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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EP 농업분야 협상결과를 다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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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유정호

농축유통신문 | 2020년 12월 3일
유 정 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위촉전문연구원)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지난 11월 15일 최종 서명됐다. 지난 2012년 협상 시작 이후 8년 만에 이룬 결실이다. 그러나 RCEP이 발효되기 위해서는 9개국 이상이 국회의 비준을 얻어야 한다. CPTPP가 7개 회원국의 국회 비준을 얻는데 3년의 시간이 소요된 것을 고려하면 RCEP 발효에도 어느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비록 발효까지 시간이 있으나, 이제부터는 RCEP 협정의 내용을 심도 있게 파악하고 활용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현재까지 가입한 FTA와의 차이점을 살펴보고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일본을 제외하면 우리나라는 RCEP에 참여한 모든 국가와 FTA를 체결하고 있다는 점, 기존 협정과 비교해 추가개방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협정 내용 파악이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추가로 포함되었거나 삭제된 내용이 협상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의 깊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RCEP 가입국이 주로 개발도상국이라는 점에서 농업분야의 관심도 더욱 요구된다. 농업분야 추가개방 품목은 모두 10년 이상 장기철폐된다. 개방된 품목은 아세안 열대과일(구아바, 파파야, 망고스틴), 중국산 녹용과 식품첨가제(변성전분), 호주산 소시지 케이싱, 일본산 청주와 맥주다.


한국의 농산물 수출시장도 확대됐다. 인도네시아에 사과와 배, 태국에 딸기를 수출하는 농가는 협정의 혜택을 받게 됐다. 일본 수출 시 소주와 막걸리도 관세 혜택를 적용받을 수 있으나, 20년 동안 관세가 철폐되도록 합의돼 단기에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특히 주목할 점은 위생·검역조치의 확대다. 농산물 시장이 전방위적으로 개방되지는 않았으나, 위생·검역 조치는 협력과 의무가 크게 확대됐다. 기존 한·미, 한·중 FTA의 위생검역 조치가 4∼5개 조항으로 구성되었다면, RCEP은 17개 조항으로 위생·검역조치를 대폭 확대했다.


18개 조항으로 구성된 CPTPP와 견줄만하다. 특히, 투명성이 강화됐다. 위생·검역 조치 변경 시 상대국에 의무적으로 통보 해야하며 최소 60일 이상의 이의신청기간을 두어야 한다.


동등성 조항도 포함했다. 수입국이 적용하고 있는 조치와 동일한 수준의 위생·검역 조치를 수출국이 취한 경우 수입허용이 불가피하다. 수입국이 동등성 조항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 서면으로 그 이유에 대한 설명도 제공해야 한다.


지역화 개념도 도입되었다. 해충/질병 무발생 지역 또는 저발생 지역으로부터 수입해야 하며 절차적 협력도 모색하기로 했다. 수입국이 지역화를 불인정하는 경우 해당 사유를 합리적 기간 내에 의무적으로 답변해야 한다. 내용상 CPTPP와 유사하나 RCEP은 구획화 개념을 포함하지 않았으며, WTO 지역화 개념을 준수하는 수준이다.


전체적으로 RCEP은 CPTPP와 내용상 유사하다. 다만, 의무 조항에 있어 RCEP은 다소 완화된 기준을 채택했다. 동등성, 위해성 평가, 수입검사 등 다수 조항에 있어 RCEP은 협력 강화에 그치고 있으나 CPTPP는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위생·검역 조치 중 코로나19를 염두에 둔 긴급조치 조항도 포함됐다. 기존 CPTPP, USMCA 등의 긴급조치 조항은 “인간·동물 또는 식물의 생명이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긴급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였으나, RCEP에서는 “인간·동물 또는 식물의 생명이나 건강을 보호하고, 교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긴급조치를 취할 경우 상대국에서 통보하도록 했다.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으로 교역을 중단하는 경우 RCEP 회원국은 해당 조치를 상대국에 의무적으로 즉시 통보해야 한다.


위생·검역 조치의 강화는 회원국 간 분쟁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 협정문에 대한 해석이 국가마다 자의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RCEP의 위생·검역 조치는 동 협정의 분쟁 해결 조항을 활용하지 못하도록 합의됐다.


CPTPP는 협정 발효 이후 동등성, 감사(Audit), 수입검사 조항에서 1년, 위해성 평가, 분쟁해결 조항에서 2년 동안 적용을 유예한 것과 달리 RCEP은 회원국 간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장치를 아예 사용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비록 협정 발효 후 3년 이내에 분쟁해결 조항의 검토를 완료하도록 했으나,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에 따라, RCEP 회원국 간 위생·검역 문제로 다툼이 발생하면 WTO 제소 절차를 적용해야 한다.


비록 바이든 행정부 집권 이후 WTO 분쟁해결기구의 기능이 회복될 것으로 전망되나, WTO 절차는 통상적으로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위생·검역 조치의 대폭적인 확대에도 분쟁 해결 장치가 빠짐으로써 챕터 전체의 힘이 빠진 것이다.


RCEP은 CPTPP와 달리 한국이 처음부터 참여하고 최종 서명까지 이뤄낸 협상이다. 전방위적 개방은 없었으나 위생·검역 조치에 여러 의무와 협력 조항이 포함되어 영향이 적을 것이라 단언하기 어렵다. 다수의 국가가 참여한 메가 FTA라는 점에서 협정의 긍정적 효과가 기대되나, 개별 내용에 대한 주의와 대비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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