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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여건] 농촌 주민 만족도 큰 ‘콜버스’… 지자체, 사업 의지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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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배차간격이 3시간이 넘는 마을, 버스정류장이 집에서 수십㎞ 떨어진 마을에 산다면 어떨까.

통계청이 2015년에 실시한 농림어업총조사(5년 주기 조사)에 따르면 전국 3만6792개 행정리 가운데 2349곳은 시내버스가 없고, 하루에 1∼3회 운행하는 마을도 4390곳에 달했다. 버스 운행 횟수가 하루 10회 미만인 마을은 1만9854곳으로 절반이 넘었다. 농촌에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수익을 내지 못하는 버스회사가 점차 노선을 없애거나 감축한 탓이다. 도시에는 자율주행차를 이야기하는 상황이지만 시골의 노인이나 어린이 등 교통약자들은 당장 외출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는 ‘국민은 대중교통서비스를 제공받음에 있어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고 편리하고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농촌을 포함한 지방은 사정이 그렇지 못한 셈이다.

정부가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14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018년 전국 82개 군 지역 전체로 확대하며 성과를 내온 ‘농촌형 교통모델’사업이 정체기를 겪고 있다. 문재인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부터 ‘농촌정책 우수사례’로 꼽히는 사업이지만 일부 지자체가 사업을 중단하고 사업비를 반납한 사례도 나온다. 기존 버스회사, 택시회사와의 충돌, 지자체의 사업 운영 어려움 등이 장애물이지만 결국 지자체의 의지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어르신 버스 가고 있으니 거기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어머니, 10분 뒤에 정류장으로 나오세요.”

지난 4일 오후 전북 완주군 ‘부름부릉 행복콜센터’에는 끊임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완주군은 현재 5개면에 10대의 수요응답형 ‘행복콜버스’를 운행 중이다.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행하고, 탑승하기 30분 전에 사전예약하는 방식이다. 요금은 현금으로 500원. 2018년에 누적 이용객 4만4000명을 넘겼다. 지난해는 5만5000명, 올해는 상반기에만 4만명이 이용해 연간 누적 이용객 8만명을 예상한다. 5개면 주민이 3만명을 조금 넘어서는 수준이고 자가용 운전자까지 따지면 이용 빈도가 꽤 높은 편이다.

소양면사무소에서 콜버스에 올라탄 정봉래(85)씨는 주섬주섬 500원짜리를 꺼내 버스 요금함에 넣었다. 전주에서 볼일을 보고 시내버스에서 내려 집 근처까지 가기 위해 콜버스를 불렀다. 정씨는 15분 남짓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에서 “이것 생기고 2시간씩 버스 안 기다려서 좋아. 일주일에 서너번은 이걸 부른다”며 “아주 고맙다”고 했다.

정씨가 신원리에서 내리고 인근 해월리에서 홍의배(65)씨가 지인과 버스에 탔다. 서울에서 살다 4년 전 고향으로 귀촌했다는 홍씨는 무엇보다 교통이 제일 불편하다고 했다. 홍씨는 “이제는 교통은 포기하고 산다”면서도 “그나마 이 버스 생겨서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아주 잘 탄다”고 말했다. 홍씨가 한참 이야기를 하는 중에 다문화가정의 엄마와 초등학생 딸이 버스에 올랐다.

완주군 외에도 주민들의 24시간 이동을 가능하게 한 전남 신안군의 ‘1004 버스’, 벽·오지에 1000원 택시를 도입한 경남 의령군 ‘행복택시’ 등도 성과를 내고 있다.
◆사업 포기 지자체에… 사업비 실집행률 42%

반면 사업을 포기하는 지자체도 있다. 12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시·도별 농촌형 교통모델사업비 실집행률은 50.2%에 그쳤다.

