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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나눔터 1월호-KREI에 바란다] 오던 길을 멈추고 세상을 넓고 크게 내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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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던 길을 멈추고 세상을 넓고 크게 내다보세요

글. 허신행(KREI 5대 원장, 前농림부장관)

‘KREI에 바란다’라는 원고 청탁을 받고 사실 좀 망설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밤낮 없이 연구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연구원들에게 부담이 갈 만한 말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담당자의 요청이 완강해서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럴 바엔 언젠가 한번은 말하고 싶었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펜을 놓고 잠시 멈춰 생각해봅시다. 우리 모두는 어디론가 떠밀려간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나요? 15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문예부흥 이후 모든 학문은 세분화를 거듭해오면서 세상을 통째로 보는 능력을 거의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어떤 문제가 되었건 이론을 설정하고 수리로 증명해야 된다는 과학적(?)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미시적 분석에만 매달려 왔었기 때문이겠지요. 여기엔 수백 년의 관성이 붙어 되돌릴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작용하고 있어서 감지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경제학 분야만 놓고 보더라도 그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날로 늘어나고 연구실적은 산더미처럼 쌓여가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도 매년 증가하건만 왜 청년실업문제, 양극화문제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봅니까? 아니 농업경제학에서는 왜 소농문제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합니까? 세상에 정답이 없는 문제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소농들은 어디로 가야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할 수 있습니까? 개방화의 파고에도 좌절함이 없이 세계 농업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며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없나요? 그 길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KREI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연구과제가 아닌가요? 동의하신다면 모두가 지금까지 걸어오던 길을 잠시 멈추고 눈을 높이 쳐들어 세상을 보다 넓게 내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 정신없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ICT 등 첨단기술에 의해서 전 인류가 오감을 모두 연결, 하나의 세상, 하나의 사회,하나의 국가나 유기체처럼 통합되는 한몸사회가 오고 있습니다. 전 인류가 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차세대 극초음속 여객기가 개발돼 지구촌이 한 시간 거리로 단축 되기에 이르고, 30모작이 가능한 공장식 다층 기계농업이 가능해지며, 3D 프린터에 의해 완전식품까지 간단하게 찍어내는 스피드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동식물의 세계를 보면 수천만 종류의 생명체들이 각자 살아갈 수 있는 먹이 영역의 틈새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자연 도태되고 맙니다. 이게 자연의 순리요 냉혹한 법칙입니다. 하물며 1정보 남짓 되는 한국의 소농들이 세계 농업의 정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틈새나 영역을 확보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성장, 발전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기업체 하나 살아남기도 어려운 세상에 한 국가의 소농경제 전체가 살아남길 바라는 자세는 어떻게 해야 된다고 봅니까? 정말로 사생결단의 굳은 각오를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여러분에게 일차적으로 바라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세상을 넓고 크게 내다보세요. 세상은 하나가 됩니다. 한 시간 거리로 좁혀지고 있습니다. 첨단기술은 무한대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은 다 생산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기호와 패턴은 수시로 바뀝니다.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등 주변 농수산식품 시장도 살펴보세요. 한국 농업을 살릴 인적 자원이 어디에 있는지도 살펴보세요. 그들을 어떻게 선발하고 교육·훈련시켜야 우리 농업을 살릴 수 있는 개척자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세심한 관찰과 연구노력이 필요합니다.

호주에 가보면 수많은 작은 개미들이 사람의 키만큼이나 거대한 집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냉난방시설과 육아실은 물론 버섯농장과 창고까지 잘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KREI 전 직원들이 각자의 분업과 협업을 통해 한국 농업이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모범 답안을 개미들처럼 한번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들에게 부여된 국가적 과제요 국민의 바람이 아닐까요? 내가 바라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농경나눔터 2017년 1월호 - KREI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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