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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나눔터 4월호-농촌에서 온 편지] 제철에 먹는 집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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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에 먹는 집밥

글.임충빈(경기 안성, KREI리포터)


향긋한 봄바람과 살랑거리는 봄볕이 맑은 계절을 시샘하듯 움츠렸던 몸과 마음에 스며든다. 따뜻한 햇볕 찾아 세상 보려 봄기운 가득 품고 돋아나는 새싹들, 봄나물이 깜깜한 언 땅속에서 지루했을 겨울을 참고 견디다가 이맘때쯤 하나같이 고개를 내민다. 아직 꽃샘잎샘 날씨지만, 과수 가지에도 앞 다퉈 움튼다. 아름다운 자연을 품으며 돋아나는 생명을 보노라면 문득 입맛을 다시게 하는 것이 냉잇국과 냉이 된장찌개다.

날씨가 그물거리는 오후, 냉이를 캐는 손이 꽁꽁 얼 것 같은 입춘 추위에도 바구니를 채워야만 저녁상에 올릴 반찬이라는 강박에 촌부의 손놀림은 더 빨라져야만 한다. 마음도 몸도 허전할 때는 따뜻한 심기(心氣)를 그윽하게 넣어줄 한 끼 집밥이 더없이 그리워진다. 식물 단백질의 대표 주자인 콩을 곰 삭혀 만든 된장, 우리가 찌개로 쉽게 먹으면서도 그 소중한 가치를 잊을 때가 많지만, 푸짐한 뚝배기에 갖가지 재료로 끓여내는 보글보글 냉이 된장찌개에 마누라의 손맛이 더해지면 고봉밥이 생각날 정도로 입맛이 살아나니 산진해미(山珍海味)가 따로 있을까.

준비된 맛국물(다시물)이 없으면 쌀을 씻을 때 애벌은 버리고 두 번, 세 번째 물을 사용하거나 멸치 몇 마리를 넣어도 훌륭하다. 풋고추, 호박, 무, 감자, 부추, 달래, 냉이 등 있는 제철 채소와 두부를 넣고 약한 불, 중간 불, 센 불로 끓일 때 된장을 별도로 풀어서 간을 봐두었다가 채소가 다 익으면 마지막에 된장을 넣고 한소끔 끓으면 들어내서 고춧가루로 고명을 얹으면 맛있는 된장찌개가 된다. 그리고 된장을 마지막으로 넣으면 된장 고유의 독특한 향을 간직하여 감칠맛이 더한다. 단백질인 된장을 처음부터 넣고 오래 끓이면 텁텁한 맛이 나기 때문이다.

뭐니 뭐니 해도 고단하고 힘들 때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추슬러 주는 것은 우리 음식, 따뜻하게 안아 반겨주는 것은 오랫동안 입맛에 길든 밥과 국, 찌개, 밑반찬이 한 끼 식탁을 행복하게 하여 줄 것이다. 정월대보름에 오곡밥에 묵나물로 만포장으로 먹었지만, 지신밟기 등으로 몸에 힘이 배여 금년 농사는 풍년이요, 대박이 분명하지만 농사 부침을 제대로 하려면 지금부터 입맛 따라 부지런하게 먹어 둬야하고 농한기를 최대한 활용한 휴식과 식보가 필요하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은 넘쳐나지만, 왜 맛있게 느껴지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현실에서 맛은 문화와 지리적 차이 심지어 분위기, 장소,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인생의 쓴맛 단맛 다보고 생존하기 위해 먹어야 하는 음식, 언제 맡아도 좋은 밥 냄새, 계절 채소를 데쳐 조몰락조몰락 무친 상큼한 나물반찬, 넉넉하게 먹어도 쉽게 소화돼 편안한 것은 발효한 음식이기 때문일까?

오늘도 포근한 저녁이 있는 식탁에서 식구들과 오순도순 얘기하며 계절의 진미인 냉이 된장찌개로 집밥을 먹고 싶다.

<농경나눔터 2017년 4월호 - 농촌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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