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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나눔터 10월호-농촌愛 살어리랏다] 꽃농사를 짓는 정유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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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농사를 짓는 정유경입니다

. 정유경 충남 예산

 

저는 충남 예산에서 꽃농사를 짓고 있는 정유경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인구가 8만여 명이 살고 있는 작은 농촌지역입니다. 학창시절 친구들은 대학은 물론 직장까지 도시에서 생활하고자 다들 떠났는데 저는 거꾸로 농촌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농부로서의 삶을 선택한 이유를 궁금해 하십니다. 젊은 여자가 무슨 농사를? 어떻게? ? 짓느냐고요. 저는 왜 농촌에 서 농사를 짓고 있을까요? 저는 이곳에서 농부로서 살 고 있는 지금이 만족스럽기에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부터 농부가 되겠다는 꿈이나 목적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나고 자란 곳은 시 골이지만 부모님이 농업에 종사하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농업에 자도 몰랐고 여타 다른 친구들처럼 대학진학을 고민하고 보건대 임상병리과를 진학했습니다. 단순히 졸업 후 취직이 잘된다고 해서 택했었습니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다보니 주삿바늘이 싫어서 병원에도 잘 가지 않는 아이였는데 그런 것을 전혀 생각 하지 못했더라고요. 혈액검사가 주 업무가 될 이 일을 평생 할 생각에 막막하여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재수학원을 다니고자 서울 삼촌댁으로 올라갔습니다. 삼촌은 서울에서 화훼농업을 하고 계셨는데 학원 을 다니면서 조금씩 도와드리다 보니 관심이 가기 시 작했습니다. 삼촌께서는 관심이 있다면 제대로 배우 고 나와서 도전해보라며 한국농수산대를 추천해 주셨고 저는 입학을 하고 졸업 후에 농장을 하겠다고 고향인 예산으로 내려왔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직장을 찾아 모두 서울이나 대전 등 도시로 떠났는데 저만 거꾸로 시골로 내려와 그것도 농사를 짓겠다니 부모님께서 반대가 심하셨습니다. 그래서 우선 경력을 쌓으려 농장에 찾아가 2년간 일을 배웠고 결국에는 부모님께서 도 저의 뜻을 존중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논이었던 땅에 흙을 받는 것부터 하우스를 짓는 모든 과정을 제가 직접 맡아서 하다 보니 훌 쩍 늙는 느낌이 들었지만 신이 나고 즐거운 마음이 더 컸습니다. 처음에는 팬지라는 꽃을 키웠는데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며 열정뿜뿜애지중지 예쁘게 키웠습니다. 그런데, 출하를 해보니 10만 개를 키웠는데 6만 개만 팔렸습니다. 판매처를 많이 확보하지 못했고 수요량을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남은 4만 개를 쏟아버리는데 정말 엉엉 울면서 폐기했습니다. 이렇게 예쁜데, 내 새끼들인데. 이래서 부모님이 농사를 어려운 일이라고 말렸나 싶고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실패할 때도 있고 실수할 때 도 있고 살다보면 이런 일도 겪을 수 있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문제점인 판로개척을 위해 직접 뛰어다녔습니다. 처음엔 직접 홍보하려니 창피하기도 했지 만 쏟아야 했던 꽃들을 생각하니 창피함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판로를 늘려나가고 있는 데 이번엔 다른 문제가 터졌습니다. 볼라벤이라는 태풍에 하우스 비닐이 모두 날아가고 파이프도 망가지 고 키우던 국화까지 망가졌지요. 농사를 접을까 심각 하게 고민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도와주시려는 부 모님 얼굴을 뵐 낯도 없었습니다. 제가 하겠다고 설득해서 시작한 일인데 이대로 그만둘 수는 없었습니다. 다시 씩씩하게 힘내서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배워나갔습니다.

 

저는 아직도 버벅이면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하 지만 분명한 것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부 족한 점은 채우고 배워나가며 더 나은 농장이 되도록 경영할 것입니다. 계속 변화하고 발전해 나갈 제 농 장, 이 농장을 경영한다는 것이 너무 즐겁고 행복합니 다. 농사짓기 시작한 지 7년 차에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아 배울 것도 많은 초보 농부지만 꽃들이 쑥쑥 자라는 것처럼 저도 조금씩 더 성장해갑니다.

 

<농경나눔터 201810월호 농촌살어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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