을 두고 사람들은 ‘썩었다’ 또는 ‘녹조라떼’라고 말한다. 농약을 쓰지 말자거나, 유기질 퇴비 사용량을 줄이자거나, 완효성 비료를 사용하자거나 등 여러 실천들이 제안되지만, 농민 각자가 나름대로 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성싶지 않다. 특정한 수계(水系)를 공유하는 농경지의 농민들이 함께 의논하고 보조를 맞추어야 하는 일이다. 이런 종류의 집합적 활동(collective action)은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거나 축산 부문에서 상당 부분 기원하는 악취나 수질오염을 줄이는 데에 신통방통한 단 한 가지 비법이 있을 리 없다. 


그밖에도 농촌 환경과 관련된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전국 농촌에 최소 6만 채 이상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빈집의 문제가 있다. 철거하거나 새로 꾸며서 어떤 식으로든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된다. 농경지 한복판에 오염원으로 의심되는 공장들이 난립하는가 하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 브라운필드(brown field)가 농촌에도 적지 않다. 폐광, 조류인플루엔자나 구제역에 걸린 동물을 살처분하여 묻은 매몰지, 문 닫은 산업단지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생태학적으로 또는 역사문화적으로 민감하거나 소중한 유산으로서 가치가 있어 보전해야 할 것들은 농촌에 얼마나 많은가? 


농촌 환경과 관련하여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공적 개입이 아예 없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다. 미흡하나마 여러 가지의 조치들이 이미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제각기 단편적으로 진행되는 정책이나 규제를 한데 묶어 상호 연관성을 고려한 접근방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농업환경에 관해서는 농사짓는 방식이 바뀌어야 하고, 농촌이라는 장소를 환경적으로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는 주민들이 상당히 많은 노동을 투입해야 한다. 규제든, 신기술 도입이든, 인센티브 제공이든 무엇보다 다수의 농민-주민 들이 일정한 공감대와 협력에 바탕을 두고 공동으로 혹은 조직적으로 무언가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대부분이다. 결국 필연적으로 농촌의 일정한 장소에 대한 중장기적인 계획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농지를 비롯한 토지의 용도를 정확하게 설정하고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언급한 이 모든 일은 개별 정책사업으로 달성할 수 없는 일이다. 아주 많은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고려하는 중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이 필수적이다. ‘농촌환경정책’이라는 새로운, 새롭다고 했지만 전혀 없던 것을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것은 아닌, 정책 범주를 확립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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