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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한 산지유통조직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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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국승용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뉴스레터 오피니언| 2009년 04월
국 승 용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규모화와 전문화가 산지유통 활성화를 위한 핵심 사업 방향이라는 점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호당 경지면적은 1.5ha, 농업 강소국이라고 불리는 네덜란드나 프랑스와 비교해도 1/20 수준이다. 우리가 규모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덩치만 키우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개인 농가 단위로는 시장에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상업적인 시장 판매가 가능한 규모 이상의 협업화를 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산지유통 규모화 사업의 출발점이다. 규모화는 산지유통조직이 생존할 수 있는 필요조건일 뿐이며, 성공적 경영을 위해서는 또 다른 방편, 즉 전략이 필요하다.

 

품목 선정과 핵심 경쟁력 확보

 

시장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필요한 준비를 체계적으로 수행한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 사례를 창출할 수 있다. 농산물 유통 측면에서 양파는 대단히 흥미로운 품목이다. 양파는 19세기 말부터 국내에서 재배되기 시작했지만 연간 1백만톤이 소비되는 대표적인 양념채소 중의 하나이다. 건조, 절임 등 양파 가공품은 다수 있으나 양파 소비량의 대부분은 신선양파가 차지하고 있다. 양파는 단가에 비해 부피가 크기 때문에 생산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물류비가 많이 소요되는 품목이다. 이같은 유통 특성 때문에 양파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1~3월 기간을 제외하고는 국내산 양파가 적어도 국내 시장에서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풀빛영농조합법인이나, 신미네유통사업단과 같이 대표적인 산지유통조직이 양파를 주 품목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이같은 양파의 유통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 유통조직은 거래 단가가 낮은 성출하기에 양파를 수집해서 효율적으로 저장한 후에 연중 판매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양파를 효과적으로 수집·저장할 수 있는 물류 체계와 시설을 확보하였다. 특히 신미네유통사업단은 물류 전문가들도 더 이상 개선할 요소를 찾기 어렵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물류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 결과 신미네유통사업단은 양파의 저장 시 발생하는 평균 감모율을 10% 수준으로 감축시킬 수 있었고, 이는 일반 시설의 1/3 수준에 불과하니 확고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역 직거래를 통한 판로 개척

 

판로 개척이라고 하면 국내 대규모 소비시장이나 해외 수출 시장을 염두에 두기 마련이다. 하지만 산지 인근의 지역 역시 중요한 소비시장 중의 하나이다. 순천시는 내세울만한 대표 농산물이 별로 없는 지역인데다, 남해안에 입지하고 있어서 대규모 소비지인 수도권 접근성도 좋지 못하다. 순천농협은 농산물 유통 활성화를 위해 가공식품을 개발하여 대규모 시장에 접근하는 동시에 지역의 다품종 농산물을 지역 내에서 직거래하는 유통 전략을 수립하였다.

순천농협의 농산물 유통에서 관심을 끄는 부분은 학교급식, 파머스마켓 등을 연계한 지역 직거래 체계이다. 순천시에서 추진하는 친환경 농산물 학교급식사업을 계기로 순천농협은 친환경농산물을 250개 학교 6만 4천명의 학생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이를 위해 2천여 농가와 계약재배를 실시하여 60여 종의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농촌지역 학교로 급식원료를 배송한 차량은 인근 농가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순회수집하여 파머스마켓의 '농가 직거래 바구니'라는 전문 코너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 3천㎡ 규모의 파머스마켓은 고품질의 신선 농산물과 다양한 구색으로 차별화하여 인근에 입지한 국내 1, 2위의 대형마트와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하고 있다.

 

신뢰에 기반한 협력

 

산지유통조직의 경쟁력이 중요시되면서 생산자 간의 경쟁을 유발하고 관리를 체계화하려는 시도가 보편화되고 있다. 하지만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 경영 기반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

아산의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은 다양한 친환경농산물을 소비자 조직과 직거래하는 산지유통조직이다. 해마다 연말이면 각 품목별로 단가가 결정되기 때문에 조합원들은 가격변동 없이 안정된 가격에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다. 판매액의 1%를 적립하여 자연 재해 등으로 예상 소득에 미치지 못하는 농가가 발생하면 그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사용한다. 또한 일정 규모 미만의 콩 재배 농가가 경작지를 규모화된 농가에게 위탁하도록 하는 대신 콩 가공공장에서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 이를 통해 콩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고, 영세 농가의 소득도 안정시킬 수 있다. 산지유통센터에 농산물을 싣고 온 농민의 얼굴에 미소와 넉넉한 인심이 묻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앞서 살펴 본 몇 가지 사례들은 지나치게 특수해서 모든 조직에 보편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들이 세운 전략을 답습하는 것만으로는 작지만 강한 산지유통조직을 만들 수 없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산지유통조직이 스스로 여건에 적합한 차별화된 전략을 세우고 실천에 옮길 때 성공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장은 복잡하고 틈새는 곳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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