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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일과 쉼의 공간, 농촌을 위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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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송미령
중앙일보 기고 | 2021년 12월 30일
송 미 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포용성장·균형발전연구단장)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 과정에서 농촌은 노동력, 먹거리, 토지 등을 공급하며, 대한민국 성장의 대지로서 제 역할을 해냈다. 농촌은 이제 한국판 뉴딜의 핵심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언택트 일상이 보편화되자 저밀도 농촌 공간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커지고 있다. 국민 상당수가 살고 일하고 쉬는 공간으로서의 농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농촌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공장과 축사, 창고, 재생에너지 시설이 무분별하게 들어서는 등 난개발로 인해 농촌다움과 환경이 훼손되고 주민의 건강 및 안전까지도 위협받는 상황이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에야 공장이든 축사든 무엇인가를 유치하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믿음이 있었으니 농촌다움이나 주민의 생존권을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 주민의 환경권이 헌법 제35조 1항의 국민 기본권 중 하나임을 잊고 살았다.


저개발이 문제인 농촌도 있다. 방치된 빈집이 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활서비스도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보니 젊고 생산성 높은 사람들은 농촌을 떠났다. 농촌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해 일부 지역에서는 소멸을 우려할 상황이 되었다. 지역균형 뉴딜에서 농촌소멸을 핵심 아젠다로 설정해 대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농촌소멸을 막고 국민들이 농촌에 가지는 수요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난개발·저개발의 문제를 완화하고 농촌을 국민 모두가 살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었다고 자주 거론되는 독일과 프랑스는 농촌다움을 유지하면서 균형발전을 이루는 것을 국정 아젠다로 삼고 있다. 독일의 경우 국토를 도시적 개발이 이루어진 ‘내부지역’과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외부지역’으로 구분한다. 대체로 농촌에 해당하는 외부지역은 국민 모두와 미래를 위한 삶과 쉼의 기능 공간으로서 원칙적으로 개발을 금지하며, 필요한 경우에 주민이 만든 계획을 바탕으로 정비 사업을 추진한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새로운 개발 행위를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토지를 자연으로 회귀시켜야 한다. 1㎡의 농지를 다른 용도로 개발하려면 다른 토지를 농지나 자연녹지 2㎡로 회귀시켜야 한다.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우리의 농촌은 그에 걸맞는 정비가 필요하다. 압축적 경제성장 과정에서 난개발로 멍든 농촌다움을 복원시키고 저개발이 문제인 농촌지역은 체계적 개발을 통해 사람이 돌아오는 농촌으로 가꾸어야 한다. 국민 모두에게 열린 삶터이자 일터, 쉼터로 그리고 한국판 뉴딜의 핵심 공간으로 농촌을 재생시켜야 한다.


농촌 재생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농촌 공간에 적합한 계획 수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도시계획을 모방한 계획이 아니라 농촌 주민 스스로 농촌의 미래를 가꾸어가는 계획이 필요하다. 농촌은 인구 밀도와 구성, 산업 구조, 토지이용 형태 등이 도시와는 다르다. 따라서 농촌 여건에 맞추어 난개발을 완화하면서 농촌다움을 복원해내는 동시에, 정주환경 개선, 경제기반 구축, 사회서비스 제공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러한 농촌공간계획이 실천되려면 재정 투자를 확대하고 구속력 있는 제도적 틀을 갖추어야 한다. 부처 간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통합적 농촌재생전략으로 지자체와 주민이 그 범위와 규모를 확대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농촌공간계획을 바탕으로 하는 농촌재생뉴딜사업이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근거 법률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리 농촌도 세상의 변화에 부합하고 국민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는 근사한 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선진국 위상에 걸맞게 농촌을 재생시킨다는 공감대 하에서 섬세한 실천을 추진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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