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목록

KREI 논단

KREI 논단 상세보기 - 제목, 기고자, 내용, 파일, 게시일 정보 제공
정조와 신해통공과 농산물유통 개혁
9909
기고자 국승용
KREI 논단| 2008년 1월 15일
국 승 용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문연구원)

 

조선시대 상업은 시전(市廛)이라 불리는 제도권 대규모 상인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들 시전은 조선 초부터 중소 민간 상인인 사상(私商)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거래 독점권으로 금난전권(禁難廛權)을 줄기차게 주장하였다. 조선 왕조는 서민의 생활을 피폐하게 할 수 있다며 금난전권을 허용하지 않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번의 커다란 전쟁을 겪고 조정의 재정여건이 악화되자 시전 상인들에게 세금 부과를 강화하는 조건으로 금난전권을 부여하였다. 금난전권이란 시전상인을 제외한 중소상인들이 도성안에서 장사를 할 경우 시전이 그들의 물품을 압수하고 고발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정부에게서 독점권을 받은 대형유통업체가 동네 수퍼마켓이나 노점상이 판매하는 물건을 압수한 후 이를 경찰에 고발할 수 있는 권한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신해통공을 통한 상업 개혁

 

막강한 권한을 소유한 시전은 매점매석 등의 방식으로 폭리를 취하는 행위를 자행하였다. 영정조 시기 사회가 안정되고 농업과 공업의 생산성은 크게 향상되었으나 중소상업이 위축되고 도성의 물가를 안정시킬 수 없었던 것은 시전 상인의 횡포 때문이라 할 수 있다.

 

1791년 정조는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상인들의 금난전권 폐지와 무분별하게 늘어난 시전의 수를 급격하게 줄이는 개혁조치를 단행하는데 이를 신해통공(申亥通共)이라 한다. 신해통공 직후 도성의 물가가 안정되기 시작하여 곧 그 효과가 나타나자 통공(通共)정책에 반대했던 세력들도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갑인통공(1794년)을 통해 무분별한 금난전권 행사를 한성부와 형조가 단속하도록 하는 등의 후속조치로 일련의 상업개혁정책이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정조의 통공정책은 시전과 사전의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부패를 일소하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나 중소상인의 활성화로 상품유통이 활발해져 조선후기 수공업과 상업 발전의 기폭제가 되는 등 예상치 못한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경쟁력을 확보한 시전들이 상위 6대 시전이라 할 수 있는 육의전(六矣廛)과 경쟁할 정도로 상업구조를 개선할 수 있었다. 과거에 시전의 횡포를 막기 위해 불법 상거래에 대한 엄격한 단속을 수없이 많이 추진하였는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경쟁체제를 촉진한 정조의 정책은 서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으며 예상치 못한 다양한 효과를 거두었다.

 

경쟁 부재의 비효율적 도매시장

 

과연 오늘날에도 도매시장이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32개 공영도매시장에서 전체 청과물의 40%가 넘는 양을 취급하고 있으며 유사도매시장을 포함하면 그 거래비중은 70%에 육박한다. 대형유통업체의 청과물 취급량이 빠르게 늘어나고는 있으나 그 비중은 20%에 미치지 못하여 한국의 청과물 유통은 도매시장이 주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영도매시장의 거래를 규정하는 농안법의 ‘상장경매 원칙’이 시장 내의 경쟁을 적지 않게 억제하고 있다. 도매시장 거래 주체인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은 법에 의해 엄격하게 그 기능과 역할이 구분되어 있다. 도매시장법인은 오직 경매를 주관할 뿐 시장 밖으로 농산물을 팔 수 없으며, 중도매인은 도매시장법인이 상장한 농산물외에는 판매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7% 상장수수료, 2%의 하역 및 운송료 등 10% 남짓한 유통비용이 발생한다. 이런 비효율적 거래 체계로는 산지와 직거래를 추진하는 대형유통업체와의 경쟁이 곤란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도매시장법인이 직접 시장 밖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하고, 중도매인이 직접 농산물을 수집할 수 있도록 한다면, 10%의 불필요한 유통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시장 거래주체 간의 경쟁을 통해 도매시장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의지가 중요

 

지난 해 개정된 농안법의 운영특례 조항을 활용하면 7개 중앙도매시장을 제외한 25개 지방도매시장에서 개설자인 지방자치단체의 결정으로 혁신적인 거래제도를 시행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7월 시행된 이 같은 조항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곳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시설을 개선하는 것도 도매시장의 효율화를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거래제도 개선은 추가 재원 없이도 빠른 시일 내에 획기적으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공영도매시장 종사자들은 기득권과 관행에 연연하지 않고 상호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이것이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며, 나아가 소비자와 농업인 모두를 위한 도매시장을 만드는 길이다.

파일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