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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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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농가가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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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박준기
KREI 논단| 2010년 8월 5일
박 준 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 중 한 가지는 기록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동물은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정보를 전달할 능력이 없어서 시간이 지나도 동일한 시행착오를 반복하지만 인간은 경험에서 얻은 정보를 기록을 통해 후세에 전달함으로써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면서 발전해 올 수 있었다.

 

농가도 기록의 중요성 측면에서 예외일 수 없다. 특히 규모화?전업농화되는 농가 비중이 높아지면서 경영활동에 대한 기록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확한 기록이 뒷받침되어야 농가의 수익성, 재무건전성, 경영의 안정성 등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토대로 농업경영체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현실성 있는 경영진단과 영농계획 수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농가들이 번거로움과 경영기록의 활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경영활동 기록을 기피하고 있다. ‘수확기에 한 번 큰 돈 만지고 나면 연중 지출만 발생하는데 무슨 기록할 재미가 있겠느냐’는 한 농업인의 이야기는 일견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농업 경영 여건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소비자는 고품질의 안전한 농산물을 요구하고, 농업은 전문화되고 있으며, 시장에 출하되는 농산물은 국제화되고 있다. 이러한 여건 하에서 농가가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가격 경쟁, 품질 경쟁, 기술 경쟁, 생산성 경쟁 등 각종 경쟁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모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知彼知己, 百戰百勝)는 격언이 있다. 나를 아는 방법이 곧 기록이다. 무엇을 위해서 - 정책자금을 대출받기 위해서,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서 등 - 기록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 기록해야 하는 것이다. 농산물을 출하해서 얼마를 벌어들였는지, 생산을 위해 얼마를 비용으로 지불했는지, 자산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부채와 이자상환금액은 감당할 만한 수준인지, 농사규모에 비해 생산성은 어떠한지 등 자신이 보유한 자원수준과 경영능력을 수시로 점검하고, 시장여건 변화에 대응하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건실한 농업경영체로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기록을 통해 비효율적 요소들을 제거하고, 생산성과 수익성을 크게 높여 준 사례는 오래 전 덴마크 우유기록협동조합에도 찾아볼 수 있다. 1894년에 덴마크 낙농가 13명이 우유생산량과 사료비를 계산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우유기록협동조합을 설립하였다. 기록을 통해 버터 1kg을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이 우량젖소에 비해 불량젖소가 5.2배 더 드는 것을 밝혀냈다. 그 결과 전국적으로 불량 젖소 제거와 품질개량 등 유우개량을 촉진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당시 덴마크 전국 유우의 1/2 이상이 우유기록조합의 기록 관리를 받았다고 한다.

 

위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기록은 보다 효율적인 영농 방식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현실성 있는 경영계획 수립을 가능하게 한다. 성공하는 농업경영체로 발전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비용이 “경영활동 기록”이라면 충분이 지불할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한편, 경영활동 기록은 농가에 대한 기록 권장과 독려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함께 인식할 필요가 있다. 농가의 생산 활동은 다품목의 복합영농이며, 재배시기도 다양하여 일반 기업의 기록방식을 획일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 농업의 특성을 반영한 합리적인 농업경영장부 기록 방식을 마련하고자 하는 논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농가는 경영활동 기록이 곧 지속적 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임을 인식하고, 기록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정부, 학계 및 관련 기관은 농업의 특성을 담아낼 수 있는 농업회계준칙과 표준화된 농업경영장부를 개발해 합리적인 경영진단과 영농계획 수립이 가능하도록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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