경북이 28.0%로 실집행률이 가장 낮았고, 경남이 37.9%, 인천이 40.0%, 충북이 45.1%로 50%가 채 안 됐다. 전체 42억1400만원의 사업비가 반납됐는데 경북 고령군은 3억200만원, 성주군은 3억3000만원, 울진군은 3억200만원을 고스란히 반납했다. 전남에도 해남 3억1900만원, 무안 3억900만원, 함평군도 3억원을 반납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올해 9월 말 기준 농촌형 교통모델사업비 실집행률은 42.2%로 절반도 채 집행되지 못했다. 경북의 실집행률이 19.2%로 가장 낮았고, 부산이 30.3%, 충남이 34.5%, 경남이 34.8% 등이었다.

전남 진도와 장흥, 강진, 함평, 영광, 장성, 경북 청송과 고령, 봉화, 울진, 경남 산청군 등은 아예 올해 사업을 포기했다.
지난 5일 만난 진도군 건설교통과 관계자는 “수요응답형 교통모델이라는 취지는 좋지만 기존 버스회사가 운영하는 노선과 별도로 신규노선을 발굴하기가 어렵고 ‘100원 택시’도 자리 잡고 있어 여의치가 않다”고 했다.

군에 따르면 진도군에는 37개 버스노선이 있고, 연간 53만명이 이용한다. 하루 버스이용객이 1500여명, 노선별로는 40명이 채 안 된다. 하루 평균 5회 운행한다고 하면 한 버스를 7∼8명이 이용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노선을 운행할수록 적자가 나는 상황이지만 정부 지원으로 노선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노선버스를 줄이고 그 자리에 공공형 교통모델이 들어갈 수 있지만 버스회사와의 마찰이 불가피하다. 지자체마다 조금씩 사정이 다르지만 대체로 기존 운수사업자와의 노선 조정 등의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특히 지자체가 상대적으로 지원이 쉽고 운영이 편한 택시형 교통모델을 선호하면서 버스형 교통모델 사업이 부진한 상황이다. 다만 공공형 교통모델을 정착시킨 다른 지자체의 경우 기존 운수사업자와의 노선 협상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것과 비교하면 사업 부진 지자체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기존 운수사업자가 비효율적인 운행을 계속하고 있고, 그 불편이 주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부 지자체들이 기존 운수사업자와 치열한 노선 협의를 통해 성공사례를 만들어낸 것과 비교하면 사업이 부진한 지자체의 경우 추진 노력이 부족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축소지향 도시·교통계획 정책 추진해야”

전문가들도 지역 주민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지자체가 의지를 갖고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남연구원 김원철 공간환경연구실장은 “수요응답형 버스가 성공하려면 기존에 운행 중인 버스노선 중에서 수익성이 좋지 않은 구간을 없애야 하지만 버스업체는 비수익 노선운행에 대한 재정지원을 받기 때문에 노선을 없애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주민들도 노선버스 폐지에 대한 반대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지자체는 수요응답형 버스 사업이 행정절차가 복잡하고 성과를 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선호하지 않고, 무엇보다 지역의 대중교통 사각지대가 어느 정도 분포하고 있는지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한 무관심과 의지 부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서현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역마다 지리적 특성이나 가구 분포, 생활권, 통행 패턴 등이 정형화돼 있지 않고 각각의 특성이 있어 수요에 따른 맞춤형 교통모델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지방도시에서 이동권 실태진단과 개선대책이 체계적으로 수립될 수 있도록 대중교통 기본계획, 지방 대중교통 기본계획 수립 시 벽지 노선 운행현황 파악과 조정대책, 공공형 교통수단 운영현황 파악 등이 반영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 연구위원은 이어 “지방도시의 인구감소 고령화 심화는 재정력 약화의 원인이 되고 향후 일정 수준 이상의 이동권 확보를 위해서 국가의 역할과 책임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지방도시에서 인구감소 현상을 받아들이고 축소지향 도시·교통계획과 정책을 추진하는 의지를 가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일보 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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