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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공간계획’ 도입…난개발 대응·농촌기능 회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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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성주인

농민신문 기고 | 2022년 1월 17일
성 주 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인구 고령화와 젊은층 유출로 지방소멸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임기 여성인구수를 노인인구수로 나눠 산출한 ‘지방소멸위험지수’에 근거, 전국 시·군·구 10곳 중 4곳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 중 상당수가 농촌일 것임은 자명하다.


그러나 우울한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인구 이동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농촌 지방자치단체 중에도 인구 순유입이 나타나는 곳이 늘고 있다. 이동 연령층을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로 좁히면 2020년 기준으로 비수도권에 속한 74개 군(광역시 제외) 중 93%에 해당하는 69개 군에서 인구 순유입이 있었다.


거주지를 이전하지 않고 도시와 농촌을 오가는 ‘5도2촌형’ ‘4도3촌형’ 생활양식도 있다. 2019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전국 도시민 중 14%가 가까운 미래에 농촌에서 활동하고자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과거에는 없던 변화로, 농촌 고령화·공동화 상황 속에서도 작게나마 희망을 품게 한다.


문제는 농촌에 대한 이런 관심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지다. 요컨대 국민이 기대하는 모습을 농촌이 온전히 유지하지 못할 때 농촌은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국민들은 깨끗한 자연환경, 일과 여가의 균형, 도시에선 누릴 수 없는 삶의 질 등 가치를 농촌에 기대한다. 고밀도 아파트 단지가 아닌, 자연과 어우러지는 쾌적한 거주공간이자 여가공간으로 농촌이 남아 있기를 바란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땅값이 저렴한 도시 근교 농촌 곳곳에 공장이 들어와 마을 주거환경을 저해하고 때로는 주민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축산냄새 문제도 전국적으로 나타난다. 최근에는 마을 경관을 훼손하는 태양광시설로 민원이 도처에서 발생한다. 농경연의 2020년 설문조사 결과 농촌 난개발 문제가 심각하다고 인식하는 국민들이 수도권뿐 아니라 다른 시·도에서도 과반에 달했다.


현 정부 들어 몇년에 걸쳐 농림축산식품부 정책 담당자와 농촌정책 전문가를 중심으로 ‘농촌공간계획’ 제도 도입을 추진해온 배경이다. 전국적으로 확산한 농촌 난개발 문제에 더 늦기 전에 대응하지 않으면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음에도 농촌공간계획 제도화를 둘러싼 논란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국토·도시 계획 분야 정책당국과 전문가 사이에서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 중심의 현행 공간계획 제도 틀 안에서 농촌 난개발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이 우세하다. 농민이나 농촌주민 중에는 농촌공간계획이 불필요한 규제로 작용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도시민 때문에 농촌이 규제를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이같은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농촌공간계획의 필요성과 목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첫째, 도시계획은 담당할 수 없는 농촌공간계획만의 차별화된 역할을 분명히 정립해야 한다. 도시가 제대로 작동하는 데 필요한 것이 도시계획이다. 주거·산업 용지를 확보하고 시설과 인프라를 설치하는 구상을 도시계획이 제시한다. 반면 농촌이 농촌답게 유지되고 지속가능하도록 하는 일은 도시계획 범위를 넘어선다. 농촌에선 신규 개발보다 기존 마을 정비가 우선 필요하다. 자연환경과의 조화와 전통자원 보존도 고려해야 한다. 주민들이 분산 거주하는 특성도 도시계획을 농촌에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다.


둘째, 농촌공간계획이 도시민 입장에서 보기 좋은 농촌을 만드는 일이라는 인식, 즉 농촌주민에겐 불필요하다는 인식을 넘어서야 한다. 농촌공간계획은 주거환경을 저해하는 시설이 마을 주변에 무분별하게 들어서지 않도록 주민 생존권을 보호하고 농촌을 쾌적하게 유지한다는 목표를 지향한다. 나아가 주민에게 필요한 인프라와 서비스를 공백 없이 제공토록 하는 중장기단위 청사진이 된다. 주민들이 나서서 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살리는 활동을 벌일 때 그에 대한 지원과 인센티브를 제공할 근거가 되기도 한다.


셋째, 농촌공간계획은 국가적 차원의 미래 변화에 농업·농촌 부문이 능동적으로 대응하도록 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인구밀도가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에선 다양한 분야의 토지이용 수요가 농촌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택지와 산업용지 개발에 많은 땅이 필요하며, 여기에 더해 앞으로는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 부지 수요도 커질 것이다. 농촌 토지이용에 대한 농업·농촌 부문의 장기적 구상이 마련되지 않으면 장래 농촌의 역할은 비농업부문 요구에 맞춰 저렴한 용지를 공급하는 데 머물 것이다.


현 정부 들어 농촌공간계획 논의가 꾸준히 진행된 덕에 제도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었다. 하지만 계획 수립과 토지이용 제도 개선 등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 구체적인 계획 수립 내용·방법 등을 놓고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차기 정부는 농촌공간계획 제도를 도입하고, 이후 계획을 안착시켜 효과적으로 활용되도록 힘써야 한다. 농촌공간을 정비하고, 삶터·일터·쉼터로서 농촌 기능을 되살리는 사업이 효과적으로 추진되도록 기존 농촌정책을 재편하는 과업도 지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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