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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나눔터 7.8월호-농정시선] 코로나19 發 국제 곡물 수급 위기, 생각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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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發 국제 곡물 수급 위기, 생각을 바꾸자

박성진 부연구위원, KREI


 코로나 19 상황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다. 문제는 이 상황을 당분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코로나 19와 비슷한 바이러스 창궐을 더 자주 경험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다. 이로 인해 세계 경제의 경직과 국제 곡물 수급 불안이라는 곤경에 직면할 것이라는 또 다른 불안감의 가중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많이 완화되었지만, 전 세계 식량 수급 여건이 양호한 가운데 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국제 곡물 수급 불안 요인들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주요 식량 수출국에서 전략 곡물 재고 비축분 확대를 위해 수출을 금지하였고, 국경지역 봉쇄·방역 강화 등으로 곡물의 선적이나 육·해상 운송에 제약을 받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 곡물 수입국에서는 선도구매 등의 방법을 활용하여 곡물 수입을 확대하기도 하였다.
 국제 곡물 수급 불안은 다양한 요인이 있겠으나, 통상적으로 곡물 생산국에서 발생한 이상기상이나 자연재해 등에 의한 사건·사고로 생산량이 급감하거나 신흥국의 경제성장이나 바이오 에탄올과 같은 대체 에너지 생산 등에 의한 수요 급증 등이 주요 요인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코로나 19 상황은 곡물 수급 불안이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바로 국경·지역 폐쇄와 사람의 이동 제한에 따른 공급망의 붕괴이다. 국제 곡물 수급은 신자유주의 무역자유화와 비교우위 경제이론에 근거한 글로벌 분업화 토대 위에 구축된 글로벌 가치 사슬을 통해 이루어져 왔으나, 코로나 19 상황은 이러한 글로벌 가치 사슬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국가 안보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9년 미국이 취한 1,700만 톤의 곡물 수출 금지로 인한 구소련의 붕괴와 식료품 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한 소요사태로 이집트, 알제리, 리비아 등의 정권이 무너졌던 ‘아랍의 봄’이라 할 수 있다.

 글로벌 가치 사슬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거의 없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국가와 국민의 안위와 생존이 직결되기 때문이다. 주요 곡물 생산국가와 협력을 강화함은 물론 글로벌 가치 사슬 진입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량 농지·농업용수 등 농업자원 확보, 농업 후계자 확보와 육성, 농업기술 수준의 향상, 쌀 중심의 식량 정책 전환 등 국내에서 시행 가능한 모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율라 비스(Eula Biss)의 ‘면역에 관하여’라는 책에 보면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다. 면역은 공유된 공간이다.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 “면역은 사적인 계좌인 동시에 공동의 선택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면역’이라는 단어 대신에 ‘농지’를 대입해 보면,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며, 농지는 공유된 공간으로서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 “농지는 사적인 계좌인 동시에 공동의 선택이다.”로 변환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일본과 중국의 경우 안정적 식량 공급을 위해 농지 보호 및 확보 정책을 꾸준히 유지·추진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도로나 주택, 공장이나 창고 등의 용지로 전환되어 매년 2만 ha 정도의 농지가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2018년 기준으로 46.7% 수준에 머물고 있다. 쌀의 경우 97.3%로 완전 자급이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지만, 밀은 1.2%, 옥수수 3.3%로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식습관의 급격한 변화로 1인당 밀 소비량(32.2kg)이 쌀(61.0kg)의 절반 수준을 초과하였고, 가공식품 대부분이 수입 곡물에 의존하고 있어 상당히 위험한 요소이다. 곡물 수요를 사료용까지 확대한 곡물 자급률은 27.1%로 급격하게 낮아져,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곡물 생산국의 국경이 폐쇄될 경우 곡물 수급 불안 위협에 직면하게 되는 구조이다. 생태학적 감수성으로 농지가 우리와 맺고 있는 상호의존적 관계를 성찰해보고,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농지를 보전하고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코로나 19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사건이자 사고이다. 사건이 내가 의도적으로 일으킨 일이라면 사고는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내가 당한 일이다. 쌀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구조상 국제 곡물 수급 불안은 우리의 의도와 관계없이 당할 수 있는 사고이며, 우리의 의지에 따라 일정 부분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사건이다. 국제 곡물 수급 불안은 공급 측면의 요인과 수요 측면의 요인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창궐과 같이 우리가 생각지 못한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내가 소속되어 있으며,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이다. “현재 국제 곡물 수급 여건이 양호하다.” “돈만 있으면 언제든 곡물을 확보할 수 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등의 안이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이전과 다른 깨달음을 얻고, 다가오는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를 준비한다. 이제는 지혜를 모아 준비할 때이다. 코로나 19와 같은 바이러스 창궐로 인한 글로벌 가치 사슬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국가와 국민의 안위와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환경과 공동체를 조성해야 한다. 이러한 환경과 공동체는 몇몇 소수의 외로운 노력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국가와 국민 그리고 농업 생산자의 신뢰를 기반으로 ‘곡물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신념이 공유되고 공감되어야 가능하다.



<농경나눔터 2020년 7.8월호 – 농정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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