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목록

KREI 논단

KREI 논단 상세보기 - 제목, 기고자, 내용, 파일, 게시일 정보 제공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와 한국 김치산업
9416
기고자 국승용
KREI 논단| 2007년 7월 19일
국 승 용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문연구원)

 

축구의 종주국이 영국이라지만, 월드컵과 같은 국제대회에서 잉글랜드는 종이 호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6년 자국에서 개최한 월드컵에서 우승을 한번 했을 뿐,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4위 이외에는 8강 문턱을 넘어서 본적이 없다고 하니 축구 종주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하지만 박지성의 진출을 계기로 국내에 널리 소개된 영국 국내 프로축구 리그인 프리미어리그의 경기를 보면서 박진감 넘치는 영국 축구에 매료된 한국 축구팬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비록 국제 대회에서 잉글랜드의 성적은 신통치 않았지만, 프리미어리그의 축구 수준은 영국인들이 축구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김치의 종주국이 한국이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수년전부터 해외 김치시장에서 한국 김치가 중국의 저가 김치에 밀려 고전하기 시작 했으며, 국내 김치 시장에서조차 중국산 김치의 기세가 무섭다. 영국 축구는 국제시장에서는 고전하고 있어도 자국 축구 리그만은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김치산업은 해외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물론 국내 시장도 낮은 가격을 앞세운 중국산 김치의 맹위에 밀려 국내시장마저 위태로운 처지에 있다.

 

중국산이 범람하는 한국의 김치시장

2001년 중국산 김치 수입량은 392톤에 불과했지만, 2006년에는 무려 18만톤에 육박하여 중국산 김치의 국내 시판 김치 시장 점유율은 26%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정용 소포장 김치나 급식용 김치는 포장지에 원산지를 표시하거나, 계약과정에서 원산지를 확인하고 있으므로, 별도의 원산지 확인체계가 없는 외식업소에서 취급하는 김치의 상당 부분이 중국산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주원료인 배추만 국산을 사용하고 고춧가루, 마늘 등 양념은 중국 농산물을 사용한 ‘국산 김치’가 저가 김치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지난 2004년에는 배추와 양념 등 원료의 89%가 중국산이어도 국내에서 김치를 가공했다면 대외무역법에 의거 국산 김치로 표기할 수 있다고 법원이 판결한 바도 있으니 양념만 중국산을 썼다면 두 말할 나위 없이 법적으로 국산 김치에 해당한다. 김치 재료비 중에서 배추와 나머지 양념이 각각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고 하니 중국 수입 김치 때문에 경영난을 겪고 있는 영세 김치 가공업체에서 가격 경쟁을 위해 양념만이라도 수입 농산물을 쓰겠다는 것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다만, 100% 국산 농산물을 사용하여 재조원가가 높은 김치와 그렇지 않은 김치가 모두 동일하게 ‘국내산’으로 분류되는 현실, 그리하여 국산농산물만으로 김치를 생산하는 기업이 오히려 시장에서 불리한 여건에 놓이게 되는 현실이 그대로 지속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대표적 식품 중의 하나인 인삼은 1970년대부터 관련법령을 정비하고 국내외 시장 개척에 노력했지만, 오늘날 국제 인삼시장에서 중국삼과 화기삼에게 주도권을 내어주고 국내 시장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변변한 제도 하나 갖추고 있지 못한 한국의 김치산업이 국내외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현실은 어찌 보면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다소 늦은 감은 있으나 지금부터라도 한국 김치를 차별화하고, 세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김치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제도 필요

김치산업육성법 같은 제도를 만들어 한국 김치를 차별화하고, 김치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통합적인 정책이 시행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김치산업이 농산물 생산, 식품가공, 외식 등 다양한 분야가 관련되어 있어 이를 통합한 제도를 수립하는데 적지 않은 시일이 소요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먼저 현행 제도를 일부 개선하여 비교적 빠르게 시행 가능한 김치산업을 발전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지리적표시제를 활용하는 것이다. ‘고려인삼’은 한국 고유의 품종으로 한국에서 생산된 인삼을 지칭하는 법적으로 보호되는 명칭이다. 김치역시 한국에서 생산된 원료를 이용하여 한국에서 생산된 김치를 지칭하는 지리적표시 개념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세계 시장에서 한국 김치를 차별화할 수 있을 것이며, 수입 농산물을 이용해 한국에서 생산된 김치와의 차별화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중국산 김치의 대부분이 외식부문에서 소비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쇠고기와 마찬가지로 외식부문에서 김치의 원산지표시를 의무화하는 방안이 추진되어야 한다. 올 1월 1일부터 300㎡이상의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구이용 쇠고기의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하였으나, 표시의무 대상 음식점이 전체 음식점 수의 1% 수준으로 제한적이다. 표시대상을 구이용 쇠고기로 한정하여 제도의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뒤늦게 표시대상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한 신문 보도에 의하면(7월 18일, 한겨레, ‘쇠고기 원산지표시제-찬밥신세’) 소비자단체 조사결과 원산지표시 대상 음식점의 43.3%가 원산지를 표시하지 않거나 부적절하게 표시했다 한다. 300㎡ 이상의 대형 음식점이 이럴진대, 중소형 음식점에서 판매되는 농식품의 원산지는 더욱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다.

 

음식점에서 김치의 원산지표시를 시행하되 제도의 실효성을 위해서는 대상 업소를 대형 음식점으로 제한하지 말고 확대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음식점에서 돼지고기, 쌀 등의 원산지표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실정이어서 음식점의 원산지 표시 방법, 관리 기관, 위반 시 처벌 강화 등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치 생산에 대한 국제적 기준을 수립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식약청은 이미 김치생산에 위해요소중점관리(HACCP) 기준을 도입할 것을 고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김치생산업체들은 수십억 원의 추가 투자를 통해 HACCP 인증 취득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활용하여 김치생산에 적합한 국제적 HACCP 기준을 만들고 HACCP 김치만이 국내에서 시판될 수 있도록 한다면, 한국 김치시장이 질적인 도약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파일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