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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나눔터 2월호-KREI에 바란다] 연구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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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고백

글. 이태호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새해 벽두부터 어려운 원고 청탁을 받았다. “KREI에 바란다”는 내용을 써 달란다. 누구에게 무엇을 바라는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대상인 KREI는 평소에 자주 보는 동업자 분들이 밀집해 있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다. 필자는, 같은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동료 연구자에게 바라는 말씀을 쓰기 보다는 필자의 연구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였다. 졸필이나마 읽으시는 동안 잠시 연구를 잊고 머리를 식혀주신다면 연초부터 필자에게 보람 있는 일을 한 가지 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시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상, 연구에 임할 때 제일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연구주제이다. 맘에 드는 연구를 만나는 것은 가뭄에 콩나기이다. 필자는 맘에 들지 않는 연구를 맡게 되면 원하는 연구를 만나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 한다. 그 다음에는 연구를 맘에 들게 만들려 노력한다. 다행히 많은 연구는 잘 뜯어보다 보면 맘에 드는 구석이 한두 개는 나온다.

그 다음에는 연구의 목적을 파악하는데, 연구의 목적이라는 것이 상상외로 파악하기 힘들다. 연구 발주자가 따로 있는 경우는 물론이고 필자 자신이 마음대로 연구 주제를 선택한 경우에도, 내 마음 나도 모른다 할까, 곧잘 연구목적과 상관없는 삼천포로 빠지곤 한다. ‘연구도 장사다’라고 되뇌면서 최대한 연구자가 아닌 연구 수요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 노력한다.

실질적인 연구는 자료의 수집부터 시작된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연구기간을 반 넘겨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아무리 시간에 쫓겨도, ‘연구가 신통치 않으면 자료라도 남겨야지…’하면서 자료는 미친 듯이 모은다. 통계자료와 선행연구뿐만 아니라 인터넷, TV, 신문 등 가능한 것은 모두 수집한다. 너무 많이 모아서 나중에 처치 곤란하고 어디다 두었는지 모를 때도 종종 있지만 그래도 어쨌든 모은다.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꽤 있고,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되는 분야를 뒤적이다가 적합한 근거자료를 찾을 때도 적지 않다.

자료를 모았으면 이제는 생각이다. 이쯤 되면 이제 마감일이 오늘내일할 때이므로 초조한 마음에 차분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무난하게, 적당하게 마무리해 볼까 하는 생각이 굴뚝같다. 그래도 꾸준히 한 10시간 앉아 있으면 1시간 정도 집중이 되는 경우가 있다. 주제와 목적과 통계자료와 논리가 모두 명확하게 느껴진다! 모두 제 자리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이때가 연구자로서는 행복의 절정이다. 그런데 화장실에 갔다 오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잘 못 생각한 것 같다. 무리하게 아전인수적 논리를 너무 확장한 것 같다. 밤도 깊었고 이제 너무 피곤하니 내일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이런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 연구자로서의 욕심과 제약조건 (시간, 체력 등) 사이에 균형(?)이 일어난다. 결국 여태 까지 한 것을 가지고 보고서를 쓰기 시작한다.

보고서를 쓰기 시작하니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처음에 목적이 불분명하고, 자료가 충분치 않고, 논리가 무르익지 않았을 때 계획했던 보고서 내용하고 완전히 다른 방향의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농업이라는 산업적 시각에 국한하는 것보다 농촌사회학적, 농업사적 시각으로 접근 하는 것이 나을 것도 같고, 정량적 분석과 함께 정성적 분석도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경제학이나 수학이 아닌 방법으로 논리를 전개하려니 하루 종일 써도 한 페이지를 넘기기 어렵다. 수식과 도표를 이용하면 간단한 논리를 가지고도 열 페이지 정도는 요리할 수 있는데…. 아아! 수학의 편리함이여! 경제학자들이 왜 수학을 신주 모시듯이 하는지 알겠다.

보고서를 완성해 놓고, 옆 방 동료에게 ‘같은 연구를 다시 한 번 하면 잘 할 수 있겠다’고 하니 ‘재작년에도 같은 연구 해놓고 딴소리 한다’고 한다. 그래도 새해에는 후회 없는 연구를 한번 해 보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농경나눔터 2017년 2월호 - KREI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